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1월 9일 토요일[(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라테라노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 각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母) 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라테라노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지낸다.
입당송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나는 보았네. <대영광송>
<또는>
묵시 21,3 참조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이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리라.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리라. <대영광송>
본기도
몸소 뽑으신 살아 있는 돌로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셨으니
하느님의 교회에 은총의 영을 더욱 풍성히 내려 주시어
저희가 천상 예루살렘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또는>
하느님,하느님의 교회를 배필이라 이르시니하느님의 이름을 섬기는 백성이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따르도록 이끌어 주시어약속하신 천상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47,1-2.8-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9ㄴ-11.16-17
형제 여러분, 9 여러분은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10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저마다 잘 살펴야 합니다.
11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 우리의 힘. 어려울 때마다 늘 도와주셨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 ◎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 하느님이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이 세상에 이루신 놀라운 일을!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하여 성별하고 이곳에 내 이름을 영원히 있게 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바치는 예물을 받으시고
이 성사의 힘으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기도하는 집에 자비로이 머무르시며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저희가 성령의 성전이 되고
거룩한 생활로 주님 영광의 빛을 드러내게 하시나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이 집으로 교회를 드러내시고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가 나날이 거룩해져
무수한 자녀들과 함께 기뻐하며
하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너희는 영적인 집을 짓는 살아 있는 돌이니, 거룩한 사제단이 되어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교회를 통하여 저희에게 천상 예루살렘을 미리 보여 주셨으니
오늘 이 성사에 참여한 저희가 은총의 성전이 되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2006년 캐나다 토론토에 살 때입니다. 한국에서 온 형제님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이제 영어 많이 느셨겠네요?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하나요?” 저는 그때 당황했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Because of Jesus, I can live well in Toronto.” 형제님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요즘 비슷한 일이 생겼습니다. 5년 동안 본당 신부로 있었던 전임 신부님이 달라스를 방문했습니다. 저하고는 동창 신부입니다. 교우들이 신부님을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신부님을 초대하는 자리에 저도 함께 초대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부님을 초대했는데, 신부님이 사정이 생겨서 못 왔습니다. 이왕 약속을 잡았으니, 제가 대신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잔치를 마련한 주인은 자리가 남으니, 길가에 있는 사람이라도 초대하라고 종에게 말했습니다. 멀리서 벗이 왔으니, 참 좋은 일입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기뻐하면 기뻐할 일이 생깁니다.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은 3년 후면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금의 자리에 성당을 세울 때까지 2번의 이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성당은 시내에 있는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독일계 이민자들이 세운 성당을 얻었다고 합니다. 교우들은 당시의 성당을 다운타운 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공동체가 커지면서 새로운 성당을 찾았고, 임시로 성당을 얻었는데 창고처럼 생겼다고 해서 교우들은 ‘창고 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교우들은 지금의 성당 터를 매입했고, 40주년이 되던 2017년에 아름다운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성당에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고, 공동체가 함께 머물 수 있는 친교실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운동할 수 있는 농구장이 있습니다. 지난 10월에 피정 강의를 왔던 수녀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성당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드는 것은 성당이라는 건물은 아니었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집무실 앞에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제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형제처럼 함께 찍은 사진, 수도자와 성직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함께 찍은 사진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성당이 아름다운 건 건물 때문이 아닙니다. 성당이 아름다운 건,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교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교황님들께서 지내시던 성전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오랜 박해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려 주는 성전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음을 알려 주는 성전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친교를 나누는 곳입니다. 성전은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얻는 곳입니다. 성전은 생명의 빵을 나누는 성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성전은 성전만으로 남으면 단순히 건물일 뿐입니다. 성전은 그곳에서 신앙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몸이 바로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몸에서 ‘가난, 순결, 순명’의 물이 흘러나오면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에서 ‘믿음, 희망, 사랑’의 물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 성당 문에 있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이 관광객으로 오셨다면 순례자가 되셔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순례자로 오셨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셔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그릇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서 가치가 더욱 드러납니다. 탐욕, 거짓, 분노, 교만을 담으면 겉은 화려해도 속에서는 악취가 날 것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을 담는다면 비록 질그릇과 같을지라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질 것입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라떼란 대성전 봉헌 축일
복음: 요한 2,13-22
작은 교회, 그러나 따뜻한 인간미와 환대의 영성이 흘러넘치는 아담한 교회!
바야흐로 급격한 출산율 감소의 여파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지자체나 교회도 충격이 크겠지만, 저희 살레시오회처럼 청소년 사목을 주로 하는 단체가 받는 영향을 심각합니다.
