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2월 1일 주일[(자) 대림 제1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하느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저를 맡기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원수들이 저를 보고 좋아라 날뛰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께 바라는 이는 아무도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이다.
본기도
저희가 이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며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하시고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 그리스도 곁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33,14-16
1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15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6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 주님의 계약과 법규를 지키는 이들에게 주님의 모든 길은 자애와 진실이라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와 사귀시고 당신의 계약 그들에게 알려 주신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3,12―4,2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4,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5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어둠의 행실을 벗어나 빛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깨끗한 마음으로 구세주를 기다리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온유하신 주님, 세계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용기와 인내의 은총을 주시어, 가장 작은 곳에서부터 주님의 평화를 실천하며, 세계 평화를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3. 미혼모와 미혼부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미혼모와 미혼부를 위하여 기도하오니, 저희 사회가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하며 돕게 하시고, 청소년의 생명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힘을 모으도록 이끌어 주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좋으신 주님,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비추시어, 주님께서 오실 날을 깨어 기다리며 기도하고, 일상의 근심 걱정들로 나약해지지 않게 하소서.
예물기도
그 가운데에서 저희가 모아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대림 제1주일
비행기를 타면서 가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곤 합니다. 포트워스 신부님과 하와이엘 갈 때입니다. 전날 확인했을 때는 터미널 A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럴 줄 알고 터미널 A로 갔습니다. 게이트는 39번이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께 전화했습니다. 게이트 39번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도 39번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부님이 없었습니다. 다시 전화해서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터미널 D에 있었습니다. 게이트는 같은 39번이지만 터미널이 달랐습니다. 알아보니 아침에 터미널이 변경되었습니다. 저는 터미널 D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터미널 D로 가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과 전화 통화를 해서 다행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제가 아는 주교님은 게이트가 바뀐 걸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탔습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내 영혼이 평안하지 않나이다.” 깨어 있어야 하는 데는 주교님도, 사제도, 수도자도, 평신도도 예외가 없습니다.
같은 지구지만 우리는 ‘시차’가 있습니다. 서울은 이곳 달라스보다 15시간 먼저 하루가 시작됩니다. 뉴욕은 이곳 달라스보다 1시간 먼저 하루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보다 1달 정도 먼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간은 태양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12월 25일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4주간의 대림 시기를 정하였습니다. 오늘은 12월 1일이고, 대림 제1주일입니다. 교회는 대림 제1주일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정했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1달 먼저 새해를 시작했으니 더 감사하며, 더 기뻐하며, 더 나누며 살면 좋겠습니다. 저는 2025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사목 지침을 정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사목 지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25년 본당 사목 지침
1.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 사랑과 배려가 공존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든 구성원은 서로를 존중하고 도우며, 상호 간의 관심과 배려를 나눕니다. 소그룹 모임, 친목 모임, 그룹 공동 활동 등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과 유대감을 증진하며, 공동체 의식을 강화합니다.
2. 다양한 교육 및 활동, 교회는 다양한 연령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교육 및 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각 개인의 영적 성장과 친교를 나누며, 공동체 내에서의 상호 지원과 협력을 도모합니다. 구역모임, 성경 공부, 기도 모임, 성가대 활동, 봉사활동 등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은 서로를 도우며 신앙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세대 모임을 활성화 하도록 합니다. 소그룹과 단체에 가입해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합니다.
3. 순교 정신과 사회봉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의 본보기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손을 잡아 봉사하는 문화를 정착시킵니다. 지역사회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 활동, 재난 구호 봉사, 장애인 센터 방문 등을 통해 교회는 순교 정신과 사랑의 행동을 실천합니다.
4. 미사와 기도의 중요성 강조, 미사와 기도는 교회 생활의 핵심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꾸준한 미사 참례와 개인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영적인 성장을 이룹니다. 온라인 미사, 주일 미사, 평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교회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를 통해 영적으로 충전됩니다.
