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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2월 2일 월요일[(자) 대림 제1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2월 2일 월요일[(자) 대림 제1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예레 31,10; 이사 35,4 참조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땅끝까지 전하여라. 보라, 우리 구세주 오시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마라.

본기도

주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비오니
그분께서 저희를 찾아와 문을 두드리실 때
깨어 기도하고 찬미하며 그분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주님께서 영원한 평화의 하느님 나라로 모든 민족들을 모아들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6-7.)8-9(◎ 1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 예루살렘의 평화를 빌어라. “너를 사랑하는 이들은 평안하리라. 너의 성안에 평화가 있으리라. 너의 궁 안에 평안이 있으리라.” ◎)
○ 나의 형제와 벗들을 위하여 비노라.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리라. ◎

복음 환호송

시편 80(79),4 참조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어서 오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알렐루야.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에게 온갖 선물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 가운데에서 저희가 모아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
고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06(105),4-5; 이사 38,3 참조
오소서, 주님. 저희를 찾아오시어, 평화를 베푸소서. 저희가 주님 앞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대림 제1주간 월요일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군인도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입법부도 있습니다. 법과 정의를 판단하는 사법부도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실행하는 행정부도 있습니다. 세금을 내고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국민이 있습니다. 저는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신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은행에 계좌를 열고, 돈을 맡길 수 있는 건 은행이 안전하다는 신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 걱정 없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식당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신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찰에게 총을 맡길 수 있는 건 경찰이 그 총으로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신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이 잘 지켜지는 사회는 국가의 경쟁력이 높은 건강한 사회입니다. 신용이 무너지는 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넘쳐나는 병든 사회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국가를 세우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용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이끌어 왔던 철학의 근본이 이성이라면, 인류의 도덕과 윤리를 이끌어왔던 종교의 근본은 믿음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는 크게 4가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과 역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둘째는 지금 겪는 고난과 유배는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징벌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한다면, 다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유배에서 돌아오게 할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넷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메시아, 구세주가 올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구약의 문을 닫고, 신약의 문을 연 예언자가 있으니 세례자 요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대림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음의 첫 번째 조건은 믿음의 눈을 뜨는 겁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본 예수님은 그저 눈으로 보았던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메시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던 고향 사람들에게는 표징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능력, 업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물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리 믿음이 없느냐!’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면, 고통의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병자를 고쳐주지 못하고,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참으로 복되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비록 이방인지라도, 로마의 군인일지라도, 죄를 지었을지라도 칭찬하셨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고쳐주셨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마르타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죽었던 라자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백인대장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마태오 8장 5-11절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 천부당만부당한 일


인간사회에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예절이 있습니다.
보통 스승이 제자를 찾아가기에 앞서, 제자가 먼저 스승을 찾아뵙고 인사를 올립니다.
장관이 실무자를 먼저 찾아가기보다는 실무자가 결재판을 들고 장관을 찾아갑니다.


명절 때 부모가 자녀들 집을 먼저 찾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녀들이 먼저 부모님을 찾아가 인사를 올립니다.
그런데 성체성사는 그런 보편적인 인간의 틀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성체성사는 어떤 성사입니까?
크신 하느님, 만물의 창조주, 세상만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부족한 죄인인 우리가 먼저 찾아가 뵈어야 당연한 일인데,
황공스럽게도 그분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은총의 성사입니다.


너무나 송구스런 일이기에, 천부당만부당한 일이기에,
정녕 기적 같은 일이기에 성체를 영하기 전에 우리는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사실 우리가 송구스러운 나머지 미사 때 마다 외치는 위 성체성사 전례문은 백인대장이 오래 전
외쳤던 말이었습니다.
백인대장의 신앙은 무척이나 올바르고 깊은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왕 중의 왕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비 충만한 치유의 하느님이란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사도들 못지않은 신앙,
유다인 저리가라 할 정도의 제대로 된 신앙을 지니고 있었던 백인대장이었기에
겸손하게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이런 백인대장의 열렬한 신앙, 깊은 신앙 앞에 예수님께서도 감탄하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찾아온 병자들은 치유나 기적을 이루어지기 위해 예수님께서 현장에 계셔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의 몸에 손을 대어야만 치유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그렇게 기를 쓰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그들의 신앙을 뛰어넘습니다.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느님, 굳이 오시지 않아도 말씀 한마디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신뢰, 예수님을 향한 신앙심이 그 누구보다도 투철했습니다.
이런 백인대장 앞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에게서 희망을 거두지 않으시는 인내의 주님,
너무나도 부족한 믿음을 지닌 우리들입니다.
청하면서도 의심하고, 구하면서도 의혹에 찬 시선을 거두지 않는 불쌍한 우리를 용서하여주십시오.
부디 청하오니 오늘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해 주십시오.


