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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28일 주일[(백) 부활 제5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4월 28일 주일[(백) 부활 제5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부활 제5주일입니다. 농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된 포도나무의 가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실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새로운 인류의 맏이가 되어, 성덕과 평화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성령의 은혜를 청합시다.

입당송

시편 98(97),1-2 참조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 드러내셨네.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언제나 저희 안에 파스카 성사를 이루시어
거룩한 세례로 새로 난 저희가
하느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이 세상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9,26-31
그 무렵 26 사울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가 제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7 그러나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28 그리하여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다.
29 그리고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30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
31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2(21),26ㄴ-27.28과 30ㄱㄴ.30ㄷ-32(◎ 26ㄱ 참조)
◎ 주님, 저는 큰 모임에서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 채우리라.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 찾는 이들은 그분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
○ 온 세상 땅끝마다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만 민족 모든 가문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세상 모든 권세가들 그분께만 경배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모든 이들 그분께 무릎 꿇으리라. ◎
○ 내 영혼 주님 위해 살고,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다가올 세대에게 주님 이야기 전해져, 태어날 백성에게 그 의로움 알리리라. 주님이 이렇게 하셨음이로다. ◎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18-24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15,4.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언제나 주님 안에 머물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을 드러내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의 샘이신 주님, 이 나라 공직자들을 살펴 주시어,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슬기롭게 이겨 내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참된 봉사자로서 일할 수 있게 하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어, 주님께서 몸소 위로하여 주시고, 저희도 그들과 함께하며 주님 부활을 체험하게 하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지역 사회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저희 그리스도 신자들을 하나로 모으시어, 그 안에서 일치와 사랑의 본보기가 되고 부활의 희망을 전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하느님, 이 거룩한 교환의 제사로
한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저희를 하나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5,1.5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르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 열매 맺는 가지가 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의 은총으로 저희를 가득 채워 주셨으니
자비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사진설명: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5주일

 

순례 중에 개신교회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분이 있었습니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지만, 성모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천주교회는 성지순례가 신앙의 행위로 익숙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성지순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개신교회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신앙생활을 하기에 성모님에 대한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모님을 예수님의 어머니로 인정하지만,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없고,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없기에 성모님의 발현을 인정하는 성모 성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합니다. 성지는 대부분 열심한 신앙인들의 땀과 눈물이 있던 곳에 있습니다. 그분들의 놀라운 열정과 헌신이 있던 곳에 있습니다. 성지는 대부분 순교자가 묻혔던 곳에 있습니다. 성인들의 유해가 있는 곳에 있습니다. 개신교회는 성인들에 대한 공경과 신심이 없기에 성지순례를 갈 기회가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성지에는 가톨릭교회의 성당이 있기에 개신교회에서 성지순례를 올 이유도 없다고 합니다. 개신교회에서 천주교회로 개종하신 분 중에는 열심한 분들이 많습니다. 개신교회의 장점과 천주교회의 장점을 받아들여 신앙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고 있었습니다. 목이 마른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물을 한 잔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서로 상종하지 않는데 물을 청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네가 주는 물을 마시면 곧 다시 목이 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을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남편도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과거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여러 남자가 있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지난날을 모두 아시는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참된 예배는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개신교회나 천주교회라는 장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다가 개종했어도, 행실이 바르지 못해서 비난받았을지라도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따른다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거라는 안경을 쓰고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와 이해라는 안경을 쓰라고 하십니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이 있습니다. 10억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이끌었던 덩샤오핑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잡을 수 있다면 상관이 없다.” 이는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중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의미였습니다. 덩샤오핑의 개혁과 개방으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사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체험했던 사울은 이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을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회는 사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울은 이제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초대교회의 교리와 신학을 정립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참된 예배는 예루살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참된 예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열매 맺는 가지가 될까요? 개종했을지라도, 지난날의 허물이 있었을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제5주일

복음요한 15,1-8

 

예수님이란 원줄기에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은 의미를 지닙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예수님의 훈화 말씀을 경청하면서, 참 많은 성찰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붙어있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붙어있는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혹시라도 떨어져 나갈까봐, 안간힘을 다해 원줄기에 붙어있지만,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꼭 붙어있기는 하지만 일생에 도움도 안 되는 가지로 여겨지지 않을까, 두려움이 큽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구성원들을 만납니다.

