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0월 4일 금요일[(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0월 4일 금요일[(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기사의 꿈을 안고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된 그는 아버지가 낸 보석금으로 풀려난 뒤에도 예전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1204년 중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복된 그는 청년 시절의 해이한 생활에서 돌아서서 아버지의 재산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굳게 매달렸다. 가난을 받아들이고 복음적 생활을 하면서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그들과 함께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세우고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였다. 그는 1224년 무렵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받았는데, 그 고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226년에 선종한 그를 2년 뒤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입당송

하느님의 사람 프란치스코는 유산을 버리고 집을 떠나 보잘것없고 가난하게 되었지만, 주님이 그를 들어 올리셨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프란치스코를 가난과 겸손의 삶으로 이끄시어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희에게 보여 주셨으니
저희도 성자를 따라 복음의 길을 걸으며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차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아침에게 명령해 보고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았느냐?>
▥ 욥기의 말씀입니다.38,1.12-21; 40,3-5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12 “너는 평생에 아침에게 명령해 본 적이 있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지시해 본 적이 있느냐?
13 그래서 새벽이 땅의 가장자리를 붙잡아 흔들어
악인들이 거기에서 털려 떨어지게 말이다.
14 땅은 도장 찍힌 찰흙처럼 형상을 드러내고 옷과 같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15 그러나 악인들에게는 빛이 거부되고 들어 올린 팔은 꺾인다.
16 너는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고 심연의 밑바닥을 걸어 보았느냐?
17 죽음의 대문이 네게 드러난 적이 있으며
암흑의 대문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18 너는 땅이 얼마나 넓은지 이해할 수 있느냐?
네가 이 모든 것을 알거든 말해 보아라.
19 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느냐? 또 어둠의 자리는 어디 있느냐?
20 네가 그것들을 제 영토로 데려갈 수 있느냐?
그것들의 집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 그때 이미 네가 태어나 이제 오래 살았으니 너는 알지 않느냐?”
40,3 그러자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4 “저는 보잘것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손을 제 입에 갖다 댈 뿐입니다.
5 한 번 말씀드렸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 말씀드렸으니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9(138),1-3.7-8.9-10.13-14ㄱㄴ(◎ 24ㄴ 참조)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 당신 숨결을 피해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얼굴을 피해 어디로 달아나리이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당신이 계시고, 저승에 누워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
○ 제가 새벽놀의 날개 달아, 바다 끝에 자리 잡아도, 거기서도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드시나이다. ◎
○ 당신은 제 오장육부를 만드시고, 어미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나이다.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당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옵니다. ◎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8
◎ 알렐루야.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알렐루야.

복음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갈라 6,14-18)와 복음(마태 11,25-3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바치며 청하오니
복된 프란치스코가 뜨거운 사랑으로 체험한 십자가의 신비를
저희도 온 마음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의 힘으로
복된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열정을 본받아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오늘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인 아시시에 가면 성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인은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은 새와도 대화 할 수 있었고, 장미와도 대화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기도하던 성당에는 비둘기 한 쌍이 있습니다. 이 비둘기는 몇 백 년을 이어가며 성인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인이 유혹을 견디기 위해서 장미 밭에서 굴렀을 때, 장미는 가시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성인이 기도하던 곳에는 가시가 없는 장미가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하면 좋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영성을 나누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은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을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작은 존재로 여겼고, 가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세속적인 재화를 멸시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마음에서 진정한 부유함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것처럼 가난하고 겸손하게 살면서, 프란치스코는 참된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죄악 된 일을 해왔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 수 있다면, 그분은 누구를 통해서라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이 겸손함 덕분에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고통받는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인 나병환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안아주었는데, 그것은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자만과 자기 과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은 우리에게 겸손의 덕을 되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은 생명 존중입니다. 이는 인간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태양을 "형님 태양," 달을 "누님 달"이라 부르며 모든 피조물들을 하느님의 가족으로 여겼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자연은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반영이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창조물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시적 표현에 그치지 않았고, 매우 깊은 영성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창조물을 돌보는 것이 창조주를 존경하는 방법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날 환경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돌보는 것이 단순한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나무, , 생명체는 하느님의 창조적인 손길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후손들이 그 열매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은 그리스도께 대한 지극한 사랑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이웃을 향한 그의 급진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말로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여정은 크고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단순한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이들들, 병자들, 소외된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그들을 조건 없이,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말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겸손, 단순함, 창조물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헌신의 메시지로 세상에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우리에게 거룩함으로 가는 길이 부나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 그리고 신실함 안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난한 자들을 안아주고, 창조물을 돌보고, 모든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묵상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복음: 루카 10,13-16