신입생 감소로 인해 매년 학급수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학교를 운영하는 재단이나 교사들, 실무자들의 고초도 만만치 않습니다.
점점 비어가는 큰 규모의 건물들 유지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는 교회나 수도회 안에서도 축소 및 통폐합 전문가 양성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이제는 대대적인 성전 건립이나 부속 건물의 신축을 지양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작은 교회, 그러나 따뜻한 인간미와 환대의 영성이 흘러넘치는 아담한 교회 건설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모교회로서 세상 모든 성전들의 원천이요 규범이 되는 라테라노 대 성전
봉헌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로마에 머물 때 종종 라테라노 대 성당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베드로 대성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그 위용과 규모가 대단합니다.
걸작의 성화들과 예술품들로 가득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떼라노 대성전 축일을 제정한 이유는 세상의 모든 성당들을 라떼라노 대성당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면모를 본받도록 하기 위함에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이런 축일에 진정한 의미의 성전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성찰하고 묵상하도록
초대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전과 관련해서 참으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고 계십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보십시오. 진정한 의미의 성전은 우리 눈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고색창연한 외형적인 성전이기보다는
내적인 성전이요 영혼의 성전입니다.
어찌보면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우리 각자가 또 하나의 성전입니다.
물론 이런 저런 죄와 악습으로 거룩한 성전인 우리의 몸과 마음이 훼손되고 오염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가 교회입니다.
이토록 부끄럽고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영혼이지만, 그 안에 지속적으로 현존하고 계시는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라떼란 대성전 봉헌 축일
<우리의 몸은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품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다윗은 주님의 현존인 '궤약의 궤'를 모실 집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에게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솔로몬에게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유다의 멸망과 더불어 파괴되었고, 백성들은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기원전 515년에 제2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 역시 그리스 시대와 로마 시대에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기원전 167년과 63년) 다시 유린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 이후, 기원 후 70년에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로마군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 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밀라노 칙령'이 반포되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난 후, 324년에 황제는 자신의 별궁을 성전으로 세우고 봉헌하였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곧 오늘은 로마의 주교좌 성당인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타락한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면서, 진정한 성전이신 당신의 몸을 성전으로 제시하십니다.
곧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성전으로 내어주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목숨을 거두실 때에는 성전의 장막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더 이상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성전주의에 갇히지 않으시는 당신의 몸을 성전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느님 현존의 성전이 됩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잘 표현해주고 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코린 3,16)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품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질그릇 같은 깨지기 쉬운 몸이라 할지라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값진 보화를 간직한 거룩한 몸입니다.
당신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새가 나무에 둥지를 틀듯이, 우리 안에 끝이 보이지 않는 신비한 동굴을 파고 들어와 앉아 계십니다.
당신의 사랑에 응답을 요청하시면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이끄시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 안에 계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활동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속해 있는 존재요, 그분의 소유요, 그분의 것이 됩니다.
주인은 집을 어찌할 수 있으되, 결코 집이 주인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주인이 집을 소유한 것이지, 결코 집이 주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성전의 봉헌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요한 2,16)
주님!
성령의 채찍을 휘두르소서.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삼키게 하소서.
당신이 세우신 성전의 뜰이 장사치와 도둑들의 소굴이 아닌 사랑의 열매를 나누는 나눔 터가 되게 하소서.
저의 영혼이 당신의 사랑을 경배하는 예배와 기도의 집이 되게 하소서.
제 안에 계시는 당신을 경배하는 일, 그 아름다운 일을 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8.연중 제31주간 금요일 필리3,17-4,1 루카16,1-8
귀가(歸家)의 여정
“빛의 자녀답게, 슬기롭게, 아름답게, 기쁘게”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뻣노라.”(시편122,1)
오늘 화답송 후렴시편성구는 제가 10년전 2014년 산티아고 순례 여정시 가장 많이 바쳤던
기도문이였습니다.
800km 2000리! 주님의 집, 산티아고 대성전에 이를수록 더욱더 힘차고 빠르게, 나는 듯 걸었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만추의 밤하늘의 별들이 참 맑고 밝게 빛납니다.
우리 모두 별처럼 깨어 빛의 자녀답게, 슬기롭게, 아름답게, 기쁘게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 11월 위령성월입니다.
저절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죽어야 하나? 묻게 됩니다.
허무로 끝나는 죽음의 여정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11월 위령성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대로 산다면
하루하루 선물인생,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잘 추스르라는 옛 어른의 지혜로운 말씀도 새롭습니다.
