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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2월 7일 토요일[(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2월 7일 토요일[(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암브로시오 성인은 340년 무렵 이탈리아 트레비리(현재 독일의 트리어)의 로마인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찍부터 법학을 공부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로마에서 공직 생활도 하였다. 그러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 선임되고, 그 뒤 아리우스파에 맞서 올바른 신앙 교리를 옹호하였다.
그는 특히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였으며, 한편으로는 황제의 간섭을 물리치고자 노력하였다. 암브로시오 주교의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강론은 마니교의 이단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교회로 이끌기도 하였다. 성인은 39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예로니모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리고 대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회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입당송

집회 15,5 참조
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암브로시오 주교를 가톨릭 신앙의 스승으로 세우시어
사도의 용기를 보여 주게 하셨으니
교회 안에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시어
용감하고 지혜롭게 교회를 이끌어 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30,19-21.23-26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ㄴㄷ-2.3-4.5-6(◎ 이사 30,18 참조)
◎ 주님을 기다리는 이는 모두 행복하여라!
○ 우리 하느님을 찬송하니 좋기도 하여라. 마땅한 찬양을 드리니 즐겁기도 하여라.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네. ◎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네.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 주시네. ◎
○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고 권능이 넘치시네. 그 지혜는 헤아릴 길 없네. 주님은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네. ◎

복음 환호송

이사 33,2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은 우리의 통치자, 우리의 지도자, 우리의 임금님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3,8-12)와 복음(요한 10,11-1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암브로시오를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주님의 영광을 널리 전하게 하셨으니
이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저희의 믿음도 성령의 빛으로 밝혀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성인 감사송 1 : 성인들의 영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2-3 참조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은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사의 신비로운 힘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가 복된 암브로시오의 가르침을 따라 구원의 길을 힘차게 걸어
마침내 영원한 잔치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엘파소에 갔다가 ‘Carlsbad(칼즈배드)’엘 다녀왔습니다. 칼즈배드는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동굴입니다. 1시간 정도 내려가면 넓고 큰 동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밝은 곳에 있다가 동굴 입구로 들어가면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발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10분 정도 내려가면서 점차 눈이 익숙해졌고, 편하게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동굴에서는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석순과 종유석은 빛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어떤 모습은 마치 성모님 같았습니다. 어떤 모습은 마치 사자의 입 같았습니다. 어떤 모습은 마치 고래 같았습니다. 어떤 모습은 마치 장군 같았습니다. 먼 길임에도 기꺼이 운전하고, 간식도 챙겨주고, 설명까지 해 준 후배 신부님이 있어서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오고 가며 왕복 5시간 동안 우리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후배 신부님도 청소년국에 있었고, 저도 청소년국에 있었습니다. 교구장님께서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세계 청년대회 이야기도 나누었고, 청소년 사목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내년쯤에 서로 1주일씩 바꾸어서 지내자고도 하였습니다.

 

종유석이 자라는 데는 몇만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2000년이 지났습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후배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교우들은 신부님의 그런 모습을 저에게 하나하나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정성 어린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주일에 30명 미사참례 하는 작은 공동체이지만 주님께서는 신부님과 공동체의 모습을 칭찬하시리라 믿습니다.

 

한 자매님은 풍성한 열매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쉬는 교우 댁을 방문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나 이제 성당에 나가지 않으니, 앞으로 오지 마세요.’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시어머니는 내가 개신교회에 나가니 우리 아들과 며느리는 앞으로 성당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오지 마세요.’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방문하기 전에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주보를 전해 드릴 때 주보에 전화번호와 좋은 글을 써서 함께 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화를 내던 형제님도 많이 누그러지셨고, 개신교회에 다니던 할머니도 웃어주었다고 합니다. 기도와 전교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그 자매님의 말씀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크고 화려한 성당만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제와 주교, 수도자들만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따뜻한 미소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이웃에게 작지만, 가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쌀쌀맞게 대하는 쉬는 교우들에게 주보를 전해주고, 다시 한번 찾아가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원망할 일이 있어도, 화나는 일이 있어도 주님 때문에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영성체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은 제때 열매를 맺으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오 9,35─10,1.6-8

 

이제 내가 친히 나서겠다. 내가 직접 목자가 되어 주겠다!

