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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30일 목요일[(녹) 연중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30일 목요일[(녹) 연중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확고한 믿음으로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9-25
19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21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겼습니다.
23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24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25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4(23),1-2.3-4ㄱㄴ.5-6(◎ 6 참조)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복음 환호송

시편 119(118),10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밝히는 빛이옵니다.
◎ 알렐루야.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매주 미사에 함께 나오는 부부가 있습니다. 형제님이 2년 전부터 항암 투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1년을 보내면서 조금씩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최근에는 휠체어를 타고 미사에 왔는데 1월 첫 주를 지낸 후에는 주일미사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병자성사를 드리기 위해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항암 과정에서 먹는 약이 내성이 생겨, 약의 용량을 늘렸는데 부작용이 생겨서 병원으로 왔다고 합니다. 형제님을 위해서 기도한 후에 자매님에게 물었습니다. ‘보험은 어찌 됩니까?’ 미국에서는 보험이 없으면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우체국에서 함께 근무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건강했지만, 자매님이 당뇨가 있어서 좋은 보험을 들었다고 합니다. 본인 부담 6,000불만 있으면 나머지 병원비용은 보험에서 다 해결해 준다고 합니다.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휴스턴에서 일하던 아들이 재택근무를 허락받아서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형제님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평생 열심히 일했으니, 남은 시간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부부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뉴욕에 있을 때는 보험을 들지 못했습니다. 매월 내야 하는 보험료를 감당하기에는 신문사의 재정이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몸이 크게 아프지 않았고, 교우들이 하는 병원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달라스에 와서는 보험을 들었습니다. 교구에서 지정해 준 보험사가 있었고, 본당에서 지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치과 치료도 안심하고 받았습니다. 우체국에서 일했던 부부가 만일 보험을 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긴급한 상황에서 재정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저도 보험 때문에 도움받은 적이 있습니다. 1995년이니까 30년 전입니다. 교우분의 권유로 우체국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2년이 지난 후에 IMF가 생겼습니다. 형님의 사업도 어려움에 직면했고, 제가 부모님을 모셔야 했습니다. 교구 신협에서 대출받았고, 동창 신부님이 도와주어서 부모님이 머물 집을 마련했습니다. 1년 후에 보험이 만기 되어서 대출금도 갚았고, 동창 신부님이 빌려준 돈도 돌려주었습니다. 그 뒤로 교우들이 권유하는 보험이 있으면 가능하면 가입했고, 시간이 흘러 제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생명을 희망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보험처럼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길이죠,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픈 사람을 치유해 주는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낮기를 원하느냐?, 믿느냐? 구하여라. 얻을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찾아라.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찾고 구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화답송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이들이 주님의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에서 우리가 믿는 신앙이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간직합시다. 서로 자극을 주어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신앙은 결단이고, 신앙은 갈망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로 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복음마르 4,21-25

 

우리 각자의 얼굴에는 스승 예수님의 얼굴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요즘에야 찾아보기가 힘들어 골동품 가게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중요한 가재도구 중에 하나가 밤을 밝히는 등잔이요 등잔을 얹어두는 등경이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 전기는 들어왔지만, 전력 수급이 여의치 않아 자주 정전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선친께서는 다락방에서 등잔을 꺼내 불을 붙이고 높은 곳에 위치한 등경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하필 그럴 때, 라디오에서는 처녀 귀신, 몽달 귀신, 달걀 귀신 등 각종 귀신들이 총 출동하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흘러나왔는데, 듣지 말아야지 하면서 듣다가 화장실도 못가고 끙끙대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등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무엇을 강조하고 계시는지, 조금 아리송합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마르 4,21-23)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등불은 다른 무엇에 앞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당신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당신께서는 거듭되는 박해와 살해의 위협 앞에서도 당신의 신원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로 살아야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그분의 가르침으로 인해 어떤 소중한 깨달음이나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은 나만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꽁꽁 숨겨 둬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은총을 동료 인간들, 그리고 세상과 나누고 공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께서 선물로 주신 복음, 즉 구원의 기쁜 소식을 자신 안에 붙들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 만민 모두가 아무런 차별없이 골고루 혜택을 받도록 그분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비밀리에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당에서, 광장에서, 공개석상에서, 공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분 가르침의 진의(眞意)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이 종래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판이하게 신선했고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열두 사도들 가운데서도 최측근 제자들과 아주 소수의 특정인들만 그분의 말씀을 이해했고,

