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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24일 주일[(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24일 주일[(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이날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을 기념한다. 성지(聖枝) 축복과 행렬을 거행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영광스럽게 기념하는 한편, '주님의 수난기'를 통하여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선포한다. 성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것은 4세기 무렵부터 거행되어 10세기 이후 널리 전파되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수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에 동참합시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
제1양식: 행렬

<입당할 성당 밖의 작은 경당이나 적합한 장소에 모여 아래의 따름 노래를 하거나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따름 노래 마태 21,9 참조
◎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스라엘 임금님, 높은 데서 호산나!

<사제의 권고가 끝난 다음>

╋ 기도합시다. ……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사제는 말없이 나뭇가지에 성수를 뿌린다.>

복음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0<또는 요한 12,12-16>

예수님과 제자들이 1 예루살렘 곧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2 말씀하셨다.
“너희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
3 누가 너희에게 ‘왜 그러는 거요?’ 하거든,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그러는데 곧 이리로 돌려보내신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4 그들이 가서 보니,
과연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바깥 길 쪽으로 난 문 곁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것을 푸는데, 5 거기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왜 그 어린 나귀를 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6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말하였더니 그들이 막지 않았다.
7 제자들은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올라앉으시자, 8 많은 이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들에서 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깔았다.
9 그리고 앞서 가는 이들과 뒤따라가는 이들이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10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행렬 시작 권고>

<행렬하면서 성가대와 교우들은 아래의 노래나 그리스도 임금님께 영예를 드리는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따름 노래 1 시편 24(23)
◎ 히브리 아이들이 올리브 가지 손에 들고, 주님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환호 소리, “높은 데서 호산나!”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고*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따름 노래 2 시편 47(46)
◎ 히브리 아이들이 옷을 길에 깔고 외치는 소리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그분은 민족들을 우리 밑에,* 겨레들을 우리 발아래 굴복시키셨네. 우리에게 상속의 땅을 골라 주셨네.* 사랑하시는 야곱의 영광을 주셨네. ◎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
○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뭇 민족의 귀족들이 모여 와* 아브라함의 하느님 그 백성이 된다. 세상 방패들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은 지극히 존귀하시어라. ◎

그리스도 임금님께 드리는 찬가
○ 영광 찬미 영예 모두 주님께. 그리스도 임금님 구세주! 아이들의 환호 소리, 호산나, 호산나!
◎ 영광 찬미 영예 모두 주님께. 그리스도 임금님 구세주! 아이들의 환호 소리, 호산나, 호산나!
○ 이스라엘의 임금님, 다윗 임금의 빛나는 후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신 임금님. ◎
○ 하늘의 천사들이 모두 주님을 찬미하고, 인간과 피조물이 다 함께 주님을 기리나이다. ◎
○ 히브리 백성이 종려 가지 들고 마중 나가니, 기도와 서원과 찬미로 주님께 나아가나이다. ◎
○ 수난하실 주님께 찬미 예물 드리오며, 다스리는 임금님을 찬양 찬송 하나이다. ◎
○ 그 찬송 받으셨듯 저희 정성 받으소서. 온갖 찬양 받으시는 어질고 좋으신 임금님. ◎
<행렬이 성당 안으로 들어갈 때에 아래의 노래를 하거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 주님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히브리 아이들이 생명이신 주님의 부활을 외쳤네.* 손에 손에 종려나무 가지 들고 부르는 노랫소리, “높은 데서 호산나!”
○ 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에, 백성이 예수님을 마중 나가네.
◎ *손에 손에.

