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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5일 금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4월 5일 금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78(77),53 참조
주님은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이끄시고, 그 적들을 바다에 빠뜨리셨네.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로 인류와 화해의 새 계약을 맺으셨으니
저희가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1-12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8(117),1-2와 4.22-24.25-27ㄱㄴ(◎ 22)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 주님,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주님, 번영을 이루어 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너희에게 축복하노라.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시편 118(117),24
◎ 알렐루야.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파스카 예물로 거룩한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저희가 세상의 온갖 욕망에서 벗어나 하늘의 기쁨을 찾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21,12-13 참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와서 먹어라.” 하시며,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파견

<부제 또는 사제가 백성을 향하여 말한다.>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진설명: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보 중에 구약성서의 배열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는 성서와 우리가 말하는 구약성서는 그 내용이 같습니다. 그런데 유대인과 교회는 성서의 배열이 다르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의 삼중 구조로 성서를 배열하였습니다. 율법서는 모세5경을 이야기합니다. 율법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 성조들의 이야기,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야기,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율법서는 신호등과 같습니다. 신호등을 잘 지키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듯이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잘 지키면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예언서는 하느님의 뜻과 멀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난과 시련은 하느님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회개하면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회개하면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사자와 어린이가 뛰놀고,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한다고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문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시편이 있습니다. 삶의 지혜와 방향을 알려주는 지혜서와 잠언이 있습니다. 고통 중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욥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삼중구조로 배열된 유대인들의 성서는 안정적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들은 이런 배열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교회는 율법서, 역사서, 성문서, 예언서의 사중 구조로 배열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성서 배열이 안정적이라면 교회의 성서 배열은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아직 메시아, 구세주가 오지 않았지만 교회는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신앙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서가 이야기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실현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뛰놀며,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지내는 시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실현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언서가 말하는 모든 지향 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구약성서 사본은 유대인들이 성서 배열과 같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과 같은 성서 배열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꿈꾸었던 희망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이방인도, 유다인도, 세리도, 창녀도, 과부도, 어린이도 모두 같은 빵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마치 그 모습이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뛰놀며,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두 가진 것을 팔아서 교회로 가져왔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초대 교회가 버린 것은 소유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원수마저 사랑하기 위해 그들은 칼과 방패를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비폭력 무저항은 시대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맞서 선택한 약자들의 항쟁 수단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불의와 폭력의 낡은 시대를 부수고 출현한 평화와 사랑의 새 시대를 사는 승자들의 전혀 다른 지배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의 길입니다. 예언자들의 희망을 현실의 삶에서 드러내는 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의 희망을 현실의 삶에서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복음: 요한 21,1-14

 

주님께서 우리 인생 여정에 현존하시니 즉시 상황은 급반전됩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주님 부재시 제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반대로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현존하실 순간의 모습도 동시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후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제자단에 전해졌지만, 아직도 제자들은 긴가민가했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헛것을 봤겠지?

누군가가 만든 헛소문이겠지? 생각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제 새로운 왕국에서의 물 좋은 자리에 대한 희망도 사라져버렸으니,

앞으로 살아갈 길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 저변의 표현을 베드로 사도가 대표해서 던졌습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다른 제자들도 동조해서 함께 밤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그 날따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고기잡이라는 것이 참으로 희한하더군요.

잔뜩 챙겨서 낚시를 떠날 때는 얼굴에 화색이 만연합니다.

발걸음도 얼마나 가벼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허탕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운지?

돌아 나오는 길은 또 얼마나 멀고 가파른지? 꽝치고 호숫가로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우중충, 망연자실...

 

주님 부재시 우리들의 모습은 언제나 그러합니다.

인생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의미가 사라져버렸으니, 우리네 삶에서 기대할 것이 그리 없습니다.

삶의 방향, 중심, 지주가 사라져버렸으니, 낙담과 절망, 무의미가 전부입니다.

 

반면에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현존하시니, 그 얼마나 충만하고 화사한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하셔서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인생 여정에 현존하시니 즉시 상황은 급반전됩니다.

어둡고 음산하고 우중충했던 분위기는 즉시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변화됩니다.