 

무소유의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대자유의 삶을 찾은 프란치스코!

 

가톨릭 성인(聖人)이면서도 타 종교 신자들뿐 아니라, 무신론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성인이 있으니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입니다.

 

프란치스코가 개척한 성화의 길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는 복음서 안에 드러난 예수님의 여러 면모 가운데, 머리 두실 곳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예수님,

그래서 그 어느 곳에도 묶이지 않으셨던 대자유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흠모하고 추구했습니다.

 

인간적 나약함과 유한성을 딛고, 그 위에 펼쳐진 자기 극복과 자기 해방과 자기 이탈을 위한

프란치스코의 하루 하루 여행길은 참으로 위대하고 빛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의 성화(聖化) 여정을 바라볼 때 마다 큰 감탄과 함께 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발밑을 내려다보며 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나 자신으로부터 한번 이탈해보겠노라고,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보겠노라고, 갖은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보겠노라고, 발버둥쳐 왔지만

아직도 제자리 걸음입니다.

 

초심자 시절 지니고 있었던 악습을 아직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 일상적으로 짓던 죄를 아직도 같은 방식으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탈, 자유, 해방...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프란치스코의 삶이 대단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는 한올 한올 얽히고 꼬인 실타래 풀듯이 인내롭게, 그리고 단호하게 자신의 문제나

약점들을 극복해나갔습니다.

생각하고 계획한 일들을 머릿속이나 마음속에만 간직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행해나갔습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대 성인 프란치스코에게도 젊은 시절의 흑역사(黑歷史)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로 불리는 지 아십니까?

사실 그의 본래 이름은 죠반니 베르나도네(Giovanni Bernadone)였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 도시 아시시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자수성가한 포목상이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자 아버지 덕분에 호화판이었습니다.

 

당시 아시시 남자 청년들의 로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옆 나라 프랑스로부터 건너온 청년 문화 중에 하나였습니다.

멋진 기사(騎士)가 되고, 잘생긴 말을 타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여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리던 여인을 찾게 되면, 미리 준비해둔 낭만 가득한 음유시를 한편 멋드러지게 읊는 것이었습니다.

 

청년 프란치스코 역시 프랑스 음유 시인들의 서정시를 열심히 읽고 외웠습니다.

멋진 프랑스 패션으로 온몸을 치장했습니다.

그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별명을 하나 얻게 되었는데, 바로 프란치스코였습니다.

‘어린 프랑스인’이라는 뜻입니다.

 

한때 영혼의 성장이나 구원, 이웃 사랑의 실천이나 청빈의 덕과는 철저하게도 담을 쌓고 살아왔던 프란치스코,

잔뜩 겉멋만 들어 유행의 최첨단을 걷고 있던 그가, 적당한 회개가 아니라 180도 완전 회개해서,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상 만인들로부터 존경과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의 신앙 여정, 회개 여정, 하느님을 찾아갔던 순례 여정은,

한없이 부족한 우리에게 큰 희망과 위로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이 우리의 가난과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이 맞이한 가난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었습니다.

그는 더없이 환하고 행복한 얼굴로 가난을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은 반면, 그는 무소유의 삶 속에 진정한 행복,

대자유의 삶을 찾았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말씀을 전하는 이에게 중요한 것>



가을이 익어갑니다. 
우리 안에 사랑도 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곧 ‘회개하지 않은 도시들에 대한 불행 선언’(13-15절) 부분과 ‘파견 받은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파견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16절)는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 코라진, 벳사이다, 가파르나움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는 회개하지 않은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을 많이 받고도 회개하지 안했기 때문임을 말해줍니다.



