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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23일 토요일[(자) 사순 제5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23일 토요일[(자) 사순 제5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22(21),20.7 참조
주님, 멀리 떠나 계시지 마소서. 저를 도우소서. 저는 인간도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모든 이가
뽑힌 겨레, 임금의 사제단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을 바라고 이루어
영원한 생명으로 부름받은 백성이
같은 마음으로 믿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7,21ㄴ-28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예레 31,10.11-12ㄱㄴ.13(◎ 10ㄹ 참조)
◎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
○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 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
○ 그때에는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고, 젊은이도 노인도 함께 즐기리라.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

복음 환호송

에제 18,31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5-56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속죄와 단식으로 마련한 예물을 받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으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1 : 십자가의 힘>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성자의 수난으로
온 세상이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하게 되었으니
십자가의 무궁한 힘으로
성자의 권능과 세상 심판이 드러났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1,52 참조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그리스도 죽음에 넘겨지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엄위하신 주님 앞에 엎드려 비오니
저희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살과 피로 기르시어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기도하는 교회에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께 마음을 두는 이들을 인자로이 돌보시어
외아드님의 죽음으로 구원하신 이들이
다시 죄에 빠져 불행을 겪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진설명: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최근에 두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는 싱크대에 있는 음식물 분쇄기가 고장 난 것입니다. 원인은 분쇄기에 음식물을 아예 넣지 않고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식이 되면서 하수관도 부식되어서 잘못하면 물난리가 날 뻔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사시던 집도 동생 수녀님이 가끔, 관리를 해서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문제가 생겼을 것입니다. 디지털의 세상에 살면서 여기저기 비밀번호를 지정하게 됩니다. 자동으로 기억하게 해 놓지만, 나중에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주 사용해야만 기억하기 쉽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교회가 매년 이렇게 사순시기를 전례 안에서 보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죄인인 나를 위한 헌신과 희생임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의 액정이 꺼지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인터넷에 원인을 찾아보니 원인이 엄청 많았습니다. 배터리의 문제일 수도 있고, 용량의 초과일 수도 있고, 시스템의 오류일 수도 있고, 물리적인 손상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알아보아도 저의 능력을 벗어난 것 같아서 방법을 찾고 있는데 의외로 쉬운 방법을 알았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스마트폰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보험처리를 하면 된다고 합니다. 새 스마트폰이 오면 자료를 옮기면 된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기종을 휴대하기 편해서 접이식으로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자주 열게 되니 접촉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례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지난날의 모든 죄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사해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은 보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고백성사입니다. 우리는 성찰, 회개, 결심, 고백, 보속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권리를 주기도 하지만 국민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4가지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입니다. 저는 30개월의 군 복무를 다 하였습니다. 성직자들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해서 교구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서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자녀가 없기에 자녀를 교육할 의무에서는 제외되지만, 교구 성소국장으로 지내면서 신학생들을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하느님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33년 동안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을 더하면 저도 직무에서는 배제되는 원로사목자가 되려고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아는 율법학자라고 해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대사제라고 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겠다고 다짐한 바리사이파라고 해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권력을 이용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이용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구원은 능력과 직책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겸손과 희생 그리고 나눔과 선행을 통해서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복음요한 11,45-56

 

교회가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면 하느님의 손발은 누가 대신할 것입니까?

 

사순시기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주간이 목전입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이런저런 보속이나 결심을 계획했었는데, 결과가 만족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말과 생각만 앞섰지, 구체적인 실행 측면에서 너무 부끄러운 분들, 지나치게 상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성주간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만회할 수 있는 일주일입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고, 그 죽음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그럴듯하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지만, 결과물이 아쉬운 분들, 성주간 동안 딱 한 가지만이라도

구체적인 이웃 사랑의 실천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교회가 강조하는 세 가지 측면, 기도와 단식과 자선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도와 단식은 그 자체로 끝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기도와 단식의 결과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신부님이 계십니다.

이제는 더이상 세상에 안계시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 가슴에 살아 숨 쉬고 계시는 분,

민주화 운동의 대부이신 김승훈 마티아 신부님(1939~2003)이십니다.

 

총칼이 난무하던 군부독재자 시절, 모두가 숨죽이고 엎드려 지내던 혹독했던 유신 시절,

공개석상에서 긴급 조치 9호 철폐, 유신정권 종식을 크게 외치셨습니다.

 

5공 시절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고위층의 치밀한 각본에 의해 은폐 조작된 것임을 만천하에 외쳐

6월 항쟁의 단초를 마련한 분도 김승훈 신부님이셨습니다.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 겁에 질린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던 시대,

김승훈 신부님께서는 용기를 내셨습니다.

그로 인한 체포와 투옥, 고문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민주화의 희생양을 자처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십자가에 올라가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신부님께서 짧은 생애를 마감하시고 나서야 밝혀진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살아생전 신부님께서는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부님의 장례 미사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신부님으로부터 이런 저런 물질적인 도움,

정신적인 도움,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평소 신부님의 호주머니에는 돈이 늘 없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 수배 대상자 학생들, 가난한 노동자들이 찾아와서 손을 벌리니

돈이 남아 나지가 않았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 남의 빚보증 서준 서류만 잔뜩이고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하는데 가장 큰 도전은 재정 문제였습니다.

