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1월 31일 금요일[(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본기도
저희도 똑같은 사랑의 불로 타올라
오직 주님을 섬기며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32-39
형제 여러분, 32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33 어떤 때에는 공공연히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러한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34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36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빛처럼 네 정의를 빛내시고,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
○ 주님은 사람의 발걸음 지켜 주시며, 그 길을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 주님이 그 손을 잡아 주시니, 비틀거려도 쓰러지지 않으리라. ◎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4,4-9)와 복음(마태 18,1-5)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거룩한 신비로 복된 요한을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그를 기억하여 주님의 제대에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에게 용서와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또는>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요한을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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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달라스는 ‘눈’이 내리면 학교도, 성당도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난 1월 9일에 달라스 지역에 눈이 내렸습니다. 전날 이미 학교는 문을 닫는다고 공지했습니다. 저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서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오전부터 내리던 눈은 오후에도 계속 내렸고, 교우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성당 미사도 중단했습니다. 달라스가 눈 때문에 성당 문을 닫아야 했다면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많은 재산 피해가 있었고, 소중한 인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제가 있던 뉴욕에서는 눈이 온다고 학교 문을 닫거나, 성당의 미사가 중단되는 예는 없었습니다. 눈에 대한 대비책이 잘 되어 있고, 눈이 내려도 제설차가 눈을 치우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달라스에 왔으니, 달라스의 상황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사가 중단되었고, 약속도 취소되었습니다. 그렇게 이틀 동안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했던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5’을 읽었습니다. 책 내용 중에 ‘옴니보어(Omnivore)’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옴니보어라는 말은 형식, 세대, 성별, 나이로 구분되던 삶의 유형이 통합된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과 AI의 결합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삶의 과정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삶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기에라도 ‘스타트업’으로 큰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노년기에도 ‘인턴’으로 스타트업에 입사해서 자기의 경험을 나눌 수 있습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조부모가 손자와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조부모의 건강과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관람도 예전에는 남성이 많았지만, 요즘은 여성 관객이 더 많습니다. 남성이 여성이 하던 일을 즐겨하기도 하고, 여성이 남성이 하던 일을 즐겨하기도 합니다. ‘옴니보어’의 시대에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순환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어 놓은 곳을 우리가 마음대로 마침표를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옴니보어’의 원조는 누구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한때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육체적인 힘과 재능과 엄청난 에너지를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정통 유다인이자 동시에 로마 시민권자, 전도유망한 율법 교사로서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바오로 사도 안에는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바오로 사도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회심 이후 바오로 사도가 한 첫 번째 일은 자신 안에 가득 차 있었던 세상의 것들을 말끔히 비워내는 일이었습니다. 비워낸 그 자리에 전혀 새로운 가치관인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바오로 사도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마음으로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옴니보어’의 원조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목자는 우리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밤을 새운다. 잃어버린 양을 찾은 착한 목자는 더 기뻐한다.” 사제는 성찬의 전례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복음: 마르 4,26-34
힘들면 언제든지 오라토리오로 달려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줄테니!
돈보스코의 제자 중에 아버지로부터 상습 폭행과 아동 학대를 받던 펠리체 레빌리오가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 들어오게 된 스토리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아버지는 어린 펠리체에게 하루 온종일 중노동을 시키고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한창 성장기에 있어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팠던 아이는 혹독한 굶주림에 늘 울고 다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돈보스코가 아버지 몰래 펠리체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펠리체! 얼마나 힘드니? 얼마나 배고프니?
혹시라도 더 이상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땐, 도망쳐서 오라토리오로 달려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줄테니.”
더 이상 아동 거듭되는 아동학대와 굶주림을 견디기 힘들었던 펠리체는 마침내 가출을 한 다음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로 달려왔습니다.
안그래도 죽을 고생을 하고 있던 펠리체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돈보스코는 만면에 가득 미소를 짓고,
두 팔을 활짝 펼치며 펠리체를 온 몸과 마음으로 끌어 안았습니다.
펠리체는 그 은혜로웠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며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제가 죽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 돈보스코가 보여주었던 친절과 자비와 환대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돈보스코에게로 달려갔을 때, 어머니 맘마 마르가리타는 굶주린 제게 따뜻한 스프와 빵을
마음껏 먹도록 준비해주셨습니다.
