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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4월 29일 월요일[(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4월 29일 월요일[(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가타리나 성녀는 1347년 이탈리아 중부의 시에나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완덕의 길을 걷고자 일찍이 도미니코 수도회의 제3회에 들어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지역들 사이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교황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으며, 건전한 교리와 깊은 영성에 가득 찬 작품들을 남겼다. 1380년에 세상을 떠난 가타리나 성녀는 1461년에 시성되어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으며, 1970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입당송

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동정녀는 등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갔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복된 가타리나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교회에 봉사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여
세상에 드러난 그분의 영광을 보고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4,5-18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5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8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9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10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13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14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15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18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5(113 하),1-2.3-4.15-16(◎ 1ㄱㄴ 참조)
◎ 주님, 저희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또는
◎ 알렐루야.
○ 저희가 아니라, 주님, 저희에게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옵니다.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민족들이 이렇게 말해서야 되리이까? ◎
○ 우리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저들의 우상은 은과 금, 사람 손이 만든 것이라네. ◎
○ 너희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하늘은 주님의 하늘, 땅은 사람에게 주셨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4,26
◎ 알렐루야.
○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1,5―2,2)와 복음(마태 11,25-3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가타리나를 기리며 봉헌하는 이 제사를 받으시고
저희가 그의 삶을 보고 배워
참하느님이신 주님께 더욱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1요한 1,7 참조
하느님이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가타리나가 천상 양식으로 힘을 얻어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셨으니
저희도 이 양식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파티마 성모발현 성지에 처음 간 것은 1996년입니다. 그 뒤로 2005년에도 갔었고, 2012년에도 갔었습니다. 2017년에도 갔었고, 이번 2024년에 갔으니 5번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예전에는 미사를 봉헌하고, 성당에서 기도했는데, 이번에는 안내하는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습니다. 파티마 성지의 광장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동상이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파티마 성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교황님은 1981 5 13, 한 청년에 의해서 총격을 받았습니다. 그날은 64년 전, 파티마의 성모 발현이 있었던 날입니다. 교황님은 1년간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감옥에 있던 저격범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저격범을 용서하였습니다. 교황님은 파티마 발현의 목격 증인인 루시아 수녀님을 만났습니다. 교황님의 저격은 성모님이 루시아에게 알려 주었던 비밀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교황님은 몸에 박혀있던 총알을 성모님의 화관에 봉헌했다고 합니다.

 

교황님은 파티마의 성모님이 바란 것은 회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황님은 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인류와 역사 앞에서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겸허하게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교황님은 우리는 그리스도인들 안에 야기된 분열, 진리의 이름으로 행한 폭력,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은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황님은 평화의 사도가 되어서 160개가 넘는 나라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1989년 독일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 해체되었습니다. 반세기 넘게 갈등과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냉전이 비로소 막이 내렸습니다. 순례에 함께 한 교우들과 묵주기도 행렬을 하였습니다. 개인의 평화, 가정의 평화, 본당 공동체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될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다시 시작될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남과 북의 철도가 연결될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빌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한 가지 원칙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그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벗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 주고, 묶인 이를 풀어 주는 것,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으로 섬기려 할 때, 두 사도는 단호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원칙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손해를 보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은, 인류 문명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원칙과 규칙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힘차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요한 14,21-26

 

살아생전 언제나 주님을 눈앞에 뵙듯이 살았던 카타리나!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 학자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도미니코회 재속회 회원으로서 탁월한 영적 생활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카타리나의 주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 빛나는 수덕 생활, 사심 없는 이웃 사랑의 실천은

즉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성덕의 찬란한 빛을 발견하고 큰 존경과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살아있을 때 성인 소리 듣는 사람이 결국 성인이 되는가 봅니다.

살아있을 때, 쌩 양아치처럼 살던 사람이 죽기 일보 직전에 크게 회개를 해서 성인이 되는 경우는

벼락 맞기보다 힘든 일일 것입니다.

 

카타리나는 자신의 삶을 통해 성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성인의 길을 걸어야 함을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카타리나가 지상에 머물렀던 시간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불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짧은 생애 동안 보여준 삶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성덕은 나이나 연륜과 비례하는 것도 아님을 그녀는 잘 보여준 것입니다.

 

카타리나는 자신의 단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매일을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찾고 만났으며, 사랑으로 주님과 일치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녀의 고백을 통해 그녀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잘 알수 있습니다.

 

“주님, 당신은 나의 벌거벗음을 덮어주는 의복입니다. 당신은 쓴맛이 조금도 없는 감미이므로

그 감미로움으로 우리를 먹이십니다. 오, 영원하신 삼위일체이시여!”

 

깊은 묵상과 관상 기도 중에 주님을 만나 뵙고 난 카타리나는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향해 인자하게 웃으시자 두근거리던 제 가슴이 진정되었습니다.

저도 그분을 향해 방긋 웃었습니다.

제가 그분 앞에 무릎을 꿇자 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길 때보다 더 기뻤습니다.”

 

카타리나가 봉사하러 다니던 성 라자로 병원에는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괴팍한 나병환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테카였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습니다. 언제나 불평불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틈만 나면 의사나 간호사에게 대들었습니다.