그 문제로 회의를 하다 보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분이 김승훈 신부님이었답니다.

 

도움은 물질적인 도움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당시 수많은 단체에서 신부님의 이름을 요청할 때 기꺼이 서명해주셨고,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셨습니다.

노동자들이 모임이나 집회 장소를 못 구할 때는 기꺼이 신부님께서 사목하시던 성당을 사용하도록

기꺼이 내어주곤 하셨습니다.

 

신부님의 미담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신부님 곁에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사찰하는 정보과 형사가 따라붙었는데,

신부님께서는 그들까지 살뜰히 챙기셨습니다.

정말이지 품이 넉넉한 큰 어른이셨습니다.

 

손톱만한 작은 나눔이나 희생도 뻥튀기처럼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너무나 부끄럽게 만드시는 김승훈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처럼 소리소문없는 자선과 희생,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이요 단식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세상에 관여하시는데, 교회가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면 하느님의 손발은

누가 대신할 것인가?

교회가 사회 문제, 그중에서도 가장 무력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중세 교회와 다를 바 없다.”(김승훈,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빛두레)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온 백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이 더 낫다.”>


지금 우리는 사순시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결정적인 사건인 십자가 사건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 결정적인 사건이 어떻게 해서 벌어지게 되는지 그 단초를 제공해줍니다.

곧 유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죽이기로 결정한 사건을 전해줍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시던 중, 채 도달하기도 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에 다다랐을 때에 생긴 일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생긴 일입니다. 

 

곧 엠마오에서 라자로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번째의 표징, 곧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표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표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라자로의 장례식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이 이를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지도자들에게 알린 것입니다. 

그러자 유다 지도자들은 민심이 동요된 것을 두려워하여 최고 의회 곧 산헤드린을 열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곧 메세아가 와서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건하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이 로마제국에게는 위협이 되고 당시의 기득권을 갖고 있던 종교도자들에게도 위기가 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정 과정이 참으로 묘합니다.

바로 그 결정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해의 대사제였던 가야파가 가기도 모르게 자신의 입을 통해 밝혀줍니다. 
“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한 11,50)

이는 결국 예수님의 죽음이 온 백성을 위한 대속임을 말해줍니다.

곧 의인의 죽음을 말해줍니다.

 

곧 이는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요한 11,52)임을 드러내줍니다.

그런데 이는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재로서 예언한 것'(요한 11, 51)임을 밝혀줍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오모하게도 기회주의자인 카야파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밝혀주십니다.

그리하여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백성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을 기다리며 파스카를 준비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순시기의 막바지에서 예수님의 파스카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복음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분의 죽음과 영광을 준비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의 말·샘 기도>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한 11,50)

 

주님!

겉치레 속에 교묘히 가리고 있는 불신의 껍질을 벗겨 내소서.

신앙의 겉꾸밈 뒤에 감추고 있는 제 허영과 자애심을 끊어내소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기고 있는 위선을 몰아내소서.

빛을 비추시어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의 어둠을 몰아내소서.

당신의 생명이 자라고 당신의 영이 흐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22.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예레20,10-13 요한10,31-42

                                                             하느님 중심의 삶

                                                  -내적 힘의 원천인 말씀과 믿음-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시옵니다.”(시편18,2-3ㄱ)

 

브라질 교회의 6차 사회주간(3,20-22)에 교황님이 보낸 메시지,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 얼굴을 보도록 하자”라는 말씀과 한 이민자를 품에 안으며 하신 솔직한 위로의 말씀이 감동이었습니다.

 

“나 역시 더 좋은 미래를 찾아 떠난 이민자들의 아이였다."

(I too am a child of migrants who set out in search of a better future.)

 

바로 이런 솔직함이 교황님의 위대한 점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 영혼은, 정신은, 마음은 얼마나 허약한지요. 생명이자 빛이신,

꿈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잊을 때, 잃을 때 급속히 어둠 속에 무너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이라 하는 것입니다.

어제 방문했던 분과의 대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진리대로 산다는 것이 참 힘듭니다.”

“힘들 것 없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사랑할 때 날로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진리가 되어가고 자유로워집니다.

더불어 튼튼해지는 영혼이요 정신이요 마음입니다.

참으로 진리이신 주님을 사랑할 때 희망과 기쁨, 감사가 뒤따를 것입니다.”

 

진리의 사람, 말씀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이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와 요한복음의 예수님입니다.

두분 다 무지의 악한 세력에 포위되어 악전고투의 절망적 상황입니다만,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은

참으로 견고합니다. 내적 힘의 원천은 바로 말씀과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레미야의 다섯 번째 고백에 속합니다.

오늘 예레미야서 독서 앞부분은 생략됩니다만 아까워 인용합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예레미야의 내적 힘의 원천임을 봅니다.