백인대장의 그 견고한 성채 같은 믿음은 아닐지라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오늘 우리에게 내려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3. 이영근 신부님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대림의 첫 월요일을 맞이했습니다. 

 

대림시기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합니다.

곧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묵상하며, 동시에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 곧 ‘성탄’은 그저 때가 되면 찾아오는 일이거나 또는 단지 어떤 재미나고 멋진 일에 대한 기억이 아닙니다.

또한 ‘다시 오심’, 곧 재림 역시 그저 때가 되면 찾아오는 놀랍고 떨린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모두 거룩하고 신비로운 변형이 분명히 일어나는 ‘구원의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날을 위해서는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처럼 믿음과 희망을 품고 ‘구원의 만남’을 위해서 찾아나서는 ‘대림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만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분이 먼저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시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탄생시키고 변형시키는 분은 바로 그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중풍으로 누워있는 종은 백인대장의 ‘집’에 있습니다.

그 ‘집’은 예수님을 모시기에는 자격이 없는 이방인의 지붕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는 당혹스런 일을 벌이십니다.

지금까지는 당신을 찾아오거나 당신께 데려온 병자들을 고치셨지만, 이번에는 당신이 먼저 발 벗고 나서십니다.

그의 종을 치유해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집’, 곧 주님을 모실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 이방인의 집으로 가시겠다고 나서십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마태 8,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오심’으로 이미 ‘인류의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마치 자캐오에게 “오늘은 내가 너희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하시며, 모든 이들이 매국노의 ‘집’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침 뱉고 피해가던 그 ‘집’으로 들어오셨듯이 말입니다.

 

오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쳐주셨습니다.

새롭게 탄생시키시고 변형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모실 자격이 없는 저희 ‘마음의 집’에 들어오시겠다고 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20)

그러니 오늘 제 마음이 기뻐 설렙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시어 제 마음에 ‘당신의 집’을 지으신 까닭입니다. 

제 안에 당신 몸과 피로 하늘나라의 잔칫상을 차려주신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마태 8,11)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마태 8,8)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당신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만을 제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은 머리 위에 계시되 속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유를 주시니,

당신께 온전히 속한 자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2.1.대림 제1주일                                        예레33,14-16 1테살3,12-4,2 루카21,25-28.34-36

 

                                                         대림의 기쁨

                                       “오늘, 그날의 구원을 앞당겨 삽시다”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시편85,8)

 

시편이 우리를 주님을 꿈꾸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혼자 꾸는 꿈도 함께 꾸면 현실이 됩니다.

이래서 우리 수도자들은 날마다 함께 시편기도를 바칩니다.

 

예전 별꿈이란 자작 애송시를 나눕니다.

 

“풀잎들

 밤새

 별꿈 꾸며 뒤척이며

 잠못 이루더니

 

 아침

 풀잎마다 맺힌 

 영롱한 별무리

 이슬방울들”<2000.10.1.>

 

이래서 아침 산책때 마다 자주 열창하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입니다.

어제의 끝은 오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순시기가 산문(散文) 같다면 대림시기는 꿈꾸는 시(詩)같습니다. 

오늘은 은총의 대림1주일 12월 첫날!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희망과 기쁨의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다 보면 유난히 ‘오신다’라는 말마디가 계속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새삼 우리를 찾아 오시는 겸손하신 사랑의 주님을 기다리며 마중나가는 은총의 대림시기임을 깨닫습니다. 

엊저녁 성가연습을 하면서도 웬지 모를 기쁨이 샘솟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옛 현인들의 지혜도 좋은 깨달음을 줍니다.

 

천명미상(天命靡常), “천명은 일정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말고 성장하라.”는 사자성어와 더불어, “중단하지 않는 한 실패가 아니다.”라는

어느 현자의 말마디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다. 지혜가 없으면 그 반대로 한다.”<다산>

“용기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질서를 어지럽힌다.”<논어>

 

참으로 배움을 좋아한 호학(好學)의 현인 공자였습니다. 수도자들뿐 아니라 믿는 모든 구도자들의 특징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 그리고 배움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갈망이, 대림의 희망과 기쁨이 더욱 좋으시고 아름다우신 하느님을 찾게 하고

배움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합니다. 

 

“주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시편25,1)

 

오늘 화답송 말씀대로 제 영혼 들어 올리는 마음으로 아주 예전에 써놨던 ‘사랑’이란 고백글을 나눕니다. 

 

“당신 언제나 거기 있음에서 오는 행복, 평화

 세월 지나면서 색깔은 바랜다지만

 당신 향한 내 사랑 더 짙어만 갑니다

 안으로 안으로 끊임없이 타오르는 사랑입니다

 세월 지나면서 계속 새로워지고 좋아지고 깊어지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1997.3.>

 

무려 27년전 여기 이 자리에서 쓴 글입니다.