소속은 분명 우리 소속이 맞는데, 우리 편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 소속이라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만,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신이나 영성과는

전혀 별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무슨 불평불만이 그리 많은지, 입만 열면 자신이 속한 단체나 리더들을 향한 험담을 폭포수처럼 쏟아냅니다.

 

이런 분들은 증거의 삶이 아니라 반대증거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표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 표양이 됩니다.

복음적 증거의 삶이 아니라 반복음적 증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메스컴을 장식하는 사이비 교주들이 그렇습니다.

목소리 높여 성경을 가르친다고 외쳐대지만, 정작 성경을 욕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치를 훼손하고 축소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 예수! 하지만 정작 예수님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있습니다.

 

저희같은 사제나 수도자들도 조심해야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반대증거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우리의 악표양으로 인해, 고압적인 태도로 인해, 제왕적 리더십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반복음적 증거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가지는 나무의 원줄기 붙어있음으로 인해 의미를 지닙니다.

잘려나간 그 순간부터 가지는 생명력을 잃을뿐더러 아무런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습니다.

붙어있는 한 매년 싱싱할 포도송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잘려나가는 그 순간 1분이면 다 타고 사라질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간 존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란 원줄기에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은 의미를 지닙니다.

제 색깔을 찾습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을 가치 있고, 고귀라고, 존엄하고, 빛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이란 너무도 든든한 지주에 끝까지 붙어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잠시나마 그분과 떨어져 있었다면 최대한 빨리 그분께로 돌아가 다시 붙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부활 제5주일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바오로의 회심이 그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단호하고, 결정적인 사건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참으로 그의 회심은 죽음을 담보로 한 회심이었습니다.

 

그의 회심은 신앙이 하나의 장신구가 아니라, ‘신앙이 아니면, 삶이 의미도 없다.’라는 실존적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윤리 도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도 바오로에게 목숨을 불사하게 한 신앙의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이 진리에 대해서,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요한 3,18)

이는 단지 언행일치의 윤리도덕 차원의 차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적 속성인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 근거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은 단지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참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서, 예수님의 진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참된 진리는 '참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곧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여덟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머물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스런 단어인 '머물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서는 우선적으로 '붙어있음'을 말합니다.

곧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서, 다른 데서가 아닌 바로 그 포도나무로부터 수액을 받아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 물을 떠나면 죽음이듯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머물다'는 말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호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로 ‘붙어있음’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다 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잘려져 불에 태워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붙어있되 '열매를 맺는 이'라야 '머물러 있는 이' 입니다.

따라서 '머물다'는 말의 의미는 단지 그분께 붙어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열매 맺으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워드림이요, 그분의 말씀의 권능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참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요, 그분과 결합하여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 말합니다.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 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 6,17)

그러기에 '머물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상호 내주 혹은 상호 공유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벌리는 역동적인 활동이 벌어지는 ‘상호 친교’요, ‘상호 교제’요, ‘상호 교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오늘 <예물기도>에서는 '거룩한 교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밝히듯,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하찮은 우리에게 영광의 관을 씌어주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활동하십니다. 

참으로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그분과 이토록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공동 본성(Connaturality)'에서 오는 앎에 경탄하여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 우리가 하나라는 걸 그토록 모르는가?”

