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1월 12일 화요일[(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본기도
복된 요사팟 주교가 성령을 충만히 받아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령의 힘으로 형제들을 위하여 기꺼이 생명을 바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2,1-8.11-14
사랑하는 그대여,
1 그대는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말을 하십시오.
2 나이 많은 남자들은 절제할 줄 알고 기품이 있고 신중하며,
건실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지녀야 합니다.
3 나이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기품이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고, 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그래야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훈련시켜,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고 순결하며, 집안 살림을 잘하고 어질고 남편에게 순종하게 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6 젊은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신중히 행동하라고 권고하십시오.
7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 주십시오.
가르칠 때에는 고결하고 품위 있게 하고
8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여,
적대자가 우리를 걸고 나쁘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하십시오.
11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12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13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이 흠 없는 이들의 삶을 아시니, 그들의 소유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주님은 사람의 발걸음 지켜 주시며, 그 길을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 ◎
○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의인들은 땅을 차지하리라. 거기에서 길이 살아가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4,1-7.11-13)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이 예물 위에 복을 내리시어
거룩한 요사팟 주교가 피를 흘려 지킨 믿음이
저희 안에서 굳건히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천상 잔치로 저희에게 용기와 평화의 성령을 보내 주시어
저희가 거룩한 요사팟 주교를 본받아
교회의 영광과 일치를 위하여 기꺼이 저희 삶을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예전에 전례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복사, 독서자가, 해설자가, 사제가 조금 틀릴 수 있지만, 그것을 지적하거나 고치려고 하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평일 미사 독서는 홀수 해와 짝수 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가끔 독서자가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은 홀수 해와 짝수 해가 같지만, 독서는 다릅니다. 복음이 상황이라면 독서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때가 많습니다. 독서자가 짝수 해를 읽어야 하는데, 홀수 해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독서자도 인식하지 못하였고, 미사에 참례하신 분들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도 전례는 물이 흘러가듯이 진행되는 것이 좋기에 자연스럽게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강론은 결론을 조금 다르게 했습니다. 진실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진실은 이해와 용서라는 밭에서 꽃이 피기 마련입니다.
중국의 열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왕이 연회를 열고 많은 신하와 함께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연회 중에 왕의 애첩이 한 신하의 희롱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왕에게 직접 알릴 수 없었던 애첩은 신하의 갓끈을 몰래 끊어 왕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애첩은 끊어진 갓끈을 왕에게 가져가며 신하의 무례함을 암시했습니다. 왕은 이 상황을 지혜롭게 처리하기 위해 연회장에 불을 끄게 하고, 신하들의 갓끈을 모두 끊어 버렸습니다. 이를 통해 누가 범인인지 특정하지 않고, 동시에 사건을 무마하며 연회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고사는 왕의 냉정한 판단력과 지혜로운 처세를 보여주며,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모두의 체면을 살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솔로몬왕도 지혜롭게 판결했습니다. 아이의 생모와 아이의 계모가 서로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솔로몬왕은 그럼 아이를 갈라서 둘로 나누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계모는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아이의 생모는 아이를 계모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왕은 아이를 주겠다고 했던 여인에게 아이를 주도록 했습니다. 아이의 죽음보다는 아이를 살리는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지혜로운 판단으로 죽어야 할 여인을 살려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부정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여인은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이 여인이 부정한 행위를 하다 잡혔습니다. 우리의 율법에 따르면 그런 여인은 돌로 쳐서 죽이게 되었습니다. 어찌할까요?” 예수님께서 죽이라고 하면 예수님도 율법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살리라고 하면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자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 그러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이야기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에서도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오로 사도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 주십시오. 가르칠 때는 고결하고 품위 있게 하고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여, 적대자가 우리를 걸고 나쁘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여름날에 성당에 와서 창문을 닫고, 하수구에 쌓인 오물을 꺼내는 형제님을 보았습니다. 아침 일찍 와서 큰 솥에서 육수를 끓이고, 친교실 청소를 하는 자매님도 보았습니다. 미사가 끝나면 성당에 남아있는 주보를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즐겁게 하는 수녀님도 보았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말없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인 저는 그분들의 신발 끝을 풀어드리기에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루카 17,7-10
그분의 거룩함 앞에 나는 얼마나 큰 죄인인지?
공동체 생활 안에서, 매일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성숙하고 균형 잡힌 자아 의식은
어떤 것인지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너무 지나친 자기 비하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족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나도 나를 존중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모습도 정말이지 봐주기 힘든 꼴불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데, 본인만 스스로를 아주 높이 평가하며
자화자찬한다면, 그 얼마나 웃기는 꼴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균형잡힌 시선이요 한쪽으로 과도하게 지우치지 않는 조화로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제자 직분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지침을 가르치십니다.
요점은 제자들 자신의 신원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리고 겸손의 덕을 지니라고 가르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복음 17장 10절)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제자는 종이라는 것, 제자로서의 사도직 수행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그에 따른 보상이나
특별대우를 바라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어떤 사람들, 참으로 봐주기 힘들고,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업적을 한껏 부풀려 과대 포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으로서의 근본, 원초적 결핍, 태생적 나약함을 잊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특징이 마치 이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 불과 20년 30년 세월이 흘러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의 육체는 아무 볼품없이
모습으로 차갑고 황량한 들판에 누워있을 것입니다.
