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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2월 6일 목요일[(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2월 6일 목요일[(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근처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한 뒤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 수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나카사키로 압송되어, 1597년 2월 5일에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다. 1862년 그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다.

입당송

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또는>
이 성인들은 주님을 위하여 영광스럽게 피를 흘렸네. 살아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 따라 죽어서는 승리의 월계관을 받았네.

본기도

모든 성인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도 죽기까지 신앙을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2,18-19.21-24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는 “나는 두렵다.” 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8(47),2-3ㄱㄴ.3ㄷㄹ-4.9.10-11(◎ 10 참조)
◎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누리나이다.
○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우리 하느님의 도성,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아름답게 솟아오른 그 산은 온 누리의 기쁨이라네. ◎
○ 북녘 끝 시온산은 위대한 임금의 도읍이라네. 하느님은 그 궁궐 안에 계시며, 당신을 요새로 드러내신다. ◎
○ 만군의 주님 그 도성에서, 우리 하느님의 도성에서, 우리가 들은 대로 우리는 보았네. 하느님이 그 도성을 영원히 굳히셨네. ◎
○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

복음 환호송

마르 1,15
◎ 알렐루야.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갈라 2,19-20)와 복음(마태 28,16-2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며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주님의 종인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22,28-3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나는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또는>
보라, 하느님 앞에 성인들이 받을 큰 상이 쌓여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었으니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거룩한 순교자들에게 십자가의 오묘한 신비를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이 제사로 힘을 얻고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교회 안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 설명: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콜로라도에서 달라스 오는 길에 문자를 받았습니다. 며칠 전에 병자성사를 드린 형제님이 위독하다는 문자였습니다. 저는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합니다. 환자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하고, 가족이 돌볼 수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면 보험에서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형제님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습니다. 가족이 돌 볼 수 있는 상황도 안 되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형제님은 의식은 없었지만,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였고, 형제님을 위해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형제님을 위해서 병자성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대전에는 단일 제과점으로 매출 100억 원이 넘는 제과점이 있습니다. 제과점 이름은 성심당입니다. 성심당은 대전의 작은 찐빵 가게로 시작해 현재는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겨자씨의 비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안식처가 되듯, 적은 노력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큰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심당은 지역 사회와의 연대를 강조하며 나눔을 실천해 왔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빵을 나누고,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섬김의 모범을 따라갔습니다. 이는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성심당은 한결같은 품질과 정직한 경영으로 신뢰를 얻었습니다. 정직함과 꾸준함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이며,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심당의 이야기는 일상의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하느님께 봉헌할 때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렸고, 배를 버렸고, 가족들을 떠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능, 지혜, 기적,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돈이 없어도, 지팡이가 없어도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였습니다. 마귀를 쫓아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여러분도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살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면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직책과 직분은 거룩함의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곧 교구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사제들이 새로운 곳으로 떠날 것입니다. 정들었던 곳을 떠나는 것은 아쉬움입니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은 긴장과 설렘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입니다. 사제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시대의 징표를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영적인 힘은 기도에서 시작합니다. 사제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선포한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것을 충실하게 실행한다면 사제가 있는 자리는 꽃자리가 될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자본 만능주의, 개인 만능주의라는 마귀를 쫓아내야 합니다. 모두가 그곳을 향해서 가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난의 영성을 살아야 합니다. 2000년 교회를 이끌어 온 것은 화려한 성전과 법이 아닙니다. 가난을 실천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영성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복음마르 6,7-13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일용할 양식도 들어올 것입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그야말로 혜성같은 존재로 사람들 앞에 등장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신선한 예수님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기적들 앞에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그분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슴을 후벼파는

명쾌한 가르침에 박수를 치고 환호했습니다.

다른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말과 행동이 완벽히 일치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만만한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요구를 하시는지,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이 사목 실습을 떠나기 직전, 몇가지 주의사항을 말씀하시는데,

참으로 특별합니다.

적어도 일주일 남짓 되는 장거리 일정일텐데도 불구하고,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참으로 난감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요구가 너무 지나쳤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문전걸식을 하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팡이는 왜 지닐 수 있게 하셨을까요?

산짐승이나 전갈, 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서 지팡이와 신발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명씩 파견하지 않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혼자 가면 외롭고 쓸쓸하고, 얻어먹을 때도 부끄럽고 난감할 텐데, 둘이 함께 하면 용기도 생기고

의지도 되고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 서로 지탱해주고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큰 선심을 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 활동을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당부하신 강조점은 단순하고 검소한 정신이었습니다.

복음 선포라는 엄중하고 중차대한 일을 행함에 있어 안락한 것에 대한 포기는 가장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오로지 복음 선포에 지니고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게 하기 위한 포기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한 순례자가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더니, 건장한 남자들이 묵직한 햄머 하나씩을 들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장님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대체 무엇하는 사람들인가요?” “저희 수도원 수사들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수사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요?”

“지금 수도원을 허물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니, 멋진 수도원인데, 대체 왜요?”

“저 건물을 허물면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더 큰 포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쉽지만 낡은 나를 허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 새로운 시야가 활짝 열립니다.

아깝지만 어제의 나를 포기하면 새로운 세상, 새 아침이 밝아옵니다.

 

“두 벌은 껴입지 말라는 말씀은 이중적으로 처신하지 말고 단순하게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교부)

 

“그대는 길을 떠날 때 전대도 지니지 말고, 여벌 옷을 생각하며 걷지도 마십시오.

