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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16일 화요일[(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4월 16일 화요일[(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묵시 19,5; 12,10 참조
낮은 이든 높은 이든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그리스도의 권세와 권능과 구원이 나타났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하느님의 종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세례의 은총이 그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그들이 모든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7,51─8,1ㄱ
그 무렵 스테파노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말하였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1(30),3ㄷㄹ-4.6과 7ㄴ과 8ㄱ.17과 21ㄱㄴ(◎ 6ㄱ 참조)
◎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
○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당신 앞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소서. ◎

복음 환호송

요한 6,3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0-35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에게 이토록 큰 기쁨의 원천을 마련해 주셨으니
기쁨에 가득 찬 교회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영원한 즐거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로마 6,8 참조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 믿나이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파스카 신비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부활로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전임 신부님이 후원금을 주었고, 교우들이 직접 나서서 창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외벽을 칠하고, 전기를 끌어들이면 창고는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는 것과 같다.” 창고를 만들면서 그 밭에서 많은 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봉사자들이 제게는 보물이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창고에 재화를 쌓지 말고, 하늘나라에 재화를 쌓아야 한다.” 창고를 만들면서 수고해 주신 분들은 모두 하늘나라에 재화를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마치고 삼겹살에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은 가뭄 끝에 단비와 같이 정겨운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간에 교우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본당에 대한 사랑과 본당에 대한 열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새로 온 사제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남은 공간에 어떤 건물을 세워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사제관과 수녀원이었습니다. 예전에 사제관과 수녀원을 지으려고 했지만 성당이 너무 외진 곳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중단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성당 주변에 아파트도 들어서고, 학교도 들어섰으니 사제관과 수녀원을 짓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성당 밖에 있는 사제관과 수녀원을 매각하면 건축비도 마련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당 내에 사제관과 수녀원이 있으면 교우 분들과 소통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당까지 출근해야 하는 시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상 치 못한 일이 발생 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제님은 추모공원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도 만들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교우들이 돌아가시면 모실 수 있는 추모의 공간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추모 공원은 미리 신청을 받아서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성당에 그런 공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고인을 위한 묵상과 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우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그림을 그려야할지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목마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모두가 평화롭게 가진 것을 나누었고, 특히 가난한 이와 아픈 이를 돌보았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삶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페스탈로치는 신앙의 원천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아버지이시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죽음이 없다. 인류의 순수한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감사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 이것이 신앙의 원천이다.” 페스탈로치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간, 그리스도, 시인, 모든 것을 남에게 바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축복이 있을 지어다. 그의 이름에 축복이 있을 지어다.”

 

삶은 사름의 준말이고, 사름은 사르다의 명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삶은 사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 줌의 재로 남은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는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삶은 고난의 순간에도, 죽음에 이를지라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활의 꽃이 피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6,30-35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나를 잊고, 일상적인 고통도 잊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때는 어찌 그리도 밥시간이 기다려지는지?

어찌 그리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이 많은지?

왜 그리도 미련하게 숨도 못 쉴 정도로 과식을 하는지?

 

반대로 뭔가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 보람되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할때에는 먹고마시는 일이

부차적인 일이 되고맙니다.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나를 잊고,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과 우울감을 잊고,

더 나아가서 먹고 마시는 일조차 잊게 됩니다.

 

하루는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다니느라 습관적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려왔던 제자들이 이렇게 청합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아직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빵에 대한 참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드럽고 맛있는 세상의 빵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래로만 향하던 제자들의 시선을 더 높은 곳으로 향하도록 초대하십시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매일의 성체성사 안에서 쪼개지고 나누어지며 우리를 위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 안에 현존하시며, 그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헌신과 관대한 나눔으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런 우리의 노력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생명의 빵이요, 동시에 우리를 향한

영원한 생명의 음료가 될 것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내가 생명의 빵이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듣고 호수 건너편까지 찾아온 군중들이 예수님께서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 6,34)하고 간청하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이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 곧 “나는 ~이다”(εγω ειμι)라는 당신 자신에 대한 계시선언문입니다.

곧 당신 신비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신 생명의 신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당신 몸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당신 신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말합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것은 당신 몸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빵은 내 몸이다.”라는 말씀은 한참 뒤에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빵'은 그분의 신성을 가리킵니다. 
‘성찬의 빵’이 거기에 강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빵이 되듯, 이 신성은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입니다.”