하늘나라의 신비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복음은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보편적인 가르침입니다.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비춰져야 할 큰 빛입니다.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의미는 ‘공번되다.’ ‘보편적이다.’ ‘두루두루 광범위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톨릭교회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는 열린 교회입니다. 너그럽고 관대한 교회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우리끼리, 마음에 드는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비밀리에 운영되는 공동체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거나 파벌을 형성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 현존의 구체적인 표지가 되어야 하며,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업을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특별히 불림을 받은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자 자신들에게 큰 영예고 은총이지만, 그것을 자신들 안에 가둬두고 자신들의 영광으로만 돌린다면,

큰 죄악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값진 보물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은 인류를 위해 사용하라고 맡겨놓은 보물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은 공동체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등불 같은 존재여야 마땅합니다. 활활 타올라야 하고, 동료 인간들의 어두운 삶을

환히 비춰줘야 합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스승 예수님의 얼굴이 반영되어 있어야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우리는 그릇만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릇이 비워진 만큼 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등불의 비유’입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마르 4,21)

여기에서 ‘등불’은 하느님 말씀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곧 ‘말씀’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요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리게네스는 ‘함지’는 영혼의 능력을, ‘침상’은 몸을, ‘등경’은 거룩한 교회를 표현한다고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은 세상 만민을 비추고, 진리의 빛으로 집 안에 있는 이들을 밝히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거룩한 지식으로 채우게 된다.”

말씀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아두지 말라는 말씀은 '함지'(루카; 그릇)인 우리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덮거나, '침상'인 우리의 몸으로 말씀을 가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곧 말씀을 자신의 능력이나 몸으로 가두지 말고, 오히려 드높이라는 말씀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의 사명을 ‘세상의 빛’과 ‘산위의 마을’(5,14)에 비유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세상의 빛’이 되고 ‘산 위의 마을’이 되어 비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마르 4,22)

물론, 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되므로 거짓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은 빛이 되어 우리를 비추고 하늘나라의 신비는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을 환히 비추고, 빛과 진리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새겨듣도록 촉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마르 4,23)

이 말씀은 중요한 말이니 그 의미를 깊이 새겨들으라는 각성의 촉구와 경고입니다(마태 11,15;13,9;루카14,35). 



또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마르 4,25)

사실 우리는 그릇만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릇이 비워진 만큼 받게 됩니다.

사실은 나누는 만큼 비워지는 것이니, 결국은 나누는 만큼 받게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나누어주면 나누는 것보다 더 보태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마르 4,25)

이는 나누는 것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결국 베푸는 사람은 베풀수록 더 많이 받고 덤까지 받지만,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마태 13,12; 25,29; 루카 19,26).


그처럼 말씀을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등불은 거룩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진정 말씀의 비추임을 받은 영혼은 더욱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마르 4,21)


주님!
말씀을 제 안에 가두어 두거나 제 발 아래에 두지 않게 하소서.
제 한량한 능력으로 당신 말씀의 권능을 덮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보다 아무 것도 낫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빛으로 살고, 빛에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29. 설                                                                   민수6,22-27 야고4,13-15 루카12,35-40

 

                                                          축복받은 삶

                                           “감사하라, 겸손하라, 깨어 있어라”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편90,14)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가장 많이 주고 받는 인사말 입니다.

올해 설날 29일,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이 눈내린 말그대로 눈 ‘설(雪)’자 ‘雪날’이 되었으니

웬지 모를 좋은 느낌이 듭니다. 

순수의 축복으로 빛나는 흰눈덮인 수도원 주변의 산야를 보니 혼란의 진통을 겪어내고 있는 우리나라도

새롭게 웅비하는 한해가 되리라는 희망이 샘솟습니다.

 

작년 후반부터 불암산앞에 설 때 마다 저를 행복하게 하는, 수없이 나눴던 고백시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삶도 행복도 선택입니다.

누구나 축복받은 삶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음이 축복이요, 이렇게 살아있어 거룩한 미사전례에 참석할 수 있음이 축복입니다.

 

찾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고 있는지 삶인지 말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정의는 축복받은 존재요, 우리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공의 길은 다양하지만 실패의 길은 포기 하나뿐입니다.

하나의 길이 막혔다거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축복의 길을 찾아, 다시 희망차게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침 인터넷에서 유익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설날의 다짐, 뇌를 썩게 하지 않겠다. 소셜 미디어 중독의 폐해...저급한 온라인 콘텐츠에 매몰되지 않고

외로움에 익숙해 지련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2024년 단어로 ‘Brain rot’(뇌 썩음)을 꼽았다.