5. 본당 설립 50주년 준비 위원회 발족, 2027년은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5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준비 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이런 사목 지침을 통해 달라스 성 김대건 성당은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나누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교회로 거듭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와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대림 제1주일
루카 21,25-28.34-36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저희 공동체 전례 담당자이신 어르신 신부님께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대림 시기 시작하는데, 대림환 어쩔거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저는 부랴부랴 창고에서 아이 키 만한 큰 초들을 쇠톱으로 자르고 칼로 다듬었습니다.
시골스럽게 대성당과 소성당에 대림환을 설치해놓으니,
그제야 어르신 신부님 얼굴에 화색이 환하게 돌았습니다.
대림환 장식은 초기 양성기 형제들이나 젊은 형제들, 아니면 봉사 오시는 자매님들의 몫이라 생각했는데,
깊은 시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웬만한 것은 직접 다 해야 합니다.
열심히 초를 자르고 깎던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 초를 깎는 마음으로, 나를 깎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늘을 찌르는 교만을 깎고, 나태함과 게으름의 나를 깎고,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불충실한 나를 깎으며
그렇게 한 달을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 돌아보니,
지난 한 해도 어김없이 결핍과 상처투성이의 삶, 실패와 부끄러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깊은 상처 그 틈 사이로 크신 주님의 자비가 흘러들어왔음을 실감합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각별한 당부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고 계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 날이 너희를 덫처럼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 복음 21장 34절)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시간을 헛되고 의미 없이 보냈습니다. 내 인생 여정에서 앞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금쪽같은 시간을 흥청망청 놀고, 먹고, 마시는데 소모했습니다.
모든 것 하느님 자비하신 손길에 맡겨드리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오랜 시간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놀고,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한 치 앞만 내다보게 되니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듭니다.
남아있는 시간, 남아있는 인생을 주님 권고에 따라 살아가야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복음 21장 36절)
깨어있음은 언제나 기도와 연결돼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일정 시간은 잠을 자야 하는 인간이기에 항상 깨어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생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그러나 잠드는 순간, 잠자는 순간조차도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할 때 역시 주님께서 내 옆에서 내를 지켜보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그 역시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깨어 기도함을 통해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에도 굳건하고 기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3. 이영근 신부님
대림 제1주일
<‘그리스도를 입는 일’>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입니다.
오늘부터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기다림’이 활짝 피어오르는 시기입니다.
'기다림'이란 양광모 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눈부신 일인가
아침이 기다리는 태양처럼
밤이 기다리는 별처럼
그에게 한 줄기 밝은 빛이 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그리하여
그날을 손꼽으며 내가 그를 기다리는 건
또 얼마나 가슴 뜨거운 일인가
태양을 기다리는 아침처럼
별을 기다리는 밤처럼
그를 위해 아름다운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맑은 눈물 같은 일인가
우리는
태어나고 기다리고 죽나니
살아서 가장 햇살 같은 날은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촛불처럼
기다리는 날이라네.
사실 모든 역사는 ‘대림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대림이었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간도 역시 모두 ‘대림의 시간’입니다.
반대로도 생각해봅니다.
하느님께 있어서도 역시 어제도 오늘도 늘 ‘대림의 시간’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리스도 오심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열절한 마음으로 망부석이 되어 오늘도 문 앞에 서서 우리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내내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전례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재림)에 대한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예레미아는 말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그가 세상에 공종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예레 33,14-15)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1테살 3,13)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날에 나타날 표징들을 알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루카 21,27)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루카 21,27) 해야 할 일을 세 가지로 말씀하시며 그 이유도 다음과 같이 밝히십니다.
첫째는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루카 21,28)
둘째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루카 21,34-35)
셋째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이는 다시 말하면, 첫째는 속량이 가까이 왔기에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오시는 분을 향해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이요, 둘째는 그날은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니, 스스로 조심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요, 셋째는 그날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일”(로마 13,14) 입니다.
방황하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를 회개의 삶으로 이끌었던 이 구절은 이렇습니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로마 13,13-14)
그렇습니다.