“인간에게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 단지 다스리지 못하는 감정이 있을 뿐이다.”<다산>
“어진 이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이는 미혹되지 않고, 용감한 이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논어>
참으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을 진지하게 맞이한다면, 어질고 지혜롭고 용감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님 홈페이지에서 읽은 수녀들에게 주신 교황님 말씀이 참 신선했습니다.
흡사 교황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씀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슬픈 성인은 또 하나의 슬픈 성인일 뿐이다. ‘거룩함은 언제나 기쁘다(Holiness is always joyfull)’.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미소를 지녀라. 거짓이 아닌 진실하고 충만한 미소를.”
어떻게 하면 빛의 자녀답게, 슬기롭고 아름답게,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 유명한 ‘약은 집사의 비유’입니다.
실직할 위기에 처한 불의한 집사의 나쁜 행실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미래를 대비한 민첩하고 슬기로운 대처방식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급기야 불의한 집사는 기름 백 항아리 빚진 이에게는 쉰으로, 밀 백섬 빚진 이에게는
여든으로 탕감해줌으로 미래를 대비합니다.
뜻밖에 부자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합니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를 상징하는 너그러운 주인은
뜻밖에 불의한 집사의 행위를 묵인해 줍니다.
아마도 그는 속으로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찾아낸 불의한 집사가 고마웠을지도 모릅니다.
부자 주인에게 그만한 손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새삼 자비롭고 너그러운 하느님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부자 주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결론이 화두처럼 우리에게 좋은 깨달음이 됩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세상 자녀들의 악한 행실이 아닌 그의 위기시 대처방식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와달리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세상 자녀들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회개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선행과 자선에 민첩하고 슬기로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유일한 바램일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회개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선행과 자선이지 죽으면 다 끝입니다.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빛의 자녀답게, 슬기롭게, 아름답게, 기쁘게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을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고맙게도 제1독서 필리비 서간의 바오로 사도가 그 답을 줍니다.
우선 속화된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없이, 영혼없이, 의식없이 육적 욕망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완전히 구제불능의 가치전도의 삶입니다.
이렇게 살 것이 아니라 다음 이어지는 말씀같이, 주님을 고대하며 하늘의 시민답게,
가을 밤하늘의 별처럼 빛의 자녀답게, 슬기롭게, 아름답게, 기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제 말씀으로 전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그러므로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주님 안에서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새삼 지상의 우리가 향하는 곳은 본향의 하늘나라임을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본향집을 향한 ‘귀가의 여정’중인 우리들이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날로 정화,
성화시켜 주시어 우리의 비천한 몸도 서서히, 점차적으로 주님의 영광스런 몸으로 변모됨을 깨닫습니다.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니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편16,11). 아멘.
11/9(토)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몸이 바로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몸에서 ‘가난, 순결, 순명’의 물이 흘러나오면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에서 ‘믿음, 희망, 사랑’의 물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조재형 신부)
2. 어찌보면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우리 각자가 또 하나의 성전입니다.
물론 이런 저런 죄와 악습으로 거룩한 성전인 우리의 몸과 마음이 훼손되고 오염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가 교회입니다.
이토록 부끄럽고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영혼이지만, 그 안에 지속적으로 현존하고 계시는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거룩한 성전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요한 2,16)
주님!
성령의 채찍을 휘두르소서.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삼키게 하소서.
당신이 세우신 성전의 뜰이 장사치와 도둑들의 소굴이 아닌 사랑의 열매를 나누는 나눔 터가 되게 하소서.
저의 영혼이 당신의 사랑을 경배하는 예배와 기도의 집이 되게 하소서.
제 안에 계시는 당신을 경배하는 일, 그 아름다운 일을 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자비하신 아버지를 상징하는 너그러운 주인은
뜻밖에 불의한 집사의 행위를 묵인해 줍니다.
아마도 그는 속으로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찾아낸 불의한 집사가 고마웠을지도 모릅니다.
부자 주인에게 그만한 손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새삼 자비롭고 너그러운 하느님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부자 주인입니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세상 자녀들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회개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선행과 자선에 민첩하고 슬기로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유일한 바램일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11/9(토)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 141-11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요한 2,16)
주님!
성령의 채찍을 휘두르소서.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삼키게 하소서.
당신이 세우신 성전의 뜰이 장사치와 도둑들의 소굴이 아닌 사랑의 열매를 나누는 나눔 터가 되게 하소서.
저의 영혼이 당신의 사랑을 경배하는 예배와 기도의 집이 되게 하소서.
제 안에 계시는 당신을 경배하는 일, 그 아름다운 일을 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9일(토) 8시2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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