영혼은 저 세상 어딘가에서 초조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도 꼭 쥐고 있던 재물들은 사방천지로 흩어져버렸을 것입니다.
남겨놓은 글도, 명성도 순식간에 잊혀질 것입니다.
그리도 자부심을 느꼈던 소중한 저서들은 킬로그램당 얼마씩에 팔려 고물상 한켠에 쌓여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이 세상에서 뭔가 대단한 인물, 엄청난 존재가 되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얼마나 가소롭고 한심한 일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 지금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사실 하느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허영심, 자만심, 하늘을 찌르는 교만함을 버려야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영적·육적으로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위쪽에서부터 오는 은혜요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가 지금 뭔가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 덕분이라는 것을 늘 고백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위대함 앞에 나는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
그분의 거룩함 앞에 나는 얼마나 큰 죄인인지?
그분의 무한하심 앞에 나는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나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늘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제자직 수행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자이기 때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신부님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주님의 종'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서 사도들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라고 말하자,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을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을 잘 지켜 공덕을 쌓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겠다는 인과응보 사상과 공로주의에 젖어 있는 사도들에게 '종'의 비유를 통해 ‘겸손하게 섬겨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7,10)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일을 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요구하는 품꾼과는 달리 주인의 분부대로 일을 마치고서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 여전히 '쓸모없는 종'일 뿐이라고 말하는 겸손히 주인을 섬기는 '종'에 비유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것은 우선 '분부 받은 대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상을 받으려고 주인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종'으로 삼아주신 주님께 대한 헌신일 뿐입니다.
사실 '주님의 종'은 <이사야서>에서 말하고 있는 ‘주님의 종의 첫 번째 노래’에서 ‘주님께서 붙들어주는 이, 주님이 선택한 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이’,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주는 이’(이사 42,1)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분부가 내려지고 사명이 주어집니다.
그를 신뢰하여 해야 할 일을 맡기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종'은 보상을 바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여 분부받은 일을 수행할 뿐입니다.
그러니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부받은 대로 다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야 할 일입니다.
여기서 '쓸모없는 종'이란 무익하고 불필요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자신의 봉사가 전혀 보상이나 사례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의미의 겸손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일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대한 감사요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랑하려거든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분부를 주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자랑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신원을 정확하게 알고, 주인의 뜻을 따라 분부대로 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섬김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곧 '주님의 종'으로서 ‘자유로이 그리스도와 함께 주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며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10)
그렇습니다. 주님!
분부 받은 일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섬기는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섬기게 하소서!
혹 그대로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혹 다 하지 못하였다 해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11.월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316-397) 축일
이사61,1-3ㄱ 마태25,31-40
최후의 심판
“심판의 잣대는 구체적 사랑 실천”
옛 어른의 말씀이 좋은 도움이 됩니다.
“내 안의 고통은 억지로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해야 하는 것이다.”<다산>
죽음도 고통도 참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때로, 아니 자주 원인을 캐기 보다는
주님 안에서 화해함이 지혜요 겸손이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성 마르티노 주교의 수도생활에 있어서 각별한 인연 때문에
기념이 아닌 축일미사를 봉헌합니다.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라 일컫는 성 베네딕도 보다 거의 백년전 수도생활의 모범을 보여준
성 마르티노 주교 수도승입니다. 저녁 성무일도 후렴도 성인의 삶을 잘 요약합니다.
“복된 마르티노는 임금이신 예수를 한껏 사랑하고,
지상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도다.”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사목자 주교 성 마르티노였습니다.
성인의 생애도 참 파란만장합니다. 당시 유럽은 로마제국 휘하의 한나라였고 성인의 평생 체험 영역이
참 넓고 깊었습니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이태리에서 성장과정과 15세부터 25년간 군복무기간을 지낸후 전역하는데
전투를 거부함으로 최초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된 셈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병사입니다. 따라서 저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전역후 프랑스에서 성 힐라리오의 제자가 되어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371년 시민들의 열렬한 요청에 따라
투르의 주교로 서임되고 수도생활도 병행하면서 주교직도 충실히 수행합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대표적 성인인 마르티노의 투르 성당은 대표적인 순례지로 산티아고로 떠나기전 많은 이들이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특히 본당 사목에 열정을 다했고 397년 81세로 선종했으니 당시로는 천수를 누린 셈입니다.
특히 성인에 관한 “성 마르티노의 외투”라는 유명한 전설적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가 군문에 있으면서 18세에 세례를 받게된 동기가 되었고 수도성소의 계기도 된 생생한 체험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마르티노는 걸인을 만났고 측은한 마음에 외투 절반을 잘라 줍니다.