제2양식: 성대한 입당

<성당 밖에서 행렬을 할 수 없을 때는 성당 안에서 중심 미사 전에 성대한 입당으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이때 신자들이 하는 따름 노래와 복음, 다른 알맞은 노래는 ‘제1양식: 행렬’을 참고한다.>

제3양식: 간단한 입당

<성대한 입당이 없는 미사에서는 간단하게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입당송

요한 12,1.12-13; 시편 24(23),9-10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아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소리, * “높은 데서 호산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높은 데서 호산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구세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여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0,4-7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2(21),8-9.17-18ㄱ.19-20.23-24(◎ 2ㄱ)
◎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 보는 사람마다 저를 비웃어 대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내젓나이다. “주님께 의탁했으니 구하시겠지. 그분 마음에 드니 구해 내시겠지.” ◎
○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둘러싸, 제 손발을 묶었나이다. 제 뼈는 마디마디 셀 수 있게 되었나이다. ◎
○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제 속옷 놓고는 제비를 뽑나이다. 주님, 멀리 떠나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신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
○ 저는 당신 이름을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필리 2,8-9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네. 하느님은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1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에는 안 된다.” 하고 말하였다.
3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4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5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6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이 여자를 가만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7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10 ○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11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13 ○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17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셨다.
18 그들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19 ○ 그러자 제자들은 근심하며 차례로 묻기 시작하였다.
● “저는 아니겠지요?”
20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는 사람이다.
21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2 ○ 제자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 ○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2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28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29 ○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모두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30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1 ○ 베드로가 더욱 힘주어 장담하였다.
●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32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 그런 다음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34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35 ○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36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37 ○ 예수님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시몬아, 자고 있느냐 ?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38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39 ○ 예수님께서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40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내리감겨 자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41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아직도 자고 있느냐 ? 아직도 쉬고 있느냐 ?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2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43 ○ 그러자 곧,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다가왔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44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 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다.
45 그가 와서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말하였다.
● “스승님!”
○ 그러고 나서 입을 맞추었다.
46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47 그때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48 예수님께서 나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리된 것이다.”
50 ○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51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52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53 그들은 예수님을 대사제에게 끌고 갔다.
그러자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두 모여 왔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의 저택 안뜰까지 들어가, 시종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55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증언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6 사실 많은 사람이 그분께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그 증언들이 서로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57 더러는 나서서 이렇게 거짓 증언을 하기도 하였다.
58 ▣ “우리는 저자가, ‘나는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59 ○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60 그러자 대사제가 한가운데로 나서서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이자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이오?”
61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물었다.
●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
62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63 ○ 대사제가 자기 옷을 찢고 이렇게 말하였다.
●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64 여러분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단죄하였다.
65 어떤 자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그분의 얼굴을 가린 다음,
주먹으로 치면서 놀려 대기 시작하였다.
▣ “알아맞혀 보아라.”
○ 시종들도 예수님의 뺨을 때렸다.
66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사제의 하녀 하나가 와서,
67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보고 그를 찬찬히 살피면서 말하였다.
●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
68 ○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소.”
○ 베드로가 바깥뜰로 나가자 닭이 울었다.
69 그 하녀가 베드로를 보면서 곁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다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
70 ○ 베드로는 또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 “당신은 갈릴래아 사람이니 그들과 한패임에 틀림없소.”
71 ○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말하였다.
●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72 ○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
15,1 아침이 되자 수석 사제들은 곧바로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온 최고 의회와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 2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3 ○ 그러자 수석 사제들이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소하였다.
4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보시오, 저들이 당신을 갖가지로 고소하고 있지 않소?”
5 ○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6 빌라도는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풀어 주곤 하였다.
7 마침 바라빠라고 하는 사람이
반란 때에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
8 그래서 군중은 올라가 자기들에게 해 오던 대로 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9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10 ○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1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그분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가 다시 군중에게 물었다.
●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13 ○ 그러자 군중은 거듭 소리 질렀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14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15 ○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16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17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이렇게 말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18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19 ○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
20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21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22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번역하면 ‘해골 터’라는 뜻이다.
23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24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
25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26 그분의 죄명 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27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28)·29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분을 이렇게 모독하였다.
▣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30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31 ○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서로 말하였다.