항상 목마르고 배고프고, 결핍 투성이였던 우리네 나날이었는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즉시 풍성하고 충만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와서 아침을 먹어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번씩이나 발현하셨건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절망에 빠져있고, 과거의 생업이었던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셨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그물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절망과 실의에 빠져 엉뚱한 곳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제자들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시어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

(요한 21,6)

그들이 그렇게 하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날 아침을 열치시고 오시어,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서 식사를 준비하시고 부르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주님을 먼저 알아본 이는 요한이었지만, 그분께 먼저 달려간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요한은 관조적이고 베드로는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한은 사랑을 받은 이가 되고, 베드로는 일을 맡은 이는 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른 것은 와서 시중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그들에게 시중을 드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게 하고 깨우쳐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그리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지만, 당신께서는 그들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숯불에 구운 물고기’는 수난 받으신 당신의 몸을 드러내줍니다. 

‘빵’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바수어진 당신의 몸을 드러내줍니다. 

그렇게 당신 자신을 바쳐 부활생명을 담은 사랑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당신의 밥상을 받아먹는 일입니다. 

그것은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시중을 받는 일,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당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당신의 향기를 뿜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신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이요, 당신의 사랑을 아는 일이요, 그리고 그 사랑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그 사랑을 증거하고 부활생명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곧 저희의 삶으로 당신께 상을 차려 올려야 할 일입니다.

형제를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의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해야 할 일입니다.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과 내맡김의 생선을 구워 드려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상을 차려 올리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고 자란 제가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형제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4.4.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사도3,11-26 루카24,35-48

                                                             “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의 참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의 참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섬기는 자세로, 배우는 자세로 깨어 겸손히 사는 것입니다.

눈만 열리면 주변 모두가 스승이요 배울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가르침과 깨우침이 되는 여러 예화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이런 가르침에 유의하여 사는 이들이 주님의 참사람들이겠습니다.

 

1.역시 오늘 소개되는 옛 어른이 말씀입니다.

“사람과의 신의(信義)를 지키는 일은 먼 이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해야할 덕목이다.”-다산

“이익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견리사의;見利思義),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치며,

희미해진 약속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완성된 인간이라 할 수 있다.”-논어

 

2.계속되는 파스카의 축제와 더불어 만개하기 시작한 봄꽃들에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순간 떠오른 가르침이 정직입니다. 일년 꼬박 기다렸다가 때되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자연은 참 정직하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에서 수인중 가장 무시받는, 사람 취급 못받는 죄인들이 사기꾼이라 합니다.

 

정직, 효도, 우애를 조카들에게 가훈(家訓)으로 남기고 떠난 셋째 형님 생각도 납니다.

가훈 그대로 참 정직하게 살아가는 세 형제 조카들입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정직이 가장 오래간다”란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역시 ‘신의’와 더불어 마음에 새겨야 할 ‘정직’이란 덕목입니다.

 

3.또 어제 배운 한말마디도 잊지 못합니다. 깊은 공감과 깨우침을 주는 말마디입니다. 

 

“좋은 이론만큼 현실적인 것은 없다.”

 

저는 이 말마디를 “좋은 강론만큼 현실적인 것은 없다.” 또 “좋은 공부만큼 현실적인 것은 없다.”로 읽었습니다.

좋은 이론이 좋은 실천으로 이끕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람들이라면 좋은 이론, 좋은 공부에 힘써야 할 것이고

좋은 공부의 으뜸은 파스카 예수님 공부일 것입니다.

삶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데, 좋은 사람이 되는데, 좋은 이론, 좋은 공부는 얼마나 중요하겠지는지요.

 

4.낮은 자리 곳곳에 피어나는 제비꽃을 보니 23년전 써놨던 “절망은 없다”란자작 고백시가 떠오릅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그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제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고 사랑스럽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구나

 절망은 없다!”-2001.4.18.

 

하느님 사전에 없는 낱말이 절망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탄력좋은 삶, 희망의 삶이 바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파스카의 삶입니다.

 

5.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전임 베네딕도 교황님과 세상 떠나기전 10년간 얼마나 깊은 우정을 나눈 삶인지,

또 얼마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겸손하고 지혜로운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베네딕도 교황님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사랑했는지 깨닫게 되는 최근 인터뷰 내용도 감동적입니다.