그날 밤, 마르티노는 꿈속에서 걸인에게 준 외투를 걸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께서 “마르티노는 아직 예비신자이지만 나에게 이 옷을 입혀주었다.”라고
천사들에게 하는 말을 듣습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외투는 완전히 새로 복구되었음을 보게 되었고
이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바로 이 전설적 일화에 근거한 오늘 복음의 최후심판에 관한 마태복음 25장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최후의 심판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예언적 장엄한 서술입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은 각자 곤궁에 처한 이들에게 자비의 선행을 베풀었는지 여부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굶주렸을 때, 목말랐을 때, 나그네였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자신을 도와 준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합니다.
바로 곤궁에 처한 이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이들을 도와줌이 바로 자신을 도와준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참으로 기존 종교의 틀을 벗어나는 놀랍고 놀라운 주님의 말씀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곤궁중이 이들을 내 형제라 칭하며 이들을 도와 줌이 바로 자기를 도와 준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전례가, 기도가, 공부가. 계명 준수가 아닌 이런 구체적 사랑의 실천이
최종 구원의 심판잣대라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 하여라.
자비를 행한 이들에게 천국행을 선언하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의 잣대에 의한 심판은 오늘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의 연장선상위에 있음을 봅니다.
다음 이사야서의 말씀이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시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시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대신 기쁨의 기름을, 맥 풀린 넋대신 축제의 옷을 주게 하셨다.”
바로 이런 주님의 사랑의 구원활동에, 해방활동에 종사한 이들에게 자비로운 구원의 심판임을 깨닫습니다.
구원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 주위의 곤궁중에 이들을 도와줌이
주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며 구원의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구원은 죽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 곤궁중에 있는 형제들과 더불어 고해인생이 아닌 기쁨의 축제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구원의 축제 옷을 입혀주시어 찬미와 감사,
기쁨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내 입으로 그 진실하심을 대대에 전하리라.”(시편89,1). 아멘.
11/12(화)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말없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인 저는 그분들의 신발 끝을 풀어드리기에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조재형 신부)
2. 너무 지나친 자기 비하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족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나도 나를 존중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모습도 정말이지 봐주기 힘든 꼴불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데, 본인만 스스로를 아주 높이 평가하며
자화자찬한다면, 그 얼마나 웃기는 꼴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균형잡힌 시선이요 한쪽으로 과도하게 지우치지 않는 조화로움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10)
그렇습니다. 주님!
분부 받은 일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섬기는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섬기게 하소서!
혹 그대로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혹 다 하지 못하였다 해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라 일컫는 성 베네딕도 보다 거의 백년전 수도생활의 모범을 보여준
성 마르티노 주교 수도승입니다. 저녁 성무일도 후렴도 성인의 삶을 잘 요약합니다.
“복된 마르티노는 임금이신 예수를 한껏 사랑하고,
지상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도다.”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사목자 주교 성 마르티노였습니다.
성인의 생애도 참 파란만장합니다. 당시 유럽은 로마제국 휘하의 한나라였고 성인의 평생 체험 영역이
참 넓고 깊었습니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이태리에서 성장과정과 15세부터 25년간 군복무기간을 지낸후 전역하는데
전투를 거부함으로 최초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된 셈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병사입니다. 따라서 저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전역후 프랑스에서 성 힐라리오의 제자가 되어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371년 시민들의 열렬한 요청에 따라
투르의 주교로 서임되고 수도생활도 병행하면서 주교직도 충실히 수행합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대표적 성인인 마르티노의 투르 성당은 대표적인 순례지로 산티아고로 떠나기전 많은 이들이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특히 본당 사목에 열정을 다했고 397년 81세로 선종했으니 당시로는 천수를 누린 셈입니다.
특히 성인에 관한 “성 마르티노의 외투”라는 유명한 전설적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가 군문에 있으면서 18세에 세례를 받게된 동기가 되었고 수도성소의 계기도 된 생생한 체험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마르티노는 걸인을 만났고 측은한 마음에 외투 절반을 잘라 줍니다.
그날 밤, 마르티노는 꿈속에서 걸인에게 준 외투를 걸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께서 “마르티노는 아직 예비신자이지만 나에게 이 옷을 입혀주었다.”라고
천사들에게 하는 말을 듣습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외투는 완전히 새로 복구되었음을 보게 되었고
이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이수철 신부)
11/12(화)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 144-14 기도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10)
그렇습니다. 주님!
분부 받은 일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섬기는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섬기게 하소서!
혹 그대로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혹 다 하지 못하였다 해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12일(화) 7시10분-
11월 12일 성 요사팟 Josaphat Kuncevyc
“만일 하느님께서 제가 순교할 자격이 있다고 봐주신다면,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요사팟은 가톨릭교회에서 최초로 시성된 동방가톨릭교회의 성인입니다.
1580년경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요사팟은 학업을 마친 후
부모의 가업이 아니라 수도 생활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동방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귀의한 뒤 바실리오회에 입회했습니다.
그는 비잔틴 전례에 따라 사제로 서품되고, 우크라이나 교회와 로마 간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던 중 반대파에 의해 살해되어 순교했습니다.
글씨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수원교구)
그림 : 홍승례 아스테리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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