'주 그리스도를 입고' 살아야, 스스로 조심할 수 있고, 어둠에 속거나 빠지지 일을 막아 주고,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입는 일’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는 일’은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 머무는 일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곧 ‘기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 앞에 깨어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6)
'기도하라' 하심은 자신의 약함과 무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주님의 능력과 선물을 믿으며, 주님께 소망하고 의탁하라는 말씀이요, '깨어 기도하라' 하심은 그분을 맞아들이기 위해 준비하여 마음을 경계하고, 그분을 향하여 있으라는 말씀이요, '늘 깨어 기도하라' 하심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분의 동행에 함께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기도하는 것’이 ‘깨어있음의 표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현존에 깨어 있으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현전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음'이란 ‘이미 오신’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일이요, 동시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깨어 있어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 안에서 ‘깨어있을 수 있고’, 기도 안에서 ‘깨어 있을 수 있는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도는 이미 주님 앞에 서 있는 일이고, 그렇게 주님 앞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이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보다 먼저 우리 안에서 깨어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기다리시며 깨어 기도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을 만나는 일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요,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이 안에서는 그분 현존의 기쁨이 차오를 것입니다.
그러니 ‘기쁨’이 곧 깨어있음의 표지가 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주님!
제 마음이 물러지지 않게 하소서.
흔들리더라도 당신을 벗어나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당신을 붙들고 있게 하소서.
안일과 편리로 무뎌지지 않고,
근심에서 벗어나 당신 사랑에 열렬하며,
늘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30.토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로마10,9-18 마태4,18-22
나를 따라라
“예수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
“주님을 찬양하라, 모든 민족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 하여라.“(시편117,1-2)
오늘은 11월 위령성월 마지막 날이자 연중 34주간 마지막날이고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이며,
오늘 저녁성무일도부터는 희망과 기쁨으로 가슴 설레는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새삼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연민과 질투, 모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그러나 질투와 맞서지 말고 질투하는 이들을 연민하라.”<다산>
“훌륭한 장사꾼은 재물을 깊이 감춰 없는 것처럼 하고, 군자는 덕을 갖춰도 겉모습은 모자라 보인다.”<사기>
새삼 겸손과 연민이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주님의 제자다운 삶이겠습니다.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사도는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형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어부로 살았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대체로 벳사이다에서 태어나 카파르나움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안드레아 사도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사내다움’ 또는 ‘용기’를 뜻하며, 형 베드로와는 달리 성실하고 온건하며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한 뒤에는 그리스 지방으로 전교여행을 떠났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가서
제자인 스타키스를 초대 주교로 임명했다하며 그래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안드레아를
초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봅니다.
형 베드로는 로마의 초대 총대주교, 동생 안드레아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초대 총대주교가 되니
이 또한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어부, 생선장수, 밧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리스와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며
키예프에 가서 선교했다는 전승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러시아의 최고 훈장 이름이 사도 성 안드레아 훈장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가 순교한 곳은 그리스 아카이아 지역의 파트라이라고 하며,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합니다.
안드레아가 X자형 십자가를 선택한 이유는 그리스어로 X자는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글자였기 때문입니다.
안드레아는 형장에 끌려갔을 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높이 쳐들면서 기쁨에 넘쳐 기도합니다.
“오, 영광의 십자가여! 너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는가!
속히 나를 이 세상에서 끌어올려 주님의 곁으로 가게 해다오.”
바로 오늘 아침성무일도시 즈카르야의 노래 후렴입니다.
그래서 안드레아 사도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상에는 십자가를 든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사도가 활동한 지역은 아니지만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스코틀랜드의 국기도
파란 바탕에 흰색의 X자형 십자가를 사용합니다.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이 성 파트리치오의 축일인 3월17일에 축제를 벌이는 것처럼,
스코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은 성 안드레아의 축일인 11월30일에 축제를 벌입니다.
성 안드레아 사도의 X자형 십자가의 순교로 끝나는 생애가 감동적입니다.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가 순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부르십니다.
주님과의 운명적 만남이요 첫눈에 이들의 내적갈망을 알아채신 주님임이 분명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버림, 떠남, 따름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첫눈에 반했음이 분명합니다.
