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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1월 5일 화요일[(녹) 연중 제3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5일 화요일[(녹) 연중 제3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38(37),22-23 참조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2,5-11
형제 여러분,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2(21),26ㄴ-27.28-30ㄱ.31-32(◎ 26ㄱ 참조)
◎ 주님, 저는 큰 모임에서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 채우리라.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 찾는 이들은 그분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
○ 온 세상 땅끝마다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만 민족 모든 가문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주님께 왕권이 있음이로다. 민족들의 지배자이심이로다. 세상 모든 권세가들 그분께만 경배하리라. ◎
○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다가올 세대에게 주님 이야기 전해져, 태어날 백성에게 그 의로움 알리리라. 주님이 이렇게 하셨음이로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1,2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5-24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거룩한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가득히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또는>
요한 6,57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살아 계신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김옥순 수녀, '혼인잔치의 초대'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장례식장에 목사님이 오신 적이 있습니다. 묘지에서 하관 예절에도 목사님이 오신 적이 있습니다. 가톨릭 예식에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하고 싶다고 해서 좋다고 했습니다. 고인의 가족 중에 교회 다니는 분이 있어서 그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목사님이 정성껏 기도해 주니, 고인께서도 기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33년 사제 생활하면서 아직 법당이나, 교회의 장례 예절을 다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의 가족 중에 교회나 법당에서 장례 예절을 지키는 분이 없었을 수 있고, 그런 분이 있었다고 해도 제게 고인을 위해서 장례 예절에 함께 하도록 부탁하신 분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교회의 장례 예절에 함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본당 사목 위원의 형님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는데, 독실한 교회 신자였습니다. 사목 위원도 몇 년 전까지 교회에서 큰 직책을 맡아서 봉사했다고 합니다. 형제님은 성당에서 교리를 배우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제게 고인이 된 형을 위한 장례 예절에 함께 해 주기를 청하였고, 저는 기꺼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교회인지 물어보았는데 고인은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하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형제님이 다니던 교회는 일반 신자는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은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드리지만, 일반 신자는 장례식장에서 추모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문화와 전통의 차이가 있겠지만 장례 예절은 가톨릭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걸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걸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 주었다.” 고인께서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청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본당 신부로 있다가 보좌 신부의 직책을 받아들이는 신부님을 보았습니다. 오랜 사목 경험이 있기에 본당 신부를 도와서 기쁘게 사목하였습니다. 교우들도 신부님과 공동체를 이루며 잘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책은 보좌 신부이지만 인격이 보좌 신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모두 직책과 관계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사목자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책과 직위로 인격과 인품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교구 사제들도 훨씬 풍요로운 사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제들에게 더 많은 사목의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자존심과 선입견을 버릴 수 있다면, 교만과 욕심을 버릴 수 있다면 상황에 반응하며 이끌리기보다는 상황을 예측하고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종의 모습을 취하시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순종과 겸손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을 안타까워하십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선입견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황에 이끌리기보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끌 수 있다면, 순종과 겸손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1주 화요일

복음루카 14,15-24

 

은혜로운 초대에 기쁘게 응답합시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하나의 사이클이 거듭 반복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느님 측의 열렬한 초대,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측의 거부, 하느님의 진노, 이스라엘의 회개,

그러나 또 다른 배신과 타락, 그리고 우상 숭배, 그러나 하느님의 크신 자비, 또 다시 이어지는 하느님의 초대,

그러나 은혜로운 초대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하느님 나라의 큰 잔치를 베풀고 그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또 다시 그 중요한 초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몇 평 되지도 않는 밭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땅이 하늘보다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영원한 생명을 몇 푼 안 되는 부동산과 바꿔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최근에 산 겨릿소 다섯쌍을 부려봐야 된답니다.

보아하니 일 중독에 빠진 사람입니다.

일의 노예가 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존재나 영혼의 양식, 영원한 생명마저도 뒷전입니다.

과도한 일이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막 결혼한 새신랑이었습니다.

그의 온 정신과 마음은 오로지 인간적 사랑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본능의 노예가 되어 영혼의 사정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제1차로 선택받은 민족, 민족들의 으뜸이자 장자였던 이스라엘의 운명은

끝장나버렸습니다.