▣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32 우리가 보고 믿게,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33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34 오후 세 시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 이는 번역하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35 곁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였다.
▣ “저것 봐! 엘리야를 부르네.”
36 ○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예수님께 마시라고 갖다 대며 말하였다.
●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봅시다.”
37 ○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한다.>
38 ○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39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40 ○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41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42 이미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그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으므로,
43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44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벌써 돌아가셨을까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인대장을 불러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느냐고 물었다.
45 빌라도는 백인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요셉에게 시신을 내주었다.
46 요셉은 아마포를 사 가지고 와서,
그분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47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 마르코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15,1-39
1 아침이 되자 수석 사제들은 곧바로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온 최고 의회와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 2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3 ○ 그러자 수석 사제들이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소하였다.
4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보시오, 저들이 당신을 갖가지로 고소하고 있지 않소?”
5 ○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6 빌라도는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풀어 주곤 하였다.
7 마침 바라빠라고 하는 사람이
반란 때에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
8 그래서 군중은 올라가 자기들에게 해 오던 대로 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9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10 ○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1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그분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가 다시 군중에게 물었다.
●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13 ○ 그러자 군중은 거듭 소리 질렀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14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15 ○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16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17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이렇게 말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18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19 ○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
20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21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22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번역하면 ‘해골 터’라는 뜻이다.
23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24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
25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26 그분의 죄명 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27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분을 이렇게 모독하였다.
▣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30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31 ○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서로 말하였다.
▣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32 우리가 보고 믿게,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33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34 오후 세 시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 이는 번역하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35 곁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였다.
▣ “저것 봐! 엘리야를 부르네.”
36 ○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예수님께 마시라고 갖다 대며 말하였다.
●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봅시다.”
37 ○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한다.>
38 ○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39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죽음을 무릅쓰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복음 선포를 위하여 언제나 용감히 나아가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국민을 섬기고자 애쓰는 정치인들에게 식별의 은총을 주시어,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앞세우기보다 모든 이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굽어살피시어, 그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시며, 저희는 사순 시기의 정신을 올바로 실천하게 하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돌보아 주시어, 모든 이가 삶의 터전으로서 아끼며 가꾸게 하시고,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정겹게 살아가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저희 공로로는 주님과 화해할 길이 없사오니
외아드님의 수난으로 저희를 용서하시고
이 거룩한 희생 제사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3 : 주님의 수난(성지 주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저희 죄인을 위하여 수난하시고 부당하게 단죄를 받으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를 씻으시고 부활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26,42 참조
아버지, 이 잔을 비켜 갈 수 없어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결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던 베드로 사도가 한 말입니다. 정말 우리 인간의 공로로는 주님과 화해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여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은총과 자비를 하느님께 겸손하게 청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양식을 가득히 받고 간절히 비오니
성자의 죽음으로 저희 믿음에 희망이 넘치게 하셨듯이
성자의 부활로 저희가 영원한 목적지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박해자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의 고통을 기꺼이 받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여기 모인 주님의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사진설명: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사제 생활을 하면서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신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본당의 물품과 자기의 물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성당에 있어야 할 사다리가 없어서 찾아보니 형제님이 자기 집 일에 쓰려고 잠시 가져갔다고 합니다. 전화해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학교도 나오고, 말도 잘 하는데 셈이 좀 흐린 것이 늘 문제였습니다. 먹는 자리, 생색이 나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데 힘든 일, 봉사하는 자리에는 늘 이유가 있어서 빠지는 분이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늘 밝아서 좋긴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본당에서는 열심히 봉사하는데 아파트 단지에서는 비난 받는 분도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신자라면 성당 밖에서도 신자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겉과 속이 다른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큰 목소리로 비난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먼저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지나간 자리는 늘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뒷수습이 힘들었습니다. 솔선수범하고, 추진력이 있어서 좋았는데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지나친 음주 때문에 공든 탑을 무너트리는 분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얌전하고, 봉사도 잘 하는데 그만 술이 과하면 사람이 변하였습니다. 술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사람이 술을 위해서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서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사제관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 형제님이 자전거를 타고 성당으로 왔습니다. 성당의 문을 다 닫고, 하수구에 있던 오물을 다 꺼냈습니다. 그리고 성모상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33년이 지났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방앗간을 하면서 설날이나 추석이면 어르신들을 위해서 떡을 드리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장학금을 주는 형제님이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면장님이 그 형제님을 위해서 표창장을 준다고 제게 연락해서 알았습니다. 말보다는 늘 먼저 봉사하던 형제님의 따뜻한 마음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큰 바위 얼굴처럼, 동네에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언제나 본당을 지켜 주시던 어르신이 있습니다. 성탄에는 손수 새끼를 꼬아서 구유의 지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어디를 다녀 올 때면 잘 다녀왔는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르신의 집에는 늘 기도의 향내가 났습니다. 집 안의 중심에는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하도 읽어서 낡고 낡아진 성경책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동네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앞장서서 힘을 보태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아픈 분이 있으면 찾아가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비자 인도를 많이 하셔서 대자도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사명을 실천하는 분이셨습니다.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제가 사제 생활을 33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런 분들의 기도와 봉사 그리고 헌신과 열정 때문입니다.