 

바로 이 ‘공동 본성’이 우리에게 신적 진리, 참된 진리를 가능케 하는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가 신적 진리로써 사랑이 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스런 ‘참 사랑’, 하늘스런 ‘참 생명’이 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토마스는 ‘공동 본성에서 오는 사랑의 지혜, 하느님 사랑으로 주어지는 신적 지혜 혹은 관상’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신적 진리, 참된 진리에 참으로 머물러 있고, 열매를 많이 맺을 수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아본다면,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곧 가지는 나무에 속해 있을 뿐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가지가 나무를 지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존속시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또 열매를 맺으실 수 있는 그분께 승복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라야 참된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지 붙어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일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내주하신 그분의 수액을 받아 마시며, 말씀 안에 머물고, 사귀고, 교제하면서, 당신께서 열매를 맺으시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사도 바오로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한 15,4)

 

주님!

당신께서는 무너뜨리지만 열매를 맺어주셨고, 부서뜨리지만 새싹을 틔워주셨습니다.

이토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서야, 제 자신을 건네주고서야, 당신께 머무르는 법을 배워갑니다.

꽃이 지듯 제가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게 하소서.

열매가 떨어지듯 제가 사라지는 것을 서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는 오늘도 떨어져야 머물게 되는 이 신비로운 사랑 앞에 떨어지지 못함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굽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4.27.부활 제4주간 토요일                                                             사도13,44-52 요한14,7-14

 

                                                              믿음의 여정

                                                     -관계의 뿌리, 믿음의 뿌리-

 

“온 세상아, 주님 앞에 덩실덩실 춤추어라.

 즐기어라, 기뻐하라, 고에 맞춰 노래하라.”(시편98,4)

 

신록의 기쁨에 빛나는 파스카의 축제 계절에 어울리는 시편입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있어도 못 보는 것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눈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관심따라, 마음따라 보기 때문입니다.

눈이 열려 보는 것도 새삼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미사준비중 제의방 창밖을 내다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신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초목들중 해마다 크고 둥글둥글한 대추열매를 달고 있던 대추나무가

완전히 말라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이 극명한 대조가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한참 전에 죽어 있던 것을 이제야 발견한 것입니다.

 

즉시 떠오른 것이 믿음의 뿌리였습니다.

땅속깊이 넓게 튼튼히 뿌리내릴 때 신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초목들입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깊이 뿌리 내린 초목들은 푸르름으로 빛나지만 얕게 뿌리내린 초목들은 곧 시들어 죽습니다.

 

바로 뿌리가 죽은 대추나무였던 것입니다.

뿌리가 죽으면 나무도 죽듯이 믿음의 뿌리가 죽으면 영혼도 죽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믿음의 뿌리, 믿음의 관계입니다.

수도원을 찾는 분들이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여기가 천국입니다.”

말할 때 마다 드린 답변입니다.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관계가 좋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등,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관계가 좋으면 천국이요 관계가 안좋으면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장소개념이기보다는 관계 개념입니다.

날로 주변과 깊어지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관계의 뿌리, 관계의 믿음입니다.”

 

요지의 답변을 드리곤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삶의 중심,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께 날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믿음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이래서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끊임없이, 한결같이, 수도원의 중심인 성전에서 노래로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여기 수도공동체형제들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믿음의 뿌리를 깊이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노래 기도를 바칠 수 있음도 큰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현실이 버거운 우리 모두에게 음악은 진통제가 되어준다”<다산>

“공자는 노래부르는 자리에서 어울리며 누군가 노래를 잘하면 반드시 다시 부르게 했고 뒤이어 화답했다.”<논어>

 

옛 어른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래서 가톨릭교회의 전례가 귀하고 고맙습니다. 믿음의 생활화, 믿음의 뿌리내림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노래로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전례공동기도입니다.

 

예전에 써놨던 ‘뿌리 살이’라는 시도 생각납니다. 

 

“뿌리 없이는 꽃도 없다

 뿌리로 살아야지

 세월속에 묻혀 뿌리로 사는 거야

 꽃 사랑으로 피어날 때까지 

 기다리며 뿌리로 사는거야

 뿌리살이 고달플 때 

 꽃 사랑의 추억으로 갈증 축이며

 하늘 사랑 꽃으로 피어날 그날 그리며

 묵묵히 뿌리로 사는거야

 뿌리없이는 꽃도없다.”-1999.4.

