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2월 5일 수요일[(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또는>
복된 동정녀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져, 동정녀들의 신랑이며 순교자들의 임금이신 주님을 본받았네.
본기도
복된 아가타는 동정과 순교의 영광으로 교회를 빛냈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우리의 됨됨이를 익히 아시고,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기억하시네. ◎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고, 그분의 의로움은 대대손손, 그분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26-31)와 복음(루카 9,23-2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아가타의 생명을
제물로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를 기리며 드리는 이 예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가타에게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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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콜로라도엘 다녀왔습니다.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신부님과 인연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지난 1월 12일에 제가 덴버를 찾았습니다. 마침 1월 14일은 신부님의 서품 23년이 되는 날이어서 더 뜻깊었습니다. 신부님은 덴버의 좋은 곳을 안내 해 주었습니다. 온천엘 다녀왔고, 신들의 정원(Garden of the gods)에 다녀왔습니다. 온천은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왕복 6시간 동안 신부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신부님은 ‘콜로라도’의 뜻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콜로라도의 뜻은 스페인 말로 ‘색이 붉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콜로라도의 바위는 붉은색이 많았습니다. 신들의 정원의 이름의 유래도 들었습니다. 그 지역을 발견한 사람이 처음에는 ‘맥주의 정원(Beer Garden)’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 주피터와 주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그곳의 이름을 ‘신들의 정원(Garden of the gods)’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름이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콜로라도는 물이 좋아서 맥주가 맛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맥주의 정원이라고 했다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술’이 생각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들의 정원이라고 했기에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세례명을 생각합니다. 형들과 동생은 생일에 맞추어서 세례명을 정했습니다. 큰형은 9월에 맞추어서 미카엘, 작은형은 12월에 맞추어서 사도 요한, 동생은 10월에 맞추어서 프란체스카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5월인데 가브리엘로 정했습니다. 5월이면, 마티아로 해도 좋았을 텐데 부모님은 가브리엘로 정하였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정하였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저의 세례명 가브리엘이 좋습니다. 가브리엘이 천사라서 좋았고,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뜻을 전해서 좋았습니다. 가브리엘이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어서 좋았습니다. 사제가 되어서 말씀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뜻을 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의 세례명과 제가 하는 직무가 비슷해서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도 새로운 이름을 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나약하기에 물속에 빠지기도 했고,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베드로는 굳건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서울대교구 부제, 사제 서품식이 있습니다. 멀리 있지만 새 부제와 새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34년 사제 생활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이끌어 주셨고, 교우분들은 저를 이해해 주셨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하고 싶었고, 사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직무를 새 사제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제는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는 환자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진단해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시대의 징표는 사색, 독서, 경청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한 독서가 필요합니다. 사제는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교회의 서적, 가르침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은 강론을 통해서 선포되기에 강론 준비를 충실하게 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이 우리와 함께하셨고, 말씀이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사제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기도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기도는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제는 샘이 깊은 물과 같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사제는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셨습니다. 가난한 이, 아픈 이,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행동하는 사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많은 기적을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우분들이 마음을 열어도 시대의 징표를 모르는 사제가 있다면,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제가 있다면, 기도에 게으른 사제가 있다면, 행동하지 않는 사제가 있다면 복음의 꽃은 피기 어려울 것입니다. 새 자세들이 가는 새로운 임지에서 복음의 꽃이 활짝 피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서 성령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만나서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제와 교우가 만나서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꽃피고, 희망이 열매 맺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마르 6,1-6:
주님, 제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
오늘 축일은 맞이하시는 아가타 동정 순교자는 체칠리아, 루치아, 아녜스 성녀와 더불어 로마 교회의
네 동정 순교자로 널리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아가타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시절, 이탈리아의 최남단 시칠리아 섬 카타니아 지방 명망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다방면에 출중했던 그녀는 당시 총독의 눈에 띄게 됩니다.
아가타에게 완전히 빠져 제 정신을 못 차리게 된 총독은 그녀가 싫다는 데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청혼을 거듭합니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청혼을 거부하자 심기가 완전히 불편해진 총독은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알고
법정으로 넘깁니다.
재판정에서 아가타는 갖은 잔혹한 형벌을 다 받지만 꿋꿋하게 견뎌냅니다.
한 차례 끔찍한 고문을 잘 견뎌낸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다시 옥으로 돌아갈 때마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만면에 희색을 띤 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갔으며, 고문으로 인한 처절한 고통을
기도로써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을 주님께 봉헌하였습니다.