 

예수님 수난의 길에도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다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배반은 절친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많은 것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본당에서도 보면 그렇습니다. 단체의 간부들끼리도 없는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흉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배반은 사제/ 수녀/ 평신도 모두에게서 나타나곤 합니다. 저는 교구에 있었기 때문에 때로 본당에서 투서를 보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잘못을 지적하고, 본당 신부님을 비난하는 그 사람은 사실 본당 신부님과 늘 가까운 자리에 함께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예수님을 팔아 넘겼던 그 유다와 비교해서 나는 아니죠!”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사람을 종종 봅니다. 늘 모범생이었고, 남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고, 기도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계셨는데, 나는 주님이 힘들어하실 때, 주님께서 함께 기도하자고 하실 때, 어쩌면 늘 주님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 수난의 길에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5처에는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길을 지나가는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우게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십자가를 지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갑자기 아프시거나, 여행을 가게 될 경우가 있죠. 그럴 때 보좌신부는 본당 신부님이 하셔야 할 미사를 하게 되고, 여러 단체의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는지, 아니면 의무감으로 하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면 기쁜 마음으로 하기보다는 의무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길 제 6처는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씻어 드림을 묵상합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내용은 없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녀 베로니까는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기고 가실 때,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닦아 준 예루살렘의 어느 부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성면을 씻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거기에 주님의 모습이 박혀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그 여인은 베로니까로 알려졌는데, "베로" 는 라틴어로 "베라"(참 진실한) 이고, "이까" "아이콘" 즉 성화상을 뜻하므로, 그녀의 이름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참 모습" 이란 뜻이 됩니다. 이 사건이후 그녀의 운명은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전설로 전해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나는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고 있는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들도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 좋겠습니다. 베로니카 성녀처럼 주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과 피를 닦아 드리면 좋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지주일

복음: 마르 15,1-47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을 한번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갈 때 타고 들어갈 동물을 선택하시는데, 엄청 웃깁니다.

 

이제 마지막인데, 이왕이면 좀 있어 보이게, 코끼리 정도는 타고 들어가시면 참 좋았을 텐데.

코끼리가 아니라면 키 큰 낙타나 멋진 백마 정도는 괜찮았을텐데...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선택하신 동물은 어린 나귀였습니다.

나귀는 말과에 속하지만 그 모습이 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왜소합니다.

 

생긴 것도 생뚱맞습니다.

어린 나귀! 창조주 하느님의 외아들이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분께서 타시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힘과 권세와 능력긍 겸비한 초강력 세속 왕권을 학수고대했던 예루살렘 사람들의

그릇된 기대감에 ‘빅 엿’ 하나를 제대로 먹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분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마음껏 발휘하셨습니다.