그러니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에 대한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의 빵’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 신명기(8,3)의 말씀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 4,4)
또 예언자 아모스는 말합니다.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아모 8,11)
곧 당신 말씀이 ‘참 생명이요 참 양식’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빵을 먹는 일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집니다.

곧 ‘예수님께 와서 말씀을 듣고 믿는 이’ 안에서 실현되는 생명의 빵입니다.
이 '빵'(말씀)은 믿는 이의 생명을 참된 생명으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요한 6,39-40)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고, 아들은 그 뜻을 실현하는 데 전념하십니다.
곧 ‘당신께 와서 보고 믿는 이들’을 살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빵을 먹는 일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지듯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 역시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진정 우리의 내적인 눈이 열려야 할입니다.
곧 ‘믿음’으로 열리는 눈 말입니다.
그 눈은 바로 믿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는다.”
(요한 6,37)

주님!
아래로 흐를 줄 알게 하소서.
모든 것을 받아 흐르는 큰 강물 같은 사람 되게 하소서.
아래에 머물러 있을 줄 알게 하소서.
모든 것을 끌어안은 큰 바다 같은 사람 되게 하소서.
믿어주지 않아도 믿어 주고, 사랑해주지 않아도 사랑해 주며, 물리치기보다 품을 줄 알게 하소서.
당신과 제 형제를 물리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4.15.부활 제3주간 월요일                                                                      사도6,8-15 요한6,22-29

 

                                                             영원한 생명을 찾는 삶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아가는 이들-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타우다 지치나이다."(시편34,2-3ㄱ)

 

자주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육적 삶이 아니라 영적 삶을, 아래에 속한 삶이 아니라 위에 속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파스카의 부활시기에 걸맞는 삶이겠습니다.

 

봄철 신록의 아름다움은 파스카의 아름다움을, 신록의 기쁨은 파스카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매일 거행되는 아름다운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 은총이 파스카의

아름답고 기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요즘 파스카의 봄철, 수도원 제 집무실문을 설렘반 기대반으로 열 때 마다, 한 눈 가득 가슴 가득 안겨 오는

눈부신 신록의 아름다움, 신록의 기쁨이 이처럼 벅찬 감동인데 천국의 하늘문이 열렸을 때의 아름다움과

기쁨은 얼마나 놀라울지 상상해 보곤 합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어디나 아름다운 꽃세상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연의 온갖 아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이 또한 영원한 생명의 하늘나라를, 영적 삶을 살라는 표징들입니다. 

 

아래로부터 위로에로 관심의 방향을 돌리자는 것이며 천상적 아름다운 영적 삶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너무나 세상 것들에, 육적인 욕망에 매몰되어 길을, 빛을, 희망을, 꿈을, 삶의 의미를, 중심을,

자신을 잃고 생각없이, 영혼없이 떠도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제 바티칸 광장에서 삼종기도후 교황님 강론 다음 대목도 우리의 영적 분발을 촉구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수천의 소식들로 폭격당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피상적이고 무용한 것들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더 나쁘게 그들은 잡담거리가 되고

악의적이기도 하다...우리가 말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이런 것들을 말하도록 하자: 어떻게 주님이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보는 것과 이것을 나누는 것,

강의가 아닌 우리가 주님이 우리 가까이에서 감동시킨 유일했던 순간을 나누는 것,

그리고 우리의 기쁨에 불을 붙이고, 이웃의 눈물을 마르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신뢰와 위로, 힘과 열심, 용서와 부드러움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교황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주님 파스카의 사람이 되어 파스카의 신비를, 파스카의 기쁨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난 이들이요 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사는 이들입니다.

 

아주 오래전 자작시도 이와 일치합니다.

23년전 파스카의 봄철에 쓴, 자주 인용했습니다만 저에겐 늘 새로운 감동을 주는 ‘민들레꽃’이란 시입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뒷뜰 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

 하늘의 별처럼!”-2001.4.16.

 

좌우간 이 시를 쓰고 한달은 영적 기쁨에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게 떠오릅니다.

오늘 지금 여기 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요!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사도행전의 스테파노는 물론 성서와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이

바로 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사셨고, 지금 역시 곳곳의 땅에서 무수한 의인들이 하늘의 별처럼 살아갑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빵의 기적을 보고 당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육신의 빵이 아니라

진짜 영원한 생명의 빵이자 하늘이신 당신을 찾으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에로, 아래에 속한 사람에서 위에 속한 사람으로, 땅에 속한 사람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세상의 사람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 전환이 참된 회개이자 생명의 길이요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이탈의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이것이 진짜 관상적 삶입니다.