 

바로 정주영성의 핵심도 이런 뿌리 살이에 있음을 봅니다.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관계의 뿌리, 믿음의 뿌리가 정주영성의 핵심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집니다.

바로 제자들의 주님과의 관계의 뿌리, 믿음의 뿌리가 빈약했던 것입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흡사 오랫동안 주님의 집 수도원에서 정주의 믿음 생활을 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같습니다.

정말 깊은 믿음에 믿음의 눈이 열리면 형제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또 하느님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날로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필립보를 비롯한 당대의 제자들의 믿음의 뿌리가 실로 빈약했던 것이며, 예수님의 이 말씀이

늘 새롭게 시작될 이들의 믿음의 여정에 좋은 자극이 됐을 것입니다.

다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님이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정말 믿음이 답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주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중의 우리들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궁극의 답도 주님께 대한 믿음뿐임을 깨닫습니다.

날로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이며, 주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비롯한 제자들입니다.

바로 제자들의 눈부신 선교활동은 부활한 파스카의 예수님과의 깊은 믿음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바로 이 제자들을 통해 일하시는 파스카의 주님이요 바로 이들의 주님과의 일치의 정도를 반영합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담대함은 바로 믿음의 반영입니다. 

 

제자들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은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됩니다.

 

제자들은 무지한 이들의 시기와 박해에 쫓겨 가면서도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나는 모습이

참 자유롭고 홀가분해 보입니다.

믿음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일 것입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차 있었으니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의 참 좋은 선물이 기쁨과

성령충만한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믿음을 튼튼히 하시고 기쁜 삶,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시편8,1). 아멘.


[4월28일(일) 부활 제5주일, 되새김 구절]

 

1.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지난날을 모두 아시는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참된 예배는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개신교회나 천주교회라는 장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조재형 신부)

 

2. 무슨 불평불만이 그리 많은지, 입만 열면 자신이 속한 단체나 리더들을 향한 험담을 폭포수처럼 쏟아냅니다.

이런 분들은 증거의 삶이 아니라 반대증거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표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 표양이 됩니다.

복음적 증거의 삶이 아니라 반복음적 증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란 원줄기에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은 의미를 지닙니다.

제 색깔을 찾습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을 가치 있고, 고귀라고, 존엄하고, 빛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이란 너무도 든든한 지주에 끝까지 붙어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잠시나마 그분과 떨어져 있었다면 최대한 빨리 그분께로 돌아가 다시 붙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한 15,4)

 

주님!

당신께서는 무너뜨리지만 열매를 맺어주셨고, 부서뜨리지만 새싹을 틔워주셨습니다.

이토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서야, 제 자신을 건네주고서야, 당신께 머무르는 법을 배워갑니다.

꽃이 지듯 제가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게 하소서.

열매가 떨어지듯 제가 사라지는 것을 서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는 오늘도 떨어져야 머물게 되는 이 신비로운 사랑 앞에 떨어지지 못함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굽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관계가 좋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등,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관계가 좋으면 천국이요 관계가 안좋으면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장소개념이기보다는 관계 개념입니다.

날로 주변과 깊어지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관계의 뿌리, 관계의 믿음입니다.”(이수철 신부)

 

[4월28일(일) 부활 제5주일, 기도문]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한 15,4)

 

주님!

당신께서는 무너뜨리지만 열매를 맺어주셨고, 부서뜨리지만 새싹을 틔워주셨습니다.

이토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서야, 제 자신을 건네주고서야, 당신께 머무르는 법을 배워갑니다.

꽃이 지듯 제가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게 하소서.

열매가 떨어지듯 제가 사라지는 것을 서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는 오늘도 떨어져야 머물게 되는 이 신비로운 사랑 앞에...

떨어지지 못함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굽니다.

아멘.

 

- 2024년 4월28일(일) 8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