 

한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지금 온 백성이 큰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가 저지르고 있는 각종 기행으로 인해 국격은 급격히 실추되고,

그로 인한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로 나라의 근간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소상공인들, 자영업자들이나 서민들이 겪는 피해, 그리고 이 큰 부끄러움은

오로지 우리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쉼없이 흔들리는 이 지상 여정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든든한 보루요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시는

주님께서 우리 백성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시어, 조속히 상식과 기본이 통용되는

정상적 나라로 회복시켜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격 미달의 지도자들, 그래서 백성들의 기쁨이요 위로가 되기는 커녕,

고통의 근원이던 목자들이 많았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신랄한 지적을 통해 당시 사이비 목자들의 악행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에제 34, 2-4)

 

당신 보시기에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은 거짓 목자, 사이비 지도자들의 위선과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군중은 영적 양식을 조금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삶의 중심을 잃고 방향성을 상실한 영적 빈곤의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언자의 경고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큰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이런 부적격 목자들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 교회와 사회 안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질 부족한 목자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양들의 현실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꽤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친히 나서겠다. 내가 직접 목자가 되어 내 양 떼를 찾아 보살펴주겠다.

나와 함께 일할 협력자들, 참된 목자들을 직접 선택하겠다.”

 

오늘 우리에게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품위있고 예의바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이 자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혹시라도 장거리 출장이라도 가면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지는 그런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착한 목자가 꼭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의 성장과 안녕과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쾌적한 성장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돈이나 명예, 인기나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갈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 양들을 위해

틈만 나면 위로와 격려,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강론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가엾이 여기는 마음'>


오늘 말씀 전례는 ‘자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고 합니다.

화답송에서 시편 작가도 “주님은 마음이 부서지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네.”(시 147,3)라고 노래합니다.


복음에서는 ‘선한 목자’가 지닌 자비의 마음, 곧 '가엾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9,36)

사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이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중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이 없어 시달리고, 가진 게 없어서 시달리고, 무능해서 시달리고, 온갖 고통과 질병과 가난과 근심에 시달리는 이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일자리를 못 얻어 거리에서 기가 꺾여 방황하는 이들, 돈이 없어 자녀들에게도 기가 꺾여 사는 이들, 고국을 떠나와 이방인이 되어 기가 꺾여 있는 이들에 둘러싸여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곁에 있는 형제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또 보지 않으려 하는 걸까요?

그것은 ‘가엾이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선한 목자의 마음’을 지니지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곧 타인의 처지에 마음 아파하지 않음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처지를 보고 슬퍼지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같이 지니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를 우리는 '하느님의 연민', 곧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제1독서와 화답송에서 보여주듯이,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는 마음’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태중의 아기와 분리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을 말합니다.
엄마의 숨으로 두 몸이 함께 숨 쉬는 것을 말합니다.
곧 타인을 자신의 일부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일부’로 여기십니다. 
그러니 지체가 아프면 온몸이 함께 아프게 됩니다. 
우리도 그분의 이 마음을 품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필립 2,5)

그러니 우리는 그 마음을 ‘이미’ 우리 가슴에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1코린 2,16)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마태 9,36)

주님!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 마음에 심으소서.
제 손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하시고, 제 말이 꺼져가는 불씨를 끄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들을 더 이상은 못 본 척 무시하고 모르는 척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기 꺾인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024.12.6.대림 제1주간 금요일 

                                                               

이사29,17-24 마태9,27-31

 

개안의 여정

“눈먼 무지의 병에 대한 근원적 처방은 

주님과의 만남뿐이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교황님의 카리타스 대표단에 주신 말씀이 참 신선했습니다.

“Be teachers of wisdom(지혜의 교사가 되어라)”

어지러운 세상에서 참으로 필요한 어른은 지혜의 교사일 것입니다. 지식이나 재능이 아닌 지혜의 덕입니다.

옛 현자의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덕이 모자라서 패가망신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재능만 바라보고 추앙한다.”<다산>

“나라를 어지럽힌 신하와 집안을 망하게 했던 자식은 재주는 넘치지만 덕이 부족하다.