다음날 다시 재판정으로 끌려 나온 아가타의 태도는 더욱 의연했었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형리들은 빨갛게 달군 쇠로 그녀의 가슴을 도려냈지만 그 끔찍한 고통 중에서도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정결에 대한 사랑으로 이와 같은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제 구세주 하느님, 이 고통을 잘 참아 이기도록 도와주소서.”
다시 감방으로 돌아온 다음 날 베드로 사도가 치료 약을 가지고 나타나자 아가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님! 저는 세상의 약으로 제 육신을 고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아가타의 의연한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총독은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불타고 있는 석탄 위에
아가타를 뒹굴게 했다고 합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숨을 거두어가던 그녀는 이윽고 마지막 순간이 오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착한 스승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제가 박해자의 고통을 이기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주님, 제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과 온전히 일치해 있었던 아가타였기에 그 어떤 외부로부터의 고통에도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두려운 것 오직 한 가지는 주님과 멀어지는 것뿐이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믿음’은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하느님께로 가는 것>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나와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워했습니다.(마르 6,2) 그러나 그분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마르 6,3) 그들은 왜 놀라워하면서도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사실 그들은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그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마르 6,2) 하면서, '그분의 지혜와 기적의 힘'에는 놀라워했지만, 실상 그 지혜와 힘이 어디에서 온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무지’, 곧 그분의 지혜와 힘의 원천을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그분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앎’을 내려놓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 6,3)하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고집할 뿐입니다. 곧 자신들의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이 안다’고 여기는 자기 생각이 완고함과 불신을 불러오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믿고 섬기고 따른 우상숭배에 빠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고집부리는 사울을 꾸짖을 때, 사무엘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1사무 15,23)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우상을 벗어나야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지, 하느님을 자기의 좁은 지식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곧 ‘믿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의 그분의 인격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비록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러한 문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사랑을 위하여 저는 가장 낯선 생각들도 받아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의 앎’에 대한 완고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오히려 ‘자신이 알지 못한 낯선 앎’에 개방되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그것은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이요 받아들임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하느님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고, ‘완고함’은 불신의 씨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 6,4) 주님! 스승을 곁에 두고도 존경하지 않은 저는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데도 의사를 믿지 않아 수술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환자입니다. 제 앎을 뛰어넘는 당신을 믿지 못하는 저는 안다는 제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주님, 존경을 겸손의 표지로, 믿음을 응답의 표지로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4.연중 제4주간 화요일 히브12,1-4 마르5,21-43
믿음과 치유의 여정
“믿음의 영도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앞서 난 발자국을 따라 밟아본다. 먼저 간 사람이 길을 냈다면 나 또한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다산>
“안연은 이렇게 말했다. ‘순임금이 누구며 나는 누군가? 하려고만 하면 누구나 그와 같을 것이다.”<맹자>
바로 믿음의 여정이 그러합니다.
누구나 믿음의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믿음과 치유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의 일과가 참 분주합니다.
예수님의 참 모습이 잘 드러나는 오늘 복음의 장면입니다.
어제 복음의 구마이적사화에이어 오늘 복음은 주님의 소생이적사화와 치유이적사화가 뒤따릅니다.
예수님의 이적에 앞서 수혜자의 믿음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봅니다.
믿음의 본보기가 야이로라는 회당장이요 그는 호숫가에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 그분 발 앞에 엎드려
간곡히 청합니다. 극진한 믿음이 표현이 이런 겸손한 모습입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야이로의 겸손하고 간절한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은 즉시 그와 함께 나서십니다.
이어지는 또 한분 믿음의 모범이 하혈병을 앓던 여자였습니다.
무려 열두해 동안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진 여자였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이런 악조건속에서도 절망이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혈병을 앓던 여자는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살며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과연 그 여자는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알아 챈 예수님은 누가 내 옷에 손을 댓는지 물으며 사방을 살피십니다.
그 여자는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얻드려 사실대로 다 아룁니다.
앞서의 회당장처럼 참 절박한 믿음에 지극히 겸손한 자세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치유선언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혈병의 치유의 구원에 병자의 믿음이 결정적이었음을 봅니다.
이어 계속되는 야이로 회당장 딸의 치유과정중 예수님의 말마디도 큰 위로가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회당장에 대한 격려가 흡사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참 다정하게 들립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고 회당장 집에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중요한 순간에 꼭 대동했던 셋 애제자들입니다.
회당장의 집에 이르러 소란한 광경과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목격한 주님의 처신도
지극히 평온하고 침착합니다. 예수님의 큰 믿음을 엿볼수 있는 장면입니다.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에 들어가십니다.