하느님 초대에 대한 거듭된 거절의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는 이민족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잘 차려진 잔치의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면면은 우리 인간들의 상상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100퍼센트 거기 앉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대사제들, 율법의 전문가들, 바리사이들은

단 한 명도 앉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가장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가장 밑바닥 인생들로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정통 신앙인으로 자처했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이신 포도나무의 원줄기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포도나무에는 이교 민족의 가지가 접목되어 기대하지도 않았던 포도 열매가

왕성히 열리게 된 것입니다.

 

먼저 불림받은 사람들,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들, 정말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월감 갖지 말고, 내가 1등이라는 의식도 갖지 말고 늘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할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31주 화요일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행복한 사람'>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사람들은 먹는 것을 찾아다니는 데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TV에서도 인터넷 주요 검색 창에서도 '맛집'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집'에 차려진 음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혀의 유쾌함을 넘어서는 '참된 맛집'을 찾아나서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대체 최상의 '맛집과 음식'을 어디에서 맛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라는 '맛집'에서 먹는 '하늘나라의 음식'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곧 '구원의 천상음식'을 먹을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함께 초대되어, 바리사이 지도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루카 14,15)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전통적 메시아 사상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곧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시면 ‘큰 잔치’를 베풀 것인데, 그 잔치에는 유대인들만이 초대받았기에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큰 잔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잔치를 베푸시고 우리를 초대하신 분이 아버지 하느님이라면, 잔치에 사람들을 부르러 나간 '종'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종'이 잔치에 초대된 이들에게 잔치가 다 준비되었음을 전하지만, 그들은 초대를 거절합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초대에 약속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밭이나 가축을 샀고, 막 장가를 들었다는 핑계로 초대 약속 지키기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세속의 헛된 망상에 쏠려 이 귀한 초대를 거절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미 잔치 준비가 다 되었으나 초대에 약속한 이들이 준비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역사에서 본다면, 이들은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바리사이들이요, 유대교 회당의 지도자들일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일을 핑계로 복음 사명을 도외시하는 우리의 어리석고 나약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곧 하느님의 초대에 일방적으로 불참을 선언하고 마는 우리의 완고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잔치는 초대된 사람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연되거나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주인은 또 다시 '종'을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보냅니다.

'고을의 한길'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면, '골목'은 소외된 사람들이 은밀히 다니는 길을 나타낸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도자들이 아니라 일반 평범한 사람들과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 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초대합니다.

그들은 비록 인간적으로 멸시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밭이나 소를 사지도 장가를 가지도 못했지만, 주인의 배려와 사랑에 응답하여 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은 또 다시 '종'을 '큰길'과 '울타리 쪽', 곧 성 밖으로 보내어 그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들어오게 하라고 합니다.

주인의 ‘애타는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성 밖의 다른 민족들이 초대를 받고 잔치에 들어갑니다. 

결국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행복한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의 이 존귀한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의 호의를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몸소 따르고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루카 14,17)

 

주님!

당신은 잔치 상을 차리시고, 저희를 부르십니다.

당신은 준비가 되셨지만, 저희는 마음이 딴 데 가 있습니다.

지금 베풀어지는 당신의 사랑, 당신의 호의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을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당신의 몸과 말씀으로 차린 음식으로 제 영혼이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4.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1538-1584) 기념일                                필리2,1-4 루카14,12-14

 

                                                                성화의 여정

                                                  “주님 중심의 이타적 사랑의 삶”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131,3)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에 대한 간소한 삶에 대한 소개에서 성숙한 일면의 모습을 만납니다.

 

“그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술도 안마시고, 커피도 끊었고, 여행도 거의 않는다.

좋아하는 이들과 대화하고, 동네를 산책하고, 차를 마신다. 그의 삶이 더 좋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의 삶이 흥미롭고, 행복하고, 가치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에도 견주지 않고, 존재 증명을 위해 애쓰지 않는 삶, 과잉의 시대에 갇힌 우리는

간소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저항이 되지 않을까?”

 

삶은, 행복은 선택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성화의 여정을 택하여 하루하루 본질적 깊이의 단순한 삶을 사는 것도 지혜이자 행복입니다.

옛 어른의 지혜입니다. 마음공부는 성인공부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겠습니다.

 

“마음공부란 본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본성의 방향을 나은 쪽으로 돌리려는 노력이다.”<다산>

이래서 성화의 여정에 결적적 도움이 되는 마음공부입니다.

“욕심이 적다면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더라도 잃는 것이 적고, 욕심이 많다면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더라도 보존됨이 적다.”<맹자>

무욕의 지혜입니다. 욕심은 부단히 진리추구의 청정욕으로 전환시킴이 지혜입니다.