이어서 두 분은 손수 제 잠자리를 챙겨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돈보스코 오라토리오에 받아들여진 두 번째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기꺼이 환대하고, 양육시키고, 성장시키고,
성화시키는 본당이요, 학교요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 광주대교구 용봉동 성당 설립 25주년 기념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놀랍게도 용봉동 성당 주보 성인이 돈보스코였습니다.
사목적 열정으로 가득한 주임 신부님께서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교우들과 함께,
향후 10년을 위한 시노드 작업을 하셨습니다.
8가지 실천 과제를 마련하셨는데, 그 가운데 청소년•청년을 위한 실천 과제 첫 번째 항목이,
본당 안에 청소년 청년을 위한 공간-오라토리오-마련하기였습니다.
점점 노쇠화되어가는 우리 가톨릭교회입니다.
청소년과 청년들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우리 교회입니다.
이런 면에서 용봉동 성당에서 준비하고 있는 본당내 청소년•청년을 위한 공간(오리토리오) 마련하기는
정말이지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청소년•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성찰해봅니다.
그들이 선호하는 역동성과 활력의 심각한 부족이 아닐까요?
적극적인 환대와 배려의 부족이 아닐까요?
호감과 매력의 상실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해봅니다.
오늘 우리 본당과 수도회, 수녀회는 진심으로 청소년•청년들을 환대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우리 울타리에 들어와서 신명나게 기도하고 역동적으로 뛰어놀고,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꺼리’들이 준비되어 있는가요?
오늘 돈보스코 축일을 맞이하며, 우리 모든 사목자들 안에 그분께서 살아생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뜨거운 사목적 열정이 되살아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기울였던 그 각별하고 개별적인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에 그들로부터 사랑받는 교육자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 교육자들, 과연 아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습니까?
그런 체험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사랑은 일방적이어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 사목자들, 교육자들이 우리에게 맡겨진 양들을 사랑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양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입니다.
그 체험은 양들을 위한 더 깊은 헌신과 희생에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하느님 나라’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지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결코 외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 안으로부터 오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건설되는 걸까요?
오늘 복음은 이에 대한 해답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이 바로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곧 ‘하느님나라’는 씨앗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마르 4,27)
그렇습니다.
분명 씨앗은 자신 안에 싹을 틔우고 잎으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뿌려진 ‘씨앗’(말씀)의 권능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 교종은 말합니다.
“성경(말씀, 하늘나라)은 읽는 이(응답하는 이) 안에서 자란다(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놀랍고 신비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지면,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또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여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햇살을 받은 나뭇잎이 광합성을 못 알아들으면서도 그것을 채워가고 푸르러가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나날이 그 신비를 마시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마르 4,31)
‘겨자씨’는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됩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게 됩니다.
마치 십자나무처럼, 모든 인류를 끌어안은 큰 나무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십자나무에 인간이 거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겨자씨’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썩기만 하면, 바로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와서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트고 자라나는 이 놀라운 신비에 순응하게 하소서.
저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마르 4,31)
주님!
당신은 겨자씨처럼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사랑하는 이 위에 군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의 길인 까닭입니다.
오늘 제가 형제들 앞에서 작아지게 하소서!
십자나무에 인류의 거처를 마련하듯, 제가 형제들의 거처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30 연중 제3주간 목요일 히브19,19-25 마르4,21-25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밝히는 빛이옵니다.”(시편119,105)
오늘 만나는 옛 현자의 말씀도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공부에는
끝이 없다.”<다산>
“일은 충실하게, 맡은 일은 신중하게 하며 도를 체득한 사람을 보고
자신을 바로 잡는다면 ‘학문을 좋아한다’라고 할 수 있다.”<논어>
이런 사람되는, 참사람되는 공부가 진짜공부요, 해도해도 끝이 없는 평생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저절로가 아니라 평생 하느님의 자녀, 빛의 자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평생학인이 참으로 믿는 우리들의 신원입니다.
오늘 복음은 네 다른 짧은 단절어, 즉 속담 모음집이지만 참 신자의 삶이라는 목표에 하나로 모아집니다.
사람은 섬이 아니듯 참으로 믿는 이들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결코 닫혀 있는 고립단절된 삶이 아니라,
세상에 활짝 열려 있는,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 말그대로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됩니다.
바로 믿는 이들의 신원이자 존재이유입니다.