곧 그들은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기적을 보지 못했거나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도시들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도 여전히 회개하는 일에는 더딘 저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47-48)



오늘 복음의 둘째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애태우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죄인의 멸망을 바라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루카 10,16)

이는 말씀을 전하는 이가 얼마나 존귀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고,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지를 깨우쳐줍니다. 

동시에 파견 받은 이는 파견 받은 분에게 메여 있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파견 받은 자는 파견하신 분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회개’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은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파견 받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을 듣는 이가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이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는 말씀을 듣고도 그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희는 너희를 보낸 분께 매여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말씀을 듣는 이들의 반응이나 결과에 매달리지 말고 보내신 분께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전하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먼저 ‘말씀’을 품고 있어야 하고, ‘말씀의 영’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파견하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마태 10,20)

그렇습니다. 

파견 받은 우리는 ‘아버지의 영’을 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루카 10,16)


주님!
파견 받은 자의 사명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명심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도 받아들이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 하여도, 언제나 저를 보내신 당신께 매여 있게 하소서.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말씀을 품고, 당신의 영께 매여 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3.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욥19,21-27 루카10,1-12

 

                                                    하느님 나라의 전사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

 

“주님은 나의 빛 내 구원이시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바위시거늘

 내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오늘 10월3일은 사대 국경일중의 하나인 제4356주년 개천절로 1949년 국경일로 제정됩니다.

예전 제 초등학교 어린시절 달력에는 단기와 서기가 나란히 쓰여져 있었습니다.

참 뿌리깊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입니다.

날마다 기상하면 만세칠창중 빼놓지 않고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를 부릅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가사 그대로 될 것입니다.

 

4대 국경일의 노래 작사가는 일제강점기의 한학자, 역사학자, 교육자,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였던

위당 정인보 선생으로 고고(孤高)하고 독야청청(獨也靑靑)했던 고전적 선비였습니다.

개천절 노래 가사가 좋아 3절까지 다 나눕니다.

시간되면 개천절 노래 3절까지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새벽 강론 쓰며 어린이들 노래 들어보니 너무 경쾌하고 상쾌합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백두산 높은 터에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 따라 하늘이 텃다.

 이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목 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새삼 확인하는 우리 민족의 깊고 깊은 뿌리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뿌리 깊은 우리 전통을 새로이 하는 개천절이요,

이렇게 미중일소(美中日蘇)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기적적으로 번영을 성취하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합니다.

남북의 분단도 언젠가는 평화로이 하나로 통일되리라 믿고 기도합니다.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42년동안 한결같이 강조하고 살아 온 “주님의 전사”라는 수도자의 신원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너나할 것 없이 영적전쟁중의 주님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성서의 인물들이, 교회의 성인들이 그 좋은 모범입니다.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라는 신원입니다.

구체적으로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입니다.

 

이와 더불어 강조하는 교회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공통적 삼중신원입니다.

주님의 전사이자, 주님의 학인, 주님의 형제라는 삼중신원입니다.

주님 안에서 평생 싸워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형제로 살아가기에 전우애, 학우애, 형제애가

창조적 긴장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오늘은 주로 주님의 전사로서 측면을 나눕니다.

 

역시 선택-훈련-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 평화를 선택했으면 끊임없는 훈련으로 습관화할 때, 주님과 깊은 관계와 더불어

내적힘의 증대입니다.

이래야 하루하루 날마다 영적전쟁을 훌륭히 수행해 낼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욥의 믿음과 희망이 참 대단합니다.

초인적 인내의 힘이 바로 하느님 향한 절대적 믿음과 희망에서 옴을 봅니다. 

 

얼마나 뿌리 깊은 믿음이요 희망인지요!

희망에 거슬러 희망하는 모습은 그대로 아브라함을 닮았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놀라운 하느님 전사, 욥입니다.

깊은 침묵중에 ‘위로와 함께하기’ 보다는 욥의 부족을 추궁하는 경박한 친구들에게 하소연과 더불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가 감동적입니다.