은총의 대림시기 우리가 사랑하며 기다리는 주님은 이런 분입니다.

이런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까요?

그 방법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제 수도원 피정자들에게도 늘 해오던 대로 ‘희망의 여정’을 강의한 후 일일일생(一日一生),

일년사계(一年四季)로 내 삶의 여정을 압축한후 어느 시점(時點)에 와있는지 살펴보라 했습니다.

이런 확인이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종말론적 본질적 깊이의 선물인생을 살게 합니다.

 

첫째, 꿈을, 희망을 지니십시오. 

생생한 하느님의 꿈, 하느님 나라의 꿈입니다.

꿈꾸는 희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궁극의 꿈을, 희망을 지니고 살아야 험하고 거친 광야인생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꿈과 희망이 있어야 끝없이 기쁘게 인내하며 버텨내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성서의 사람들은 모두가 꿈과 희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 것이다.”

 

흡사 주님 탄생의 예고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대림시기 기다리는 분은 그 옛날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로 이런 주님입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그날의 구원의  꿈이, 희망의 기쁨이 과거의 상처나 어둠을 압도하며 우리를 변화시켜

이미 오늘 지금 여기서 천상의 기쁨을 살게 합니다.

대림시기, 늘 짧은 기도 노래로 끊임없이 바치는 다음 대림1주일 아침성무일도시 첫 후렴입니다.

 

“그날에 모든 산에서 단 것이 방울져 흐르고,

 언덕들에서 젖과 꿀이 흐르리라.”

 

정작 살 줄 아는 꿈과 희망의 사람은 오늘 바로 지금 여기서 그날의 젖과 꿀이 흐르는 천상의 행복을 노래하며

미리 앞당겨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오늘 그날의 희망을 앞당겨 살 때 샘솟는 활력에 기쁨이요 사막은 낙원으로 변모하니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루가복음 역시 꿈과 희망의 사람들을 격려하고 고무합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주님을, 사람의 아들을 내다보며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오늘 그날의 그때를 앞당겨 살아가는

은총의 대림시기입니다.

 

둘째, 하루하루 맡은 바 본분의 책임을 다하며 사십시오.

구원의 행복은 밖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꽃자리에 있습니다.

결코 지난 날에 아파하지도 말고 앞날을 앞당겨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다른 어디서도 못만납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하늘길, 하늘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요 책임을 다하는 사랑입니다.

바로 여기서 비로서 검증되는 참믿음, 참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충고가 대림시기, 참 적절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날이 너희에게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땅위에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유비무환입니다.

늘 준비하며 책임을 다하며 사는 이런 이들에게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추호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햇빛 밝은 날이든 구름낀 어둔날이든, 비오는 날이든 눈오는 날이든,

추운 날이든 더운 날이든 모든 날이 다 좋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셋째, 늘 깨어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기도가 삶의 꼴을 형성합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나중 남는 얼굴은 기도한 사랑의 얼굴인지 아닌지 둘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서 벗어나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하며 불암산을 바라볼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고백입니다.

10월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저를 행복하게 할 고백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늘 앞에 있는 산, 늘 앞에 있는 당신, 이 행복에 삽니다!”

 

참으로 기도할 때 생생히 살아나는 하느님의 꿈, 희망, 비전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도 날로 깊어져 내 주어진 책임도 온전히 수행해 낼 수 있습니다.

더욱더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책임을 다하며, 늘 깨어 기도하며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당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사랑을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붇돋아 주시어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이 은총의 대림시기,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1테살4,1). 아멘.


12/2(월) [(자)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돠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비록 이방인지라도, 로마의 군인일지라도, 죄를 지었을지라도 칭찬하셨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고쳐주셨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마르타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죽었던 라자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백인대장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백인대장 앞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에게서 희망을 거두지 않으시는 인내의 주님,
너무나도 부족한 믿음을 지닌 우리들입니다.
청하면서도 의심하고, 구하면서도 의혹에 찬 시선을 거두지 않는 불쌍한 우리를 용서하여주십시오.
부디 청하오니 오늘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해 주십시오.

백인대장의 그 견고한 성채 같은 믿음은 아닐지라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오늘 우리에게 내려주십시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마태 8,8)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당신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만을 제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은 머리 위에 계시되 속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유를 주시니,

당신께 온전히 속한 자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도 날로 깊어져 내 주어진 책임도 온전히 수행해 낼 수 있습니다.

더욱더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책임을 다하며, 늘 깨어 기도하며 살아가십시오.(이수철 신부)

 

12/2(월) [(자)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제 164-34 기도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마태 8,8)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당신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만을 제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은 머리 위에 계시되 속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유를 주시니,

당신께 온전히 속한 자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2일(월) 6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