 

“그분은 나에게 아버지와 같았다. 그분은 언제나 나를 옹호했고 결코 간섭하지 않았다,

베네딕도 그분은 참으로 젊잖은 분이였다.

어떤 경우든 사람들은 제한된 그분의 움직임에서도 유익을 얻었다.

 

그분은 참 섬세한 분이셨다.

그러나 그분은 약하지 않았고 강인했다.

그분은 참으로 겸허했고, 어떤 부담을 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은 참 많이도 고통을 겪었다.”

 

두분 교황들에서 위대한 성인의 면모를 봅니다.

이런 주님의 제자다운 한결같은 상호존경과 신뢰, 겸손의 모습들이 우리 마음에 깊은 안정(安靜)과

평화를 줍니다.

 

6.한밤중 기상하여 휴게실에 가는 도중 게시판에 붙은 부고에 순간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독일 오틸리엔 베네딕도 연합회의 전설이 된 노트켈 아빠스의 부고 내용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께, 2024년 4월3일 로마에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선종하신

사랑하는 노트커 볼프 아빠스님의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을 매우 슬프게 접했습니다.

노트커 아빠스는 1940년 6월 21일 그뢰넨바흐에서 태어나 1962년 9월17일 서품을 받았습니다.

1977년부터 2000년까지 성 오틸리엔 총아빠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베네딕도회 수석아빠스를

역임했습니다.

기도중에 노트커 아빠스를 기억해 주세요. 아빠스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원한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전무후무의 약력을 지닌 불가사의의 탁월한 지도자 아빠스였습니다.

저보다 9세 연상이니 우리나이로 85세입니다.

죽음도 멀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성 베네딕도의 경구가 떠오릅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성규4,47)

(Mortem cotidie ante oculos suspectam habere)

 

누구에게나 언젠가 맞이할 공평한 죽음이요,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참 귀한 선물같은 오늘 하루, 본질적 깊이의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무엇보다 주님 평화의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자 우리가 이웃에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주님께는 벽이 없습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임재하실 때 벽은 변하여 문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유령이 아니라 영과 육을 지닌 참된 분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늘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평화와 더불어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용서를 위한 회개의 사도로 중책을 위임받은 제자들의 활약상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에서 펼쳐집니다.

앞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 이은 솔로몬 주랑에서의 설교로 그 일부를 인용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중 핵심 부분을 나눴습니다.

무지의 악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회개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회개입니다.

온전히 자나깨나 하느님을 향해 활짝 열린 회개의 삶이요, 회개와 더불어 선사되는 성령의 은총이,

믿음과 평화가 주님의 참사람이 되어, 주님의 증인이 되어 살게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4월5일(금) <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초대 교회가 버린 것은 소유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원수마저 사랑하기 위해 그들은 칼과 방패를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비폭력 무저항은 시대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맞서 선택한 약자들의 항쟁 수단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불의와 폭력의 낡은 시대를 부수고 출현한 평화와 사랑의 새 시대를 사는 승자들의 전혀 다른 지배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의 길입니다. 예언자들의 희망을 현실의 삶에서 드러내는 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의 희망을 현실의 삶에서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조재형 신부)

 

2.  반면에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현존하시니, 그 얼마나 충만하고 화사한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하셔서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인생 여정에 현존하시니 즉시 상황은 급반전됩니다.

어둡고 음산하고 우중충했던 분위기는 즉시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변화됩니다.

항상 목마르고 배고프고, 결핍 투성이였던 우리네 나날이었는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즉시 풍성하고 충만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3. ‘숯불에 구운 물고기’는 수난 받으신 당신의 몸을 드러내줍니다. 

‘빵’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바수어진 당신의 몸을 드러내줍니다. 

그렇게 당신 자신을 바쳐 부활생명을 담은 사랑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고 자란 제가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형제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주님께는 벽이 없습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임재하실 때 벽은 변하여 문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유령이 아니라 영과 육을 지닌 참된 분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늘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평화와 더불어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이수철 신부)

 

4월5일(금) <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468(98)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숯불에 구운 물고기’는 수난 받으신 당신의 몸을 드러내줍니다. 

‘빵’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바수어진 당신의 몸을 드러내줍니다. 

그렇게 당신 자신을 바쳐 부활생명을 담은 사랑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고 자란 제가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형제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4월5일(금) 5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