 

오늘은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입니다.

성인은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평신도 시절 22세 교황청의 강력한 신임을 받았으며

교황이 된 비오 4세 삼촌은 그를 밀라노 대교구장으로 임명합니다.

교황 비오 4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그는 강력한 교황 후보직을 내려놓고 밀라노의 대주교로서

주교문장의 "겸손(humilitas)"이란 말마디 그대로 겸손히 그의 책무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교회차원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진정한 종교개혁과 쇄신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주교좌 성당안에 있던 화려한 무덤들과 부유한 장식품들, 깃발 등을 사치로 규정하여 철폐함으로

성당 내부를 간소화했으며, 당시 교회가 무질서하고 세속화된 이유가

성직자들의 무지와 무능에 기인함을 깨달아 훌륭한 성직자들의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설립합니다. 

 

주술과 이단과의 싸움에 온힘을 다하면서 교회를 수호했고, 말년에는 밀라노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귀족들이 흑사병을 피해 모두 도망쳤을 때도 끝까지 밀라노에 남아 병자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는데

온힘을 다했고 밀라노도 평온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보로메오는 오랜 극기와 과로로 소진되어 1584년 11월3일 밀라노에서 46세로 선종합니다. 

 

“주님, 저는 여기 대령했나이다.”

 

주교님이 선종하기전 마지막 남긴 임종어입니다.

평생을 주님 앞에서의 삶이었음을 봅니다.

제 요즘 애송하는 단풍물든 장엄한 불암산을 보며 쓴, “늘 앞에 있는 산, 늘 앞에 있는 당신,

이 행복에 삽니다" 짧은 고백시도 생각납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랑의 주님앞에서의 행복한 삶이면 참 좋겠습니다.

보로메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1610년 11월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성됨으로

그의 성덕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입증됩니다.

 

오늘 복음이나 독서 말씀도 주님 중심의 이타적 삶을 추구하는 성화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서로 주고받는 유유상종의 세속화된 이기적 삶이 아닌 온전히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아낌없이 나누는

이타적 아가페 삶을 살라 하십니다.

보로메오 성인도 이런 사랑으로 사목했음을 봅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말그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발적 이타적 아가페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도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누며,

같은 마음, 같은 사랑을 지니고, 서로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주는 사랑의 삶을 살라는 촉구입니다.

 

오늘 이 거룩한 미사중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다음 말씀입니다.

성화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권고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필리2,3-4). 아멘.


11/5(화) [(녹)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을 안타까워하십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선입견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황에 이끌리기보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끌 수 있다면, 순종과 겸손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조재형 신부)

 

2. 먼저 불림받은 사람들,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들, 정말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월감 갖지 말고, 내가 1등이라는 의식도 갖지 말고 늘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할 일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루카 14,17)

 

주님!

당신은 잔치 상을 차리시고, 저희를 부르십니다.

당신은 준비가 되셨지만, 저희는 마음이 딴 데 가 있습니다.

지금 베풀어지는 당신의 사랑, 당신의 호의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을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당신의 몸과 말씀으로 차린 음식으로 제 영혼이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술과 이단과의 싸움에 온힘을 다하면서 교회를 수호했고, 말년에는 밀라노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귀족들이 흑사병을 피해 모두 도망쳤을 때도 끝까지 밀라노에 남아 병자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는데

온힘을 다했고 밀라노도 평온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보로메오는 오랜 극기와 과로로 소진되어 1584년 11월3일 밀라노에서 46세로 선종합니다. 

 

“주님, 저는 여기 대령했나이다.”

주교님이 선종하기전 마지막 남긴 임종어입니다.

평생을 주님 앞에서의 삶이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이나 독서 말씀도 주님 중심의 이타적 삶을 추구하는 성화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서로 주고받는 유유상종의 세속화된 이기적 삶이 아닌 온전히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아낌없이 나누는

이타적 아가페 삶을 살라 하십니다.

보로메오 성인도 이런 사랑으로 사목했음을 봅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말그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발적 이타적 아가페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1/5(화) [(녹)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제 137-7 기도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오늘의 말·샘 기도>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루카 14,17)

 

주님!

당신은 잔치 상을 차리시고, 저희를 부르십니다.

당신은 준비가 되셨지만, 저희는 마음이 딴 데 가 있습니다.

지금 베풀어지는 당신의 사랑, 당신의 호의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을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당신의 몸과 말씀으로 차린 음식으로 제 영혼이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5일(화) 4시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