강제 퇴원당한 그녀는 거리를 헤매다녔는데, 다니는 곳마다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카타리나가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테카는 카타리나를 저주하면서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녀를 할퀴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계속해서 방문하여 위로해주었고, 상처를 닦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친절의 결과는 늘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쩐 일이야? 성당에 앉아 계시기가 지루했던가 보지?

나를 준답시고 맛있는 과일 케이크를 받아서는 남몰래 다 먹어 치웠군? 내 말이 틀림없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어느 날 드디어 테카가 카타리아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져주던 카타리나의 손에 나병 징후가 생긴 것을 본 것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카타리나, 나 때문에 당신께서 나와 똑같은 몹쓸 병에 걸렸군요.

날 간호하다가 이렇게 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지요?”

 

카타리나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다 생각하시는 바가 있어서 이런 일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더 큰 상을 주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병에 걸리게 하셨을 것입니다.”

 

다행히 테카의 장례식이 끝난 후, 주님께서는 카타리나에게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살아생전 언제나 주님을 눈앞에 뵙듯이 살았으며, 살아있는 주님이신 가난한 이웃을

지극정성으로 섬겼던 카타리나에게 주님께서는 오상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요한 14,21-26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그렇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이가 아니라, 설령 알아듣지 못해도 그 말을 받아들이는 이가 그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넘어 그를(그의 인격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그 말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받아들인 그 말을 지키는 이, 곧 실행하는 이가 진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버리고 그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곧 그를 믿고 신뢰하고 마음으로 결속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라는 말씀은 뒤에 나오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 14,23)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말씀과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우선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사랑과 신의로 맺어진 예수님과의 결속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래 '지키다'라는 동사는 '간직하다', '새기다', 혹은 '신경 써서 돌보다'라는 뜻으로, 마음이 담긴 행동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과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곧 내적 일치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이 전제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행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혹은 그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표현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형제를 사랑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형제의 말을 받아들이고 실행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형제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혹은 그 말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표현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요한 14,23)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저 자신보다 주님을 앞세울 것입니다. 


설령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신뢰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지킬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 14,23)

주님!
빛이 되어 오소서.
저를 사르는 빛으로 오소서.
함께 살며 불살라 태우소서.
저를 태워 세상을 밝히소서.
제가 빛이 되고 사랑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4.28.부활 제5주일                                                       사도9,26-31 1요한3,18-24 요한15,1-8

 

                                                     “내 안에 머물러라”

                                   행복은 선택이요 선물이요 발견이요 노력이다

 

기대반 설렘반 마음으로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만세칠창과 더불어 시작하는 행복한 하루입니다.

저는 늘 만세칠창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 수도원 만세!”

 

만세칠창과 더불어 선사되는 행복입니다. 그리고 다음 시편 구절을 되뇌입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과연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누구나의 소망이 행복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우리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원도 우리 하나하나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행복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요즘 신록의 기쁨으로 빛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파스카의 축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파스카의 기쁨, 신록의 기쁨, 파스카의 행복, 신록의 행복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신록과 파스카 봄꽃들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기대반 설렘반 마음으로 수도원 자비의 집 문을, 집무실 문을 열때마다,

가슴 가득 안겨오는 신록과 파스카의 봄꽃들, 아름다운 환경이 흡사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행복의 초대장”처럼 느껴집니다.

 

행복한 사람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힘겨운 삶을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다려서 언젠가 행복하기로 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책임이요 권리입니다.

언젠가의 행복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할 행복이요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지금 행복을, 하늘나라 천국을 못살면 내일도, 죽어서도 못삽니다.

 

행복은 선택이요 선물이요 발견이요 노력입니다.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있는 행복의 문입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제 행복기도를 다시 나눕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희망과 기쁨, 평화와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정말 마음을 담아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치시면 행복은 선물처럼 주어질 것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선물입니다. 행복은 발견입니다.

행복은 노력입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부활 제5주일 말씀도 행복의 비결을 알려 줍니다.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 있는 “행복의 문”입니다.

소개해 드립니다.

 

첫째,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참 명쾌하여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참 행복하게 합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복음 서두 말씀부터 마음에 듭니다. 아마 직업중 가장 하느님을 닮은 분들이,

하느님의 인내와 겸손을 닮은 분들이,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분들이 농사를 짓는 농부일 것입니다.

성당에서 성사(聖事)요, 식당에서 식사(食事)요, 농장에서 농사(農事)이니 참 중요한 삼사(三事)중 하나가

농사입니다.

농사짓는 분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80% 하느님께서 하신다 고백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의 행복의 소재를 알려줍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네 안에 머무르겠다...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행복의 우선적 조건이 바로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사랑의 관상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주님과의 친교를, 관계를 깊이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오늘 복음에 머무른다는 말마디가 9회 나옵니다. 

 

그러니 늘 주님 안에 머물러 사는 기도의 훈련, 사랑의 훈련이 얼마나 행복에 절대적인지요!

장소와 전혀 무관합니다.

언제 어디나 계신 주님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주님 안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짜 사랑의 관상가들이요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가능성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주님과의 관계를, 친교를 깊이하는 영적훈련시간이기도 합니다.