 

인류 전체의 구원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머릿속에 명료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의식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마음을 따뜻이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 사이로 내려가야 하고,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중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가시는 곳마다 백성을 웃음의 도가니,

그리고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과 마주 앉아 소주잔을 주고받는 메시아, 한잔 술에 기분이 좋아져 죄인인 인간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는 메시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메시아, 우리와 마주 앉아

썰렁한 아재 개그를 연발하시는 메시아...

 

우리의 하느님은 이처럼 따뜻하고 친근한 분이십니다.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키작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키를 낮추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낯설어할까 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메시아이십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부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늘 전례는 기쁨과 슬픔이 혼합되어 교차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기쁨이 충만해 있습니다. 

“호산나” 하고 외쳐대는 군중들의 환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호는 일시에 지나가고, 수난과 죽음의 비탄이 젖어듭니다.

환호와 환영의 축제 행렬은 이제 배척과 조롱의 십자가 행렬로 바뀝니다.

축복의 성지 가지는 저주의 채찍이 됩니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던 이들은 이제 예수님의 속옷마저 벗겨갑니다.

 

나귀 위에 오르셨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달리십니다.

왕으로 떠받들어져 성 안으로 모셔졌던 그분은 마침내 강도와 함께 성 밖에서 처형됩니다. 

그래서 성주간이 시작되는 오늘은 두 개의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주님 성지 주일>이면서, 동시에 <주님 수난 주일>이라 불립니다.

오늘 제1독서는 '주님 수난 주일'의 특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매질하는 자들에게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뺨을 내맡기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 <야훼의 종의 셋째노래>를 들려줍니다. 

오늘 제2독서는 주님 성지 주일의 특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예수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 찬가>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마르코가 전한 예수님의 수난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1,1)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수께서는 공생활을 통해서 당신의 신분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악령들이 예수님의 신비의 일면을 알아챘을 때에도(1,34; 3,12),

당신의 변모를 체험한 제자들에게도(9,9)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곧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신비에 가려졌습니다. 

오늘 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드러나는 부분이요(14,1-52),

둘째 부분은 다른 등장인물들, 곧 성전경비병, 군중, 대사제, 다른 유다인들, 빌라도와 그의 군인들이 등장하는 부분입니다(14,52-15,41). 

이제 메시아의 비밀은 오늘 복음인 이 수난기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 신비의 전모가 폭로되게 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셨을 때 생긴 일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마르 15,38)

그렇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가리고 있던 비밀의 장막이 두 쪽으로 찢어졌습니다. 

감추어진 베일을 '찢고서' 당신 자신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이야말로 그분을 감추고 있던 신비의 베일을 벗겨줍니다.

바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이 ‘바라봄’, 이 ‘발견’에 대한 놀라움에서, 예수님 수난의 극적인 사건은 비로소 신비롭고 경이로운 기쁨으로 번져갑니다. 

결국 마르코복음의 전체 줄거리는 바로 이 ‘발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발견’은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고 감독하면서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본’ 백인대장의 고백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마르 15,39)

이제 ‘십자가의 무력함’은 ‘전능함’으로 바뀌게 되고,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대체 백인대장은 이 나약한 십자가의 죽음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바보같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본 것일까?

사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끝이 아닌 시작을 봅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봅니다.

실패가 아닌 승리를 봅니다.

 

곧 그는 나약함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신적 권능을 봅니다.

전능함이 무력함 안에서 이루어짐을 봅니다.

약함의 어리석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권능을 봅니다.

어둠 가운데서 오히려 빛과 사랑의 무한함을 봅니다.

죽음을 건너간 사랑을 봅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이 ‘찢어진’ 자리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자신을 바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랑을 보았습니다. 

 

죽음은(십자가는) 언제나 모순을 드러내지만, 바로 그 모순은 찢어졌고, 아니 바로 그 모순과 화해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에 지배당하면서도 오히려 죽음은 찢어져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사랑의 장소가 되고. 구원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십자가에 메달리신 분이 구원자 메시아임을 봅니다. 

그리하여 외칩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마르 15,39)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이 ‘나약함’에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로 찢어질 때입니다.