이 단어는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 특히 소셜미디어의 과잉소비로 초래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사소하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자료를 과도하게 소비한 결과, 정신적 지적 상태가 퇴보하는 현상이다.

‘뇌썩음’(Brain rot) 이란 표현은 1854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서 <월든>에서 사용됐다.”

 

참 중요한 깨우침입니다.

소셜미디어의 중독으로 아까운 축복인생 손실을 끼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기쁨은 우리가 축복받은 존재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1독서 민수기 말씀대로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얼마나 멋진 하느님의 축복인지요.

어떻게 하면 축복받은 존재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답을 알려 드립니다.

 

첫째, "감사하라!" 입니다.

하느님 축복에 대한 당연하고 자연스런 응답이 반응입니다.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믿는 이들의 우선적 특징이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자체가 축복이요 감사할 때 축복도 계속 받습니다.

감사의 발견, 감사의 선택, 감사의 축복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감사로 가득한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입니다.

감사에서 샘솟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감사를 강조합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감사할 때 긍정적 낙관적 인생관이지만 불평할 때는 부정적 비관적 인생관입니다.

‘아직도 이렇게 남았네!’ 하면 낙관적 만족의 사람이요, ‘벌써 이렇게 썼네.’ 부정적 불만의 사람입니다. 

 

둘째, "겸손하라!" 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입니다.

영성의 잣대가 겸손입니다.

침묵, 경청, 겸손, 순종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흙(humus)에 어원을 둔 사람(homo)이자 겸손(humilitas)입니다.

 

흙같이 겸손해서 사람입니다.

사람됨의 본바탈이 겸손입니다.

회개와 함께 가는 겸손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겸손이 지혜입니다.

무지의 교만이요 지혜의 겸손입니다.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몰라서 교만의 자랑이지 알면 겸손히 감사합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 겸손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연기처럼, 안개처럼, 구름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덧없는 인생입니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입니다.

일을 계획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자랑하려가든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요, 우리가 할 일은 다만 하루하루 날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가 어떠하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일뿐입니다. 

 

셋째, "깨어 있어라!" 입니다.

깨어 있음의 은총이자 축복입니다.

참으로 깨어 있을 때, 감사요 겸손입니다.

깨어 있을 때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감사하며 겸손히 살 수 있습니다.

과연 제정신으로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깨어사는 자 몇이나 될까요?

아마도 자기를 잊고 사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성당 뒷벽의 양쪽 올빼미 눈 역시 깨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오늘 복음도 온통 깨어 있으라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막연히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찾아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이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아니 주님은 끊임없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도대체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기쁨은 없습니다.

깨어 주님을 기다릴 때 나이에 상관없이 설레는 기쁨입니다.

 

깨어 있을 때, 비로소 깨끗한 마음이요, 깨달음의 연속입니다.

깨어 있음의 선택과 훈련, 습관화도 참 좋은 영성생활의 방법입니다.

향심기도, 명상기도, 비움기도,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기도, 매일의 공동전례기도등 모두가 깨어 있음의

참 좋은 영성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축복받은 존엄한 품위의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감사하는 삶,

겸손한 삶, 깨어 있는 삶을 삽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축복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옵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우리 손이 하늘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7)


1/30(목) [(녹)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간직합시다. 서로 자극을 주어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신앙은 결단이고, 신앙은 갈망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로 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값진 보물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은 인류를 위해 사용하라고 맡겨놓은 보물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은 공동체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등불 같은 존재여야 마땅합니다. 활활 타올라야 하고, 동료 인간들의 어두운 삶을

환히 비춰줘야 합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스승 예수님의 얼굴이 반영되어 있어야 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마르 4,21)

주님!
말씀을 제 안에 가두어 두거나 제 발 아래에 두지 않게 하소서.
제 한량한 능력으로 당신 말씀의 권능을 덮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보다 아무 것도 낫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빛으로 살고, 빛에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우리는 모두 축복받은 존엄한 품위의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감사하는 삶,

겸손한 삶, 깨어 있는 삶을 삽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축복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수철 신부)

 

1/30(목) [(녹)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제30일차 기도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마르 4,21)

주님!
말씀을 제 안에 가두어 두거나 제 발 아래에 두지 않게 하소서.
제 한량한 능력으로 당신 말씀의 권능을 덮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보다 아무 것도 낫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빛으로 살고, 빛에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30일(목) 6시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