 

둘째,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제대로 머물러야 열매를 맺습니다.

냉담으로 주님 안에 제대로 머물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머무르다”와 “열매맺다”가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다음 주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무슨 열매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부부간 사랑의 열매가 자녀들입니다.

참으로 부부가 사랑의 열매인 자녀를 갖기를 원한다면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관상기도에 힘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사랑의 주님 안에 머무름에, 사랑의 관상에 충실했느냐는 그 사랑의 열매로 검증됩니다.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는 사도 요한입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름의 관상은 사랑의 계명을 지킴으로 완성됩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 안에 사랑의 머무름과 사랑의 실천은 함께 갑니다.

마치 사랑의 관상과 사랑의 활동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의 관상 정도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울을 두둔하고 보호하는 바르나바의 형제애가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사울을 두려워하여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가서

자초지종 사울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이들의 불신과 두려움을 말끔히 해소시켜 줍니다.

바르나바의 사랑의 변호에 감격한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합니다.

바르나바의 사랑의 열매가 바로 사울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오늘 참행복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늘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살아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포도나무에 가지들로 붙어있어야,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참으로 살아있다 할 수 있고, 참으로 행복하다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예전에 읽은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옛 사막수도자들의 공통적 화두는 '참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뒤돌아 보면 참으로 살았던 날들은, 참으로 행복했던 날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 있다 하나 실상 주님을 떠나 세상 안에 머무름으로 죽어 있는 것이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합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 속에 머물러 살 때 죽어있는 인생이요, 생명과 빛이요 사랑이신 주님 안에 머물러 살 때

비로소 살아있는 삶,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안에, 무지와 허무 안에 머물러 살다보면 자기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참 많을 것입니다.

 

참 자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정말 살아 있는가? 죽어있지는 않은가?”

주님 안에 머물러 끊임없이 사랑의 열매를 맺는 삶이야 말로 참행복한 살아있는 삶이요,

세상 안에 머물러 자신만을 위한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한 이기적 삶이라면 죽은 삶임에 분명합니다.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의 임종어는 “주님, 사랑합니다.”였고, 바로 참 행복한 삶이었음을 반영합니다.

제 아는 어느 분의 임종어는 “주님,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역시 참 행복한 삶이었음을 반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아닌 기쁨은 믿지 마십시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비가는 말합니다. 

“당신의 삶을 통해 바치는 유일한 기도가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제 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누구나를 위한 방이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언제나 한 장소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일 교구내 본당신부가 환영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가서 보십시오(go and look).

거기에는 언제나 한 장소가 있습니다. 결코 교회로부터 떠나지 마십시오.

교회는 매우 큽니다. 교회는 성전보다 많이많이 큽니다...당신은 교회로부터 떠나선 안됩니다.”

 

옛 어른의 다음 말씀을 보면 역시 참행복의 경지에 도달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특별한 순간도 일상만큼 반복하지는 못한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만큼 비범한 것은 없다.”<다산>

“평소에는 공손하고, 일을 할 때는 경건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해야 한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논어>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한결같이 살아가는 이들이 참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행복은 선택이요 선물이요 발견이요 노력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십시오.

사랑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참 행복의 비결입니다.

교회 안에 머무르는 것이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이 참으로 살아있는 참행복한 삶입니다.

교회의 품은 예수님의 품이요 하느님의 품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 안에, 교회 안에 머무르는 우리에게 주님은 당신과의 일치를 굳게 하시고,

참행복을 선사하시며, 참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4월29일(월)[(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으로 섬기려 할 때, 두 사도는 단호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원칙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손해를 보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은, 인류 문명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원칙과 규칙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힘차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조재형 신부)

 

2. 어느 날 드디어 테카가 카타리아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져주던 카타리나의 손에 나병 징후가 생긴 것을 본 것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카타리나, 나 때문에 당신께서 나와 똑같은 몹쓸 병에 걸렸군요.

날 간호하다가 이렇게 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지요?”

 

카타리나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다 생각하시는 바가 있어서 이런 일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더 큰 상을 주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병에 걸리게 하셨을 것입니다.”

 

다행히 테카의 장례식이 끝난 후, 주님께서는 카타리나에게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살아생전 언제나 주님을 눈앞에 뵙듯이 살았으며, 살아있는 주님이신 가난한 이웃을

지극정성으로 섬겼던 카타리나에게 주님께서는 오상을 선물로 주셨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 14,23)

주님!
빛이 되어 오소서.
저를 사르는 빛으로 오소서.
함께 살며 불살라 태우소서.
저를 태워 세상을 밝히소서.
제가 빛이 되고 사랑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비가는 말합니다. 

“당신의 삶을 통해 바치는 유일한 기도가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제 행복기도를 다시 나눕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희망과 기쁨, 평화와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이수철 신부)


 

4월29일(월)[(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492(122일 기도)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 14,23)

주님!
빛이 되어 오소서.
저를 사르는 빛으로 오소서.
함께 살며 불살라 태우소서.
저를 태워 세상을 밝히소서.
제가 빛이 되고 사랑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4월29일(월) 7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