다산 어른의 충고입니다.

 

"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 자체는 아니다.

돈은 그저 돈일 뿐이다. 집착하지도 멀어지지도 마라.

재물은 메기와 같아서 단단히 붙잡으려 할수록 미끄럽게 빠져나간다."

 

얼마나 세상 것들에 노예되어 자유를 잃고 살아가는 작금의 사람들인지요!

책을 보는 사람들은 날로 줄어들고 인류가 지구를 구할 시간이 2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경고합니다.

 

이어 예수님의 말씀에 놀란 아래에 속한 땅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참 화두같은 말씀이지만 진리입니다.

믿음은 생명입니다.

무엇을 ‘하느냐’에 앞서 우선적인 것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깊어짐과 더불어 예수님과 하나될수록 충만한 생명에

그가 하는 일 모두가 성화되어 하느님의 일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본보기가 사도행전의 스테파노입니다.

땅위에서 주님의 별처럼 살아가는 초연한 자유를 누리는,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입니다.

아래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지만,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합니다.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자 이들은 거짓증인들을 내세워 스테파노를 모함합니다만 그의 한결같은 자세는

진리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는 스테파노의 얼굴은 주님과의 깊은 일치를 이룬 그의 자유롭고

순수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믿음의 일치와 더불어

초연한 자유를 누리며,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게 하십니다.

 

"실로 당신의 궐내라면, 천날보다 더 나은 하루,

 악인들의 장막안에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 집 문간에 있기 소원이니이다."(시편84,11). 아멘.


4월16일(화) < 부활 제3주간 화요일 >, 되새김 구절

 

1. 페스탈로치는 신앙의 원천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아버지이시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죽음이 없다. 인류의 순수한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감사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 이것이 신앙의 원천이다.” 페스탈로치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간, 그리스도, 시인, 모든 것을 남에게 바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축복이 있을 지어다. 그의 이름에 축복이 있을 지어다.”

 

삶은 사름의 준말이고, 사름은 사르다의 명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삶은 사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 줌의 재로 남은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는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삶은 고난의 순간에도, 죽음에 이를지라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활의 꽃이 피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조재형 신부)

 

2.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매일의 성체성사 안에서 쪼개지고 나누어지며 우리를 위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 안에 현존하시며, 그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헌신과 관대한 나눔으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라고 초대하십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는다.”
(요한 6,37)

주님!
아래로 흐를 줄 알게 하소서.
모든 것을 받아 흐르는 큰 강물 같은 사람 되게 하소서.
아래에 머물러 있을 줄 알게 하소서.
모든 것을 끌어안은 큰 바다 같은 사람 되게 하소서.
믿어주지 않아도 믿어 주고, 사랑해주지 않아도 사랑해 주며, 물리치기보다 품을 줄 알게 하소서.
당신과 제 형제를 물리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어제 바티칸 광장에서 삼종기도후 교황님 강론 다음 대목도 우리의 영적 분발을 촉구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수천의 소식들로 폭격당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피상적이고 무용한 것들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더 나쁘게 그들은 잡담거리가 되고

악의적이기도 하다...우리가 말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이런 것들을 말하도록 하자: 어떻게 주님이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보는 것과 이것을 나누는 것,

강의가 아닌 우리가 주님이 우리 가까이에서 감동시킨 유일했던 순간을 나누는 것,

그리고 우리의 기쁨에 불을 붙이고, 이웃의 눈물을 마르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신뢰와 위로, 힘과 열심, 용서와 부드러움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에로, 아래에 속한 사람에서 위에 속한 사람으로, 땅에 속한 사람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세상의 사람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 전환이 참된 회개이자 생명의 길이요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이탈의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이것이 진짜 관상적 삶입니다.(이수철 신부)

 

4월16일(화) < 부활 제3주간 화요일 >, 479(109)일 기도

 

복음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찾게 하소서.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에로,

아래에 속한 사람에서 위에 속한 사람으로,

땅에 속한 사람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세상의 사람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 전환하게 하소서.

참된 회개이자 생명의 길로 가게 하소서.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이탈의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진짜 관상적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4월16일(화) 6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