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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2월 4일 화요일[(녹) 연중 제4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2월 4일 화요일[(녹) 연중 제4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06(105),47
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본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2,1-4
형제 여러분, 1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2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2(21),26ㄴ-27.28과 30ㄱㄴ.30ㄷ-32(◎ 27ㄴ)
◎ 주님 찾는 이들은 그분을 찬양하리라.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 채우리라.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 찾는 이들은 그분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
○ 온 세상 땅끝마다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만 민족 모든 가문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세상 모든 권세가들 그분께만 경배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모든 이들 그분께 무릎 꿇으리라. ◎
○ 내 영혼 주님 위해 살고,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다가올 세대에게 주님 이야기 전해져, 태어날 백성에게 그 의로움 알리리라. 주님이 이렇게 하셨음이로다. ◎

복음 환호송

마태 8,17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
◎ 알렐루야.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주님의 제대에 예물을 올리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저희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또는>
마태 5,3.5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탈리타 쿰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4주간 화요일

 

페루에서 선교하시는 수녀님이 왔습니다. 잠시 머물려고 했는데 어느덧 27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어린 딸과 함께 사는 눈이 먼 엄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집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수녀님은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후원자와 다시 방문했을 때입니다. 후원자는 수녀님께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 했습니다. 혹시 볼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수녀님은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검사한 후에 빛을 받아들이기에 수술하면 다시 볼 수 있을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가 수녀님에게 물었습니다. 수녀님은 이 자매와 어떤 사이인데 이렇게 데려왔습니까? 수녀님은 선교사라고 했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모두가 한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수녀님의 말을 들은 의사는 수녀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그 엄마의 눈을 뜨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한쪽 눈을 뜨게 하는 비용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께 자기도 착한 일을 하였다고 말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엄마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수녀님이 엄마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수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한 일도 전염이 됩니다. 후원자의 따뜻한 마음이 의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눈이 먼 엄마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에 영어 시간에 배웠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동네 길가에 뾰족하게 나온 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다니면서 그 돌 때문에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입니다. 마을의 한 청년이 곡괭이를 가지고 와서 뾰족하게 나온 돌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빙산의 일각처럼 돌의 일부만 나온 것이지, 커다란 돌이 묻혀있었습니다. 청년이 돌을 캐내기 시작하니,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돌을 치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넘어지는 일 없이 길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45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읽었던 글이 생각나는 건, 제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길가에 떨어져 있던 타이어를 옮긴 적이 있습니다. 차들이 다니는 길이고, 자칫 타이어 때문에 사고 날 수 있기에 옮기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많은 증인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복음을 보면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종을 위해서 예수님께 치유를 청했던 백인대장이 있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굳이 오시지 않고, 한 말씀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이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주었던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제와 레위는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했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을 여관에 데리고 가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 학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신앙을 갖는다는 건, 증인이 되는 겁니다. 교회가 2000년을 이어올 수 있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한 증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탈리타쿰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나태함에서 성실함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기적이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기적이 따라오는 겁니다. 오늘은 중용 23장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하게 하고, 남을 감동하게 하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복음마르 5,21-43

 

우리는 이 시대 또 다른 예수님이요, 하느님의 손가락입니다!

 

하혈하는 여인의 치유뿐만 아니라 이미 숨이 끊어진 회당장 딸의 목숨까지 소생시키신

예수님의 전지전능한 모습에 사람들은 너무 놀라 그야말로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넋’은 다른 말로 ‘혼(魂)’, ‘혼백(魂魄)’, 영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넋이라는 것은 죽어야 사라지는 것이지만, 갑작스레 큰 충격을 받을 경우, 모든 생각이나 사고가

일시 정지되는데, 이런 상태를 넋이 나갔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치유나 구마, 소생은 충격적인 것이었으며,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능력은 그분 안에 하느님께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은혜롭게도 잠시나마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하느님 나라를

잠시나마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봅니다.

왜 우리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놀라운 치유와 구마, 소생 현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인가?