우리네 세상의 기준이 찢어질 때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이 찢어지고, 사랑에 눈을 뜰 때입니다.

사랑을 바라보게 될 때입니다.

사랑으로 바라볼 때입니다.

바로 그 모순과 화해할 때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야말로, 십자가의 이 ‘무력함’이야말로,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요,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아니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는 비결이 됩니다.

 

진정 자유로워지는 비결이 됩니다.

구원의 길이 됩니다.

해방인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은 내 자신이 찢어지는 것이요, 내 의식의 장막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억울하게 묵묵히 나약하고 어리석게 죽어간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이 신비 앞에,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자신을 내놓고 죽는가? 

그 바람에 찢어지고 있는가? 
나 자신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찢고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는가?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가?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르 14,24)

 

주님!

제가 산산조각 났을 때 저보다 먼저 산산이 부서진 이는 당신이십니다.

저를 풍지박살낸 이도 바로 당신이십니다.

그래야만 온 몸을 쪼개고 피 흘리신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도 당신처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먼저 부서지고 찢어져 피 흘리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23.사순 제5주간 토요일                                                        에제37,21ㄴ-28 요한11,45-56

 

                                                               “우연은 없다”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회개하라, 살리라.”(에제18,31ㄱ.32)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임을 깨닫습니다.

많이들 아프고 병든 모습들입니다.

 

죄가 많으니 병도 많고 제대로 된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아니 매우 적습니다.

정말 길을 잃고, 희망을 잃고, 빛을 잃고 방황하면 괴물이나 폐인이 되기 십상인 오늘의 현실입니다.

너무나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히 지도자들은 기도해야 하는 때입니다.

기도해야 회개와 더불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가 따릅니다.

사순시기 막바지입니다.

역시 답은 단 하나, 하느님께 돌아오는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에 돌아와 제정신으로 제몫의 일을 하며 제대로 사는 지극히 평범하고

온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벽 새롭게 눈에 띈  말마디들이 고마웠습니다. 

 

1.서울 이경상 주교의 문장이 확정되었고 사목표어가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기(Vivere In Corde Jesu)”, 참 멋지고 아름다운 사목표어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예수님 성심으로 살고 싶음은 믿는 이들 누구나의 바람일 것입니다.

 

2."세상과 벽을 쌓는다면 갇혀있는 나와 마주할 뿐이다.

그러니 사람이 지겹다면 오히려 사람 속으로 들어가라.

하루 아침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먼 곳으로 떠나면 무지렁이로 끝날 뿐이다."-다산

 

2.교황청 설교가 칸타라메사 추기경의 다섯 번째 사순강론 성서 말씀도 새롭게 마음에 와닿았고

청중 맨앞 한복판에 경청하는 교황님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누구든 죽더라도 살 것이고, 살아서 믿는 누구든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음이 우리 삶의 모두임을 웅변하는 강론이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모두가 은총이요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닌 하느님 섭리의 결과요, 신의 한수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요셉 수도원의 수도형제들 하나하나가 그러합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곤 도대체 해명될 수 없는 공동체 삶의 신비입니다.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선물같은 존재요 우리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응답은 감사와 찬미,

그리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수도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면서 수도공동체 삶을 “렉시오디비나”했을 때의 깨달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2.모든 것은 다 필요했다.

3.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4.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를 살라.”

 

넷으로 요약되는 하느님 섭리의 깨달음이요, 지금도 이런 깨달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연은 없고 모두가 하느님 은총의 섭리안에서 진행된 수도원 역사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금요강론의 주제도 “하느님의 섭리”였고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합니다.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모든 것을 완성해 나가십니다.

그분이 지으신 것은 잠시도 그분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우리가 그분의 영원한 계획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17,28)

 

하느님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좋고 나쁜 모든 일 안에,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들과 무의미해 보이는

우연 속에도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삐뚤빼뚤한 선 위에서도 반듯하게 쓰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역경속에서도 우리 모두 인간의 존엄한 품위를 잃지 않고 반듯하게 사시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바로 이런 모범적 섭리의 인물이 오늘 복음의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침묵중에 말씀하시지 않지만 대사제인 카야파가 우매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섭리를 밝힙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입니다.