만약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가정법의 물음은 부질없는 공허한 질문이니 하느님의 섭리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소 역시 가정법의 질문은 부질없는 질문이니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의 부르심이 아니라 필연의 부르심입니다.
곧 이어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역시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릅니다.
한번의 부르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를 평생 히루하루 날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부르시니
우리 삶의 여정은 성소의 여정, 부르심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결같이 시종여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버림, 떠남, 따름의 여정”에, 순교적 선교의 삶에 충실하다먼
이국땅에서 X자형으로 순교한 사도의 생애가 가슴 먹먹한 감동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 선포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이 결코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선포가 없으면 결코 들을 수 없고,
사람들이 파견되지 않으면 선포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옛 사도들과 선교사들처럼 날마다 선교사로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교사들에 대한 하느님의 기쁨과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다음 말마디가
우리의 선교열정을 북돋웁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10,15;이사52,7)
선교없는 교회는 죽음 교회요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새삼 선교는 우리 교회의 존재이유요 우리의 본질적 사명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자체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주님 사랑을 알리는 선교입니다.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요 밖으로는 주님의 선교사입니다.
오늘 따라 미사시 주님의 강복후 마지막 파견 말씀이 깊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의 참 좋은 응답이, 하느님을 참으로 기쁘게 하는 일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아멘.
12/1(일) [(자) 대림 제1주일], 되새김 구절
1. 게이트는 같은 39번이지만 터미널이 달랐습니다. 알아보니 아침에 터미널이 변경되었습니다. 저는 터미널 D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터미널 D로 가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과 전화 통화를 해서 다행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제가 아는 주교님은 게이트가 바뀐 걸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탔습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오늘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 돌아보니,
지난 한 해도 어김없이 결핍과 상처투성이의 삶, 실패와 부끄러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깊은 상처 그 틈 사이로 크신 주님의 자비가 흘러들어왔음을 실감합니다.
잠드는 순간, 잠자는 순간조차도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할 때 역시 주님께서 내 옆에서 내를 지켜보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그 역시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깨어 기도함을 통해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에도 굳건하고 기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주님!
제 마음이 물러지지 않게 하소서.
흔들리더라도 당신을 벗어나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당신을 붙들고 있게 하소서.
안일과 편리로 무뎌지지 않고,
근심에서 벗어나 당신 사랑에 열렬하며,
늘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형 베드로는 로마의 초대 총대주교, 동생 안드레아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초대 총대주교가 되니
이 또한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어부, 생선장수, 밧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리스와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며
키예프에 가서 선교했다는 전승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러시아의 최고 훈장 이름이 사도 성 안드레아 훈장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가 순교한 곳은 그리스 아카이아 지역의 파트라이라고 하며,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합니다.
안드레아가 X자형 십자가를 선택한 이유는 그리스어로 X자는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글자였기 때문입니다.
안드레아는 형장에 끌려갔을 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높이 쳐들면서 기쁨에 넘쳐 기도합니다.
“오, 영광의 십자가여! 너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는가!
속히 나를 이 세상에서 끌어올려 주님의 곁으로 가게 해다오.”(이수철 신부)
12/1(일) [(자) 대림 제1주일], 제 163-33 기도
복음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오늘의 말·샘 기도>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주님!
제 마음이 물러지지 않게 하소서.
흔들리더라도 당신을 벗어나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당신을 붙들고 있게 하소서.
안일과 편리로 무뎌지지 않고,
근심에서 벗어나 당신 사랑에 열렬하며,
늘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1일(일) 5시-
12월 1일 성 에드문도 캠피언 Edmund Campion
" 인간을 특징짓는 것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끝까지 사랑할 줄 아는 것,
죽음보다 더 강하고 영원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바로 그 능력입니다."
1540년에 런던에서 한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난 에드문도는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는 수재였습니다.
그는 영국 교회의 부제가 되었다가 아일랜드에서 공부하면서 가톨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예수회 사제가 되어 신학과 설교에서 뛰어났으나, 런던탑에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극형을 받아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분입니다.
글씨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수원교구)
그림 : 홍승례 아스테리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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