말씀의 힘은 믿음의 힘입니다.

“마고로 비싸빕”은 예레미야의 별명입니다.

“사방에서 공포가!”라는 뜻인데 이 말을 외쳤기에 이런 별명이 붙은 듯 합니다.

참으로 가까운 친구들 마져 예레미야가 쓰러지기만 바라는 악전고투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음은 바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예레미야의 주님 고백과 하느님 찬양이 우리에게도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와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립니다.”

 

하느님 고백에 곧장 이어지는 하느님 찬양입니다. 

 

“주님께 노래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가난한 영혼들을 참으로 강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 찬양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찬양과 더불어 날로 견고해지는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끊임없이 찬양과 감사의 시편성무일도를 통해 주님 향한 믿음과 희망을,

사랑을 고백합니다. 고백과 함께 가는 믿음이요 내적 힘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사면초가의 상황은 그대로 예수님에게도 재현됩니다.

흡사 무지의 악과 싸우는 모습입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모독한다며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려 합니다.

무지에 닫힌 마음의 눈은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은 무지의 편견에 눈먼 유다인들을 다시 일깨우십니다.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같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새삼 강조되는 믿음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믿음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업적을 통해 주님을 깨달아 알 수 있기에 믿음이 우선입니다.

믿으면 압니다. 믿으면 보입니다.

 

얼마전 써놓은 “모든 날이 다 좋다”라는 자작 고백시도 생각납니다. 

 

 “햇빛 밝은 날은

햇빛 밝은 날대로

비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모든 날이 다 좋다

주님 늘 힘께 계시기에!”-2023.10.21.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매일이 좋은날이라는 고백 역시 낙관적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런 믿음 또한 은총이요 믿음과 더불어 주님을 깨달아 알아 가면서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요

날로 자유로워지는 영혼입니다.

 

예수님은 이들 적대자들을 피신하지만 눈밝은 이들은 곳곳에서 주님을 찾아와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시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고백하며 믿습니다.

 

결국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라는 성가 480장도 한번 힘차게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하는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말씀을 사랑하여 말씀을 실천할 때 더불어 굳건해지는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은총입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모범입니다.

오늘 다산의 어록과 중용에 나오는 맹자의 말씀 중 덕은 믿음으로 바꿔읽어도 무방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공부는 덕을 쌓아가는 것이다.

덕이 있는 사람곁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모인다.”-다산

 

“큰덕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지위를 얻고, 녹을 받고, 명성을 얻고, 장수를 누린다.

큰덕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천명을 얻는다.”-중용

 

믿음의 큰 덕을 쌓아가는 공부가 진짜 공부입니다.

은총과 함께 가는 노력입니다.

믿음의 은총과 더불어 평소 믿음의 훈련이, 노력이 절대적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온맘을 다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의 선택과 훈련의 습관화와 더불어 날로 성장,

성숙해가는 은총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생활에서 은총은 전제로하고 한결같은, 끊임없는 선택과 훈련, 습관화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좋은 덕목의 자발적 선택과 더불어 훈련과 습관이 영성생활에 참으로 긴요합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곤경중에 나 주님 부르고, 

 하느님께 도움 청하였더니,

 당신 성전에서 내 목소리 들으셨네.

 부르짖는 내 소리 그분 귀에 다다랐네.“(시편18,7). 아멘.


3/23(토)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이용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구원은 능력과 직책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겸손과 희생 그리고 나눔과 선행을 통해서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손톱만한 작은 나눔이나 희생도 뻥튀기처럼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너무나 부끄럽게 만드시는 김승훈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처럼 소리소문없는 자선과 희생,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이요 단식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세상에 관여하시는데, 교회가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면 하느님의 손발은

누가 대신할 것인가?

교회가 사회 문제, 그중에서도 가장 무력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중세 교회와 다를 바 없다.”(김승훈,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빛두레)(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한 11,50)

 

주님!

겉치레 속에 교묘히 가리고 있는 불신의 껍질을 벗겨 내소서.

신앙의 겉꾸밈 뒤에 감추고 있는 제 허영과 자애심을 끊어내소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기고 있는 위선을 몰아내소서.

빛을 비추시어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의 어둠을 몰아내소서.

당신의 생명이 자라고 당신의 영이 흐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예레미야의 주님 고백과 하느님 찬양이 우리에게도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와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립니다.”

 

하느님 고백에 곧장 이어지는 하느님 찬양입니다. 

 

“주님께 노래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이수철 신부)

 

3/23(토) 사순 제5주간 토요일, 455(제85)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한 11,50)

 

주님!

겉치레 속에 교묘히 가리고 있는 불신의 껍질을 벗겨 내소서.

신앙의 겉꾸밈 뒤에 감추고 있는 제 허영과 자애심을 끊어내소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기고 있는 위선을 몰아내소서.

빛을 비추시어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의 어둠을 몰아내소서.

당신의 생명이 자라고 당신의 영이 흐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3월23일(토) 8시1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