왜 우리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방식이 좀 다르지만, 예수님 시대 그 역동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치유와 구마, 소생 현상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손가락을 통해 이루어지던 놀라운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는 또 다른 선인들과 의인들을 통해

지속되고 있음을 저는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잘 준비된 의료진들과 누군가의 피나는 연구 끝에 발명된 최첨단 의료기기들이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시키고 살려내고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그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싶은 선한 의지를 지닌 의료진들의 얼굴은

이 시대 또 다른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어린이들,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그들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후원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제2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이웃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서 겨우겨우 통증을 참아내고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 또 다른 예수님이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2천년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그 사랑의 기적을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계속해나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우리가 끝났다고 여길 때,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하혈병을 치유 받은 여인 이야기'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으로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자였지만, 죽어가는 어린 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속수무책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 야이로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간청을 드립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마르 5,23)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이 애틋한 사랑과 믿음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 나섭니다.

 비로소 딸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막 길을 돌아서는데, 사람들이 소식을 전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마르 5,35)

참으로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드는 순간입니다. 

 

오로지 한 곳, 하느님께 희망을 두었는데,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와르르 무너져 버린 참담한 순간입니다. 

그야말로 하염없이 넘어지는 절망의 순간, 억울함과 원망이 밀어닥치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어찌하는가? 

이 절망의 순간, 억울함과 원망이 밀어닥치는 이 순간, 하염없이 넘어지고 말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데서 물을 길어 올릴 것인가?

 

사실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응답해야 할 순간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퍼올리는 기회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마르 5,36).

그렇습니다. 

바로 이 죽음의 순간이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길러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생명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이 믿음의 시련이기도 했지만, 바로 기회의 순간이었습니다. 

‘따님이 이미 죽었으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을 따를 것인가 라는 결단의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도 야이로의 믿음을 끌어올리십니다.

딸의 병을 고쳐주실 분으로 믿었던 예수님을, 이제는 이미 죽은 딸을 살려내실 수 있는 분으로 그 믿음을 끌어올리시는 순간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이 자라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더 깊은 믿음에로 이끄신 까닭입니다.

참으로 믿음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여길 때,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절망적이라고 여길 때, 바로 그 때가 구원의 때요, 은총의 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마르 5,41)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일어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 일어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일어나게 하소서! 

일어나 진리 안을 걷게 하소서!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마르 5,30)

 

주님!

군중 속에 있지만 말고 당신 옷에 손을 대게 하소서!

쫓아다니지만 말고 당신 옷을 꼭 붙들고 따르게 하소서!

간절함과 믿음으로 말씀의 옷깃을 꼭 붙들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옷을 입히시어 당신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사진설명: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3.연중 제4주간 월요일                                                                    히브11,32-40 마르5,1-20

 

                                                           복음 선포자의 온전한 삶

                                                     “구원자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자 우리의 빛이시다.”

(Jesus is our salvation and our light)

 

“희망하는 것은 하느님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To hope is to turn around to God)

 

새벽 교황청 인터넷을 열었을 때 교황님 강론 제목이 신선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의 삶에 더불어의 여정에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예수님 중심에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공동체 삶이어야 합니다.

예전 수도원을 찾았던 분들과의 문답이 생각납니다.

수도원의 주변환경이 좋다며 이구동성의 찬탄과 더불어 주고 받은 대화입니다.

 

“아, 여기가 천국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날로 좋아지고 깊어질 때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고립단절의 혼자의 삶이라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제가 몸담아 살고 있는 여기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상호보완의 수도공동체’는 저에겐 최고의 스승입니다.

수도공동체에 늘 감사하며 배우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이나 천국은 장소 개념이기 보다는 관계 개념입니다.

환경은 좋지 않아도 서로 섬기며 화목하게 지내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국내 안팎이 온통 치열한 싸움터입니다.