이로써 거꾸러진 자가 많다.”<자치통감>

완벽한 재능보다는 뭔가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겸손한 이들의 적당한 빈틈은 결점이 아니라

오히려 덕이자 지혜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오솔길 아늑한 사진과 더불어 수도형제와 주고 나눈 덕담이 있어 나눕니다.

“시가 나올 것 같은 그림이지요.”

“그림 자체가 시네요.”

이어 짧은 시를 전했습니다.

 

“오솔길

 넘어

 임 계신 곳

 주님의 빛속에

 걸어들 가자

 오늘도

 내일도

 우리 함께”

 

즉시 받은 답글입니다.

 “저는 저 길 넘어 모레 엄마 보러 갑니다.ㅎㅎ”

 

엄마가 있어 고향집 휴가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임계신 곳 천상의 아버지의 집이고 지상에서 천상을 향한 순례여정중의 삶입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 이런 ‘본향집에 대한 향수(homesick at home)’를 지니고 있는 법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눈먼 두 사람이 우리의 근원적 갈망을 대변합니다. 

 

어찌보면 대다수가 무지의 눈먼 사람들 같습니다.

요 몇 년간 동방영성에서 주요 소재가 되는 순전히 지혜의 결핍인 무지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무지의 죄. 무죄의 악, 무지의 병, 무지의 해악은 인간 재앙과 불행의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비상계엄의 내란 행위도 그대로 무지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오죽하면 “미쳤다, 바보다”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바보로 만드는 무지의 죄악입니다.

 

무지에 눈멀면 답이 없습니다. 무지의 벽이라면 지혜의 문입니다.

대하다 보면 답답하고 불편한 벽같은 불통의 사람은 완고한 무지의 사람이고 가슴이 탁 트이고

편안하게 하는 소통의 사람은 온유한 지혜의 문같은 사람입니다.

눈먼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의 원천인 주님과의 만남뿐입니다.

복음의 눈먼 사람은 믿음의 눈은 활짝 열렸기에 주님만이 구원임을 깨달아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빛이신 주님을 보고자 하는 갈망이 믿음의 눈을 활짝 열어주었고 이어지는 주님의 응답입니다.

이런 심정으로 자비송을 바치며 미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예, 주님!”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눈이 열린 이들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립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무지의 눈이 활짝 열려 어둠에서 벗어난 두 맹인입니다.

그대로 대림시기는 이사야 예언이 실현되는, 날로 믿음의 눈이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주님만이 참된 기쁨에 행복이요 참된 지혜요 부요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복음의 겸손하고 가난했던 두 맹인은 이런 주님을 만났고 이제 온전히 날로 주님을 찾아 지혜로워지는

개안의 여정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중에 날로 눈은 열려 밝아지고 벽은 차차 변하여 문이 됩니다. 

참으로 추구할바 개안이요 지혜입니다.

날로 작아지는 무지의 벽과 더불어 날로 넓어지는 지혜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벽이 없이 온통 사면팔방으로 활짝 열린 지혜의 문, 생명의 문, 사랑의 문, 진리의 문이셨던 분입니다.

무지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자 답은 지혜자체이신 주님과의 끊임없는 만남뿐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무지의 병을 치유하시어 날로 지혜로워지는

개안의 여정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12/7(토)[(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복음을 전하는 것은 따뜻한 미소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이웃에게 작지만, 가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쌀쌀맞게 대하는 쉬는 교우들에게 주보를 전해주고, 다시 한번 찾아가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원망할 일이 있어도, 화나는 일이 있어도 주님 때문에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돈이나 명예, 인기나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갈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 양들을 위해

틈만 나면 위로와 격려,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마태 9,36)

주님!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 마음에 심으소서.
제 손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하시고, 제 말이 꺼져가는 불씨를 끄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들을 더 이상은 못 본 척 무시하고 모르는 척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기 꺾인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이수철 신부)

 

12/7(토)[(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 169-39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오늘의 말·샘 기도>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마태 9,36)

주님!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 마음에 심으소서.
제 손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하시고, 제 말이 꺼져가는 불씨를 끄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들을 더 이상은 못 본 척 무시하고 모르는 척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기 꺾인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2월7일(토) 6시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