세상이 없는 빛, 세상이 없는 소금은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요셉 수도 공동체의 경우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세상에 활짝 열려 있는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은 참으로 믿는 이들의 신원을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누구도 등불을 켜놓고 그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세상을 위한 빛이기에 감추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비밀로 간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알려져 공유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대한 지식은 우리만이 간직해야할 사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가톨릭 신자’는 모든 계명을 지키고, 자주 미사에 참석하고 은총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발광체인 주님을 반사하는 반사체처럼 자신의 신앙을 발산하고, 다른 사람과 관대하게 나누며,
자신처럼 다른 사람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경험을 하는데 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면이 아무리 좋더라도 우리는 어떻든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가 주님의 사도가,
주님의 복음 선포자가, 주님의 향기가,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이 받는 것과 같으며,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받습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어질 것이요,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 마져 빼앗길 것입니다.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역설의 진리가 나누면 나눌수록 부요해지는 삶,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바로 주인의 돈을 잃지 않기 위해 땅에 묻은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그는 있는 것 까지 빼앗겼지만 투자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돌려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리는 ‘받는 것’(by getting)이 아니라, ‘주는 것’(by giving)으로 이득을 얻습니다.
우리는 줄 때만 얻을 수 있고, 모든 이가 줄 때 모든 이가 얻습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탁월한 사랑의 실천으로 세상의 빛이, 세상의 소금이 된 존재요 공동체입니다.
이래야 세상에 속화되지 않고 세상을 성화하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다른 네 속담이 궁극으로 주는 하나의 가르침이자 깨우침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내용인지 주님은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너희는 새겨 들어라.” 강조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진리를 며칠전 공동체 형제들의 환대를 통해 체험했습니다.
인간적 법인 단식이나 침묵 수행의 우위에 있는 하느님 법인 환대의 사랑이니 바로 이웃을 통해
주님을 환대하기 때문입니다.
수도공동체의 정주영성과 함께 가는 환대영성입니다.
사랑의 환대가 수도원이 섬이 아닌 세상에 열려 있는,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합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속담처럼 환대의 사랑, 환대의 빛, 환대의 향기는 등불처럼 세상을 밝히고
숨겨져 있는 듯 하지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얼마전 다섯분의 타 수도원 형제들이 요셉수도원에 머무르는 동안, 몇 수도형제는 서울 관광에 최선을 다해
환대의 사랑을 실천했고 피곤한 기색은 커녕 활력이 넘치는 모습에서 주는 것보다 받는 축복이,
하느님 주시는 환대의 축복이 대단함을 깨달았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면서 환대에 소홀했던 자신이 내심 많이 미안했었는데, 3박4일후 떠날 때,
4시 새벽 산책후 주님 은총으로 떠나는 다섯 형제들의 차를 발견하고 즉시 달려가니
이미 이들을 환대했던 우리 세 수도형제가 전송차 나와 있었습니다.
급히 도착하여 떠나기 직전 차에 탄 다섯 형제들과 악수를 나누고 작별인사를 하니
말그대로 ‘구원의 마지막 열차’를 탄 듯 마음이 마냥 홀가분하며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떠나는 모습 보지 못했다면 정말 아쉬웠을 것입니다.
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했고, 하루종일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새삼 환대의 사랑 실천에 오늘 복음의 진리가 압축 요약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충실한 신앙생활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실제적인 지침 5가지를 소개합니다.
세상의 빛이자, 세상의 소금과 같은 삶을 지향하는 교회공동체에 속한 모든 형제자매들이 준수해야 할
가르침입니다.
1.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2.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3.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4.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5.서로를 격려합시다. ‘오늘이 그날’인 것처럼 더욱더 이렇게 합시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대사제이자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열어주신
주님께서 우리 모두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으로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24,3-4ㄱㄴ). 아멘.
1/31(금) [(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교회는 모든 이의 모든 것( Omnibus Omnia)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조재형 신부)
2. 오늘 돈보스코 축일을 맞이하며, 우리 모든 사목자들 안에 그분께서 살아생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뜨거운 사목적 열정이 되살아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기울였던 그 각별하고 개별적인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기원합니다.(양승국 신부)
3. ‘하느님 나라’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지면,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또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여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나날이 그 신비를 마시며 살아가는 중입니다.(이영근 신부)
4. 누구도 등불을 켜놓고 그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세상을 위한 빛이기에 감추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비밀로 간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알려져 공유되어야 합니다.(이수철 신부)
1/31(금) [(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제31일차 기도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하느님 나라’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지면,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또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여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 2025년 1월31일(금) 6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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