국내 상황을 봐도 분열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격화된 시위현장을 보면 심리적 내전 상태요 제정신들이 아닙니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곳곳에 더러운 영이 들린 광신의 미친 자들이 널려 있는 모습입니다.

옛 현자도 공부할 것을 강조한 가르침에 공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구도자요 수행자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을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다.”<다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논어>

끊임없이 배우며 생각하며 실천해야 온전한 지성인의 지혜로운 삶이겠습니다.

 

여전히 대두되는 물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의 실현이 목마르게 절실한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과 제1독서 히브리서 말씀이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상태가 너무 비참합니다. 

 

공동체로부터 떠난 고립단절된 삶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닫습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자의 치유과정과 공동체로의 복귀 과정이 깊은 묵상감입니다.

복음의 더러운 영에 들린 미친자의 구제불능의 적나라한 묘사가 충격적이요 바로 이런 상태가 지옥입니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흡사 구원자 주님을 찾는 울부짖음이요,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공동체로부터 고립격리되어 그 마음 중심 자리에 예수님이 자리잡지 않아 더러운 영에 사로잡힐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오늘 히브리서에서 이와 흡사한 그리스도 예수님 이전의 불완전한 믿음의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떤 이들을 석방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고문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역시 구원자 주님을 찾아 헤매는 목마르고 굶주린 모습들처럼 보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없는, 예수님 이전의 비참했던 믿는 이들의 현실을 살펴봤습니다.

바로 이런 삶의 현장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하늘에 오르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 삶의 한복판 중심에 우리와 함께 살려 오신 것입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의 호령에 더러운 영들은 돼지떼와 더불어 사라졌고, 더러운 영에 들렸던 이는 제정신이 들어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 하였으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고 본래의 가족 공동체로 복귀시키며

자기 삶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자가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공격이 최선, 최고의 방어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각자 공동체 삶의 자리에서

적극적 복음 선포의 삶을 살 때, 그대로 하느님 나라 공동체 꿈의 실현이요 마귀들의 영원한 퇴출이니

저절로 영육의 건강입니다.

이래야 현대판 더러운 영이 들린 극단의 광신자나 맹신자가 되지 않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처방이나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항구히 열렬히 사랑하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과 일치되어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을 모시고 영적승리의 온전한 삶을, 복음 선포자의 적극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2/4(화) [(녹)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탈리타쿰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나태함에서 성실함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기적이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기적이 따라오는 겁니다.(조재형 신부)

 

2. 하혈하는 여인의 치유뿐만 아니라 이미 숨이 끊어진 회당장 딸의 목숨까지 소생시키신

예수님의 전지전능한 모습에 사람들은 너무 놀라 그야말로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봅니다.

왜 우리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놀라운 치유와 구마, 소생 현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인가?

왜 우리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방식이 좀 다르지만, 예수님 시대 그 역동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치유와 구마, 소생 현상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양승국 신부)

 

3.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마르 5,41)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일어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 일어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일어나게 하소서! 

일어나 진리 안을 걷게 하소서!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마르 5,30)

 

주님!

군중 속에 있지만 말고 당신 옷에 손을 대게 하소서!

쫓아다니지만 말고 당신 옷을 꼭 붙들고 따르게 하소서!

간절함과 믿음으로 말씀의 옷깃을 꼭 붙들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옷을 입히시어 당신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의 호령에 더러운 영들은 돼지떼와 더불어 사라졌고, 더러운 영에 들렸던 이는 제정신이 들어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 하였으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고 본래의 가족 공동체로 복귀시키며

자기 삶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자가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이수철 신부)

 

 

2/4(화) [(녹)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마르 5,30)

 

주님!

군중 속에 있지만 말고 당신 옷에 손을 대게 하소서!

쫓아다니지만 말고 당신 옷을 꼭 붙들고 따르게 하소서!

간절함과 믿음으로 말씀의 옷깃을 꼭 붙들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옷을 입히시어 당신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마르 5,41)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일어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 일어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일어나게 하소서! 

일어나 진리 안을 걷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4일(화) 6시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