이래서 최고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니 이 또한 하느님 섭리안에서 진행됨을 봅니다.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시니 당시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의 심정은 얼마나 착잡했겠는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구원 섭리를 굳게 믿으며 묵묵히 흔들림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이어 당신 몸의 성전을 통해 

영원히 우리 삶의 일치의 중심이 될 것임을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밝혀주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하느님 구원 섭리의 원대한 꿈의 실현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파스카 예수님을 통해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 안에 실현되는 하느님의 꿈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대로 우리 모두 이 거룩한 성전미사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의 꿈이요 진리임을 깨닫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안에 이뤄지는 일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의 허락없이 이뤄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참 좋은 협력자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손에 달린 듯이 노력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참으로 절실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잘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리라.”(예레31,10ㄹ). 아멘


3/24(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되새김 구절

 

1.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나는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고 있는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들도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 좋겠습니다. 베로니카 성녀처럼 주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과 피를 닦아 드리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과 마주 앉아 소주잔을 주고받는 메시아, 한잔 술에 기분이 좋아져 죄인인 인간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는 메시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메시아, 우리와 마주 앉아

썰렁한 아재 개그를 연발하시는 메시아...

 

우리의 하느님은 이처럼 따뜻하고 친근한 분이십니다.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키작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키를 낮추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낯설어할까 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메시아이십니다.(양승국 신부)

 

3. 대체 백인대장은 이 나약한 십자가의 죽음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바보같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본 것일까?

사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끝이 아닌 시작을 봅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봅니다.

실패가 아닌 승리를 봅니다.

 

곧 그는 나약함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신적 권능을 봅니다.

전능함이 무력함 안에서 이루어짐을 봅니다.

약함의 어리석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권능을 봅니다.

어둠 가운데서 오히려 빛과 사랑의 무한함을 봅니다.

죽음을 건너간 사랑을 봅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이 ‘찢어진’ 자리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자신을 바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랑을 보았습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르 14,24)

 

주님!

제가 산산조각 났을 때 저보다 먼저 산산이 부서진 이는 당신이십니다.

저를 풍지박살낸 이도 바로 당신이십니다.

그래야만 온 몸을 쪼개고 피 흘리신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도 당신처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먼저 부서지고 찢어져 피 흘리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수도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면서 수도공동체 삶을 “렉시오디비나”했을 때의 깨달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2.모든 것은 다 필요했다.

3.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4.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를 살라.”

 

넷으로 요약되는 하느님 섭리의 깨달음이요, 지금도 이런 깨달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연은 없고 모두가 하느님 은총의 섭리안에서 진행된 수도원 역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17,28)

 

하느님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좋고 나쁜 모든 일 안에,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들과 무의미해 보이는

우연 속에도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삐뚤빼뚤한 선 위에서도 반듯하게 쓰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역경속에서도 우리 모두 인간의 존엄한 품위를 잃지 않고 반듯하게 사시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수철 신부)

 

3/24(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456(제86)일 기도  

 

복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대체 백인대장은 이 나약한 십자가의 죽음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바보같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본 것일까?

사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끝이 아닌 시작을 봅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봅니다.

실패가 아닌 승리를 봅니다.

 

곧 그는 나약함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신적 권능을 봅니다.

전능함이 무력함 안에서 이루어짐을 봅니다.

약함의 어리석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권능을 봅니다.

어둠 가운데서 오히려 빛과 사랑의 무한함을 봅니다.

죽음을 건너간 사랑을 봅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이 ‘찢어진’ 자리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자신을 바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랑을 보았습니다. 

 

나와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

나의 매사를 예비하시는 야훼이레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의 현존과 함께...

나의 매사를 인정하고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옴니버스 옴니아. 모든이에게 모든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 2024년 3월24일(일) 6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