살아 있는 장면을 보는 듯 오늘 복음의 장면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살리시니 이 또한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탈리타 꿈!”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말인데 참 은혜롭습니다.
“일어나라!” 바로 부활을 상징하는 말마디입니다.
그대로 미사중 우리를 격려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좌절하여 무기력중에 있을 때, “탈리타 쿰!” 하며 벌떡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평생 마음에 담고, 입에 달고 살아야 할 말마디가 “탈리타 쿰!” ‘일어나라!’요,
하나 더한다면 벙어리 입을 열게 하신 “에파타!” ‘열려라!’는 말마디입니다.
소녀는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니니,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 열두 해 하혈병 앓던 여자가 고생한
햇수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서 넋을 잃었다 합니다.
야이로 회당장의 믿음과 예수님의 치유의 구원 응답을 통해 크게 배우고 깨우쳤을 사람들입니다.
아마 회당장 딸의 소생과 더불어 이들의 영혼도 다시 살아나는 치유의 구원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더불어 주님을 만났을 때 치유의 구원입니다.
한두번 치유가 아니라 평생 치유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만날 때 치유의 구원이니, 치유의 여정은 주님과 만남의 여정,
믿음의 여정과 함께 감을 봅니다.
믿음도 보고 배웁니다.
역시 믿음의 선택, 믿음의 훈련, 믿음의 습관, 믿음의 성장입니다.
날마다 평생, 온마음. 온힘을 다해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보다
더 좋은 믿음의 훈련도 없습니다.
오늘 야이로 회당장과 하혈병 앓다가 주님을 만나 치유받은 무명의 여자는 믿음의 모범입니다.
회당장 딸의 소생이적을 통해, 하혈병 앓던 여자의 치유 구원을 통해 전화위복의 진리를 배웁니다.
회당장은 딸의 죽음을 믿음의 계기로 삼았고, 하혈병 앓던 여자는 그 불치의 병을 믿음의 계기로 삼아
주님을 만났고 둘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두분 다 결코 역경에 좌절하거나 자포자기하여 절망에 주저앉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찾았고 만났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니 온갖 역경을 믿음의 계기로, 전기로 삼는 것입니다.
정말 큰 죄는 절망입니다.
절망하여 모든 것을 놔버리면 하느님도 어쩌지 못합니다.
절망의 모든 순간들을 믿음의 전기로, 계기로, 즉 주님을 만나라는 신호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말씀이 우리 믿음의 여정에 참 좋은 격려가 됩니다.
“이렇게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래서 모든 역경의 순간들을 전화위복, 바로 믿음의 전기(轉機), 믿음의 계기(契機)로,
영적성장의 계기로 삼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온갖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예수님의 믿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결코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의 영도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님” 만을
바라보면서, 주님과 일치하여, 참으로 복된 믿음의 여정, 치유의 여정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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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수) [(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 되새김 구절
1.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이 우리와 함께하셨고, 말씀이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사제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기도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기도는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제는 샘이 깊은 물과 같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사제는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셨습니다. 가난한 이, 아픈 이,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행동하는 사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조재형 신부)
2. “베드로 사도님! 저는 세상의 약으로 제 육신을 고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아가타의 의연한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총독은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불타고 있는 석탄 위에
아가타를 뒹굴게 했다고 합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숨을 거두어가던 그녀는 이윽고 마지막 순간이 오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착한 스승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제가 박해자의 고통을 이기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주님, 제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 6,4)
주님!
스승을 곁에 두고도 존경하지 않은 저는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데도 의사를 믿지 않아
수술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환자입니다.
제 앎을 뛰어넘는 당신을 믿지 못하는 저는
안다는 제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주님,
존경을 겸손의 표지로,
믿음을 응답의 표지로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탈리타 꿈!”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말인데 참 은혜롭습니다.
“일어나라!” 바로 부활을 상징하는 말마디입니다.
그대로 미사중 우리를 격려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좌절하여 무기력중에 있을 때, “탈리타 쿰!” 하며 벌떡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평생 마음에 담고, 입에 달고 살아야 할 말마디가 “탈리타 쿰!” ‘일어나라!’요,
하나 더한다면 벙어리 입을 열게 하신 “에파타!” ‘열려라!’는 말마디입니다.
(이수철 신부)
2/5(수) [(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 오늘의 기도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 6,4)
주님!
스승을 곁에 두고도 존경하지 않은 저는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데도 의사를 믿지 않아
수술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환자입니다.
제 앎을 뛰어넘는 당신을 믿지 못하는 저는
안다는 제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주님,
존경을 겸손의 표지로,
믿음을 응답의 표지로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5일9수) 6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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