 

“여보게 나의 벗들이여, 날 불쌍히 여기게나, 불쌍히 여기게나. 하느님의 손이 나를 치셨다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바위에다 기록해 주었으면!...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극한의 고통중에도 온힘을 다해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간절히  기도하는 하느님의 전사,

욥입니다.

평소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부단히 훈련하여 내공이 깊었기에 이런 기도이겠습니다.

이런 하느님 믿음이 희망이 사랑이 없이 이런 시련의 고통을 어찌 감당해낼 수 있을런지요!

이미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을 것이요 자살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참으로 험하고 거친 광야 인생, 셋중 하나라는 것이 제 지론입입니다.

성인이 되느냐, 세상 것들에 중독이 되어 괴물이 되느냐, 폐인이 되느냐?

셋중 하나요, 자살로 끝나기도 할 것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합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요 잘못 미치면 폐인입니다.

하느님의 전사들인 욥은 물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하느님께 제대로 미친 성인들입니다. 

 

오늘 복음 장면은 총사령관인 예수님께서 72명 당신의 제자들이자 전사들을 세상 영적 전쟁터로

파견하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 주님의 제자들이자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간청과 더불어 먼저 나부터 솔선수범, 수확할 밭의 주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전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파견되는 세상은 꽃밭같은 세상이 아니라, 생존경쟁, 약육강식, 각자도생 치열한 영전전쟁터입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면서도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고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소유로 무장하지 말고 믿음으로, 희망으로, 사랑으로, 평화로, 지혜로, 한마디로 주님의 성령으로

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평상시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는 영성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무소유의 삶이 상징하는 바, 소유의 힘이 아닌 존재의 힘, 성령의 힘, 하느님의 힘입니다. 

민폐를 최소화하면서 주어지는 모든 것에 만족하면서, 요구하지도 피하지도 말고,

주님의 평화를 선사하면서,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병자들의 치유와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라는 본질적 사명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스스로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이,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자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당신의 전사”로,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이 되어 살게 합니다.

 

“주님께 바라라.

 네 마음 굳세고 꿋꿋해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27,14). 아멘.


10/4(금)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우리에게 거룩함으로 가는 길이 부나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 그리고 신실함 안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난한 자들을 안아주고, 창조물을 돌보고, 모든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묵상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조재형 신부)

 

2. 인간적 나약함과 유한성을 딛고, 그 위에 펼쳐진 자기 극복과 자기 해방과 자기 이탈을 위한

프란치스코의 하루 하루 여행길은 참으로 위대하고 빛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의 성화(聖化) 여정을 바라볼 때 마다 큰 감탄과 함께 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이 우리의 가난과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이 맞이한 가난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었습니다.

그는 더없이 환하고 행복한 얼굴로 가난을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은 반면, 그는 무소유의 삶 속에 진정한 행복,

대자유의 삶을 찾았습니다.(양승국 신부)

 

3.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마태 10,20)

그렇습니다. 

파견 받은 우리는 ‘아버지의 영’을 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루카 10,16)

주님!
파견 받은 자의 사명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명심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도 받아들이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 하여도, 언제나 저를 보내신 당신께 매여 있게 하소서.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말씀을 품고, 당신의 영께 매여 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소유로 무장하지 말고 믿음으로, 희망으로, 사랑으로, 평화로, 지혜로, 한마디로 주님의 성령으로

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평상시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는 영성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무소유의 삶이 상징하는 바, 소유의 힘이 아닌 존재의 힘, 성령의 힘, 하느님의 힘입니다. 

민폐를 최소화하면서 주어지는 모든 것에 만족하면서, 요구하지도 피하지도 말고,

주님의 평화를 선사하면서,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병자들의 치유와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라는 본질적 사명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스스로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이,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0/4(금)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제 105일 기도

 

복음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루카 10,16)

주님!
파견 받은 자의 사명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명심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도 받아들이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 하여도, 언제나 저를 보내신 당신께 매여 있게 하소서.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말씀을 품고, 당신의 영께 매여 있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0월4일(금) 10시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