배를 채울 양식이 부족할까 염려하며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일용할 양식도 들어올 것입니다.

어떤 새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하느님 섭리로 먹이를 얻으리라 근심없이 희망하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합니까?”(프루텐티우스 교부)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복음 선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

 

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의 파견 장면으로, '말씀 선포의 사명'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세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기에 앞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주십니다.(마르 6,7)
곧 미리 준비시키고 무장시키십니다. 

둘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이는 진리가 검증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의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이미 ‘그들 안에’ 실현되어야 함을 요청합니다.

 

곧 ‘파견 받은 자들’ 사이에 이미 형성된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파견 받은 자’는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하고,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선포하면서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되어야 하고, 하느님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하느님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복음 선포의 길’이 본질적으로 ‘함께 가는 길이요 여정’(시노달리따스, sinodalitas)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결국 ‘함께 가는 길’로의 초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견 받은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며, 동시에 하느님과 함께 가는 길이며, 하느님께 함께 가는 길입니다.

복음으로 빛으로 함께 가는 길이며, 그분 영의 동행으로 함께 가는 길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들의 삶 자체, 그들이 살아가는 길 자체가 증거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가는 ‘복음 선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에 대해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마르 6,8) 

이는 오로지 당신께 의탁하고 당신께 신뢰를 두고 가는 길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왜 지팡이는 가져가라고 하셨을까요?

‘지팡이’는 여행자에게 있어 들짐승을 쫓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세의 ‘지팡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양치기 모세에게는 단순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지팡이었지만, 말씀과 함께 바다를 내려치면 물결이 갈라지고, 바위를 두드리면 물이 솟아나고, 병든 이들이 쳐다보면 살아나게 하는 ‘구원의 지팡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지팡이’로 인류 구원과 사랑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바로 그 ‘지팡이’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1코린 1,23)로 말입니다.

또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집에 머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발의 먼지를 털고 그곳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곧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처신에 따르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임을 말해줍니다. 

셋째 장면에서는 ‘파견 받은 이’가 할 일이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는'(6,12-13) 것이며, 그 일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파견하신 분의 뜻에 따라, 그분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제자임과 동시에 파견 받아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 파견하신 그분께 매여 있고, 그분 권능의 지팡이인 ‘말씀의 지팡이’를 꼭 붙들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마르 6,8)

 

그렇습니다,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 할 것을 이미 가진 까닭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닌 까닭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무능함과 허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사진 설명: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5.수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231-251) 기념일 

                                                                                                                히브12,4-7.11-15 마르6,1-6

                                                         무지의 치유

                                                "회개의 수행이 답이다"

 

“아가다는 마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즐겁고 자랑스럽게 감옥에 갔으며,

 자기 고통을 기도로써 주님께 봉헌하였다."(즈가르야 노래 후렴)

 

인간에게 근본적인 마음의 병은 무지입니다.

무지의 치유에는 평생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무지로부터 벗어나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참나의 발견과 더불어 점점 자유로운 삶이겠습니다.

 

새삼 자기를 아는 겸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평생 회개의 수행이 필수입니다.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모두 회개를 통한 참나의 수행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옛 현자의 말씀입니다.

 

“책은 얼마나 읽었는가보다, 어떻게 읽었는지가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 독서는 씹기만 할 뿐 삼키지 못함과 같다.”<다산>

“마음은 생각한다. 생각하면 얻지만, 생각이 없으면 얻지 못한다.”<대학>

 

‘생각한다’함은 자기를 성찰하는 회개와 직결됩니다.

시류에 휩쓸려 ‘생각없이’, ‘영혼없이’ 자기를 잃고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생각없이 말할 수 있지만 생각없이 글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얼마전 각별한 두편의 기사를 잊지 못합니다.

하나는 장욱진(1918-1990) 서양화가이며, 또 하나는 배우계 두 거장인 80대 노장의 영원한 현역 박근형과

손숙에 관한 기사입니다.

어느 분야든 치열하게 사는 이들은 말그대로 무지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구도자이자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속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양주로 가세요.

어린 아이 그림 같지만, 세상을 관조하게 만드는 화가 장욱진, 그의 미술관에 가보세요.

피카소는 “라파엘처럼 그리는 데는 4년이면 족했지만,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조각가 최종태의 장욱진에 대한 평도 참 예리하고 적확합니다. 

 

“칼날같은 예리함과 조금도 용서될 수 없는 준엄함이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그릴 수 있다 할만큼

평이한 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최소한의 획으로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작가다.

그러니 단순해 보이는 그의 획은 오랜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연극가 손숙이 같은 80대 거장의 노배우 박근형에 대한 평입니다. 

“작품을 너무 열심히 하더라. 무대에서 박 선생님 눈빛만 봐도 설레고 짠하다. 그런 배우 만나기 쉽지 않다.” 

 

박근형 자신의 고백입니다. 

“세월이 얼마 안남았다. 그래서 저는 마음이 너무 급하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매순간 치열하게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연습에 들어가면 대본을 2-3백번 읽는다.”

 

영원한 현역의 두 노배우는 모두 요즘 연기를 하는게 가장 행복하고 유일한 삶의 낙이라고 고백합니다.

박근형은 “젊었을 때는 욕망과 욕구를 위해 달리니까 정신 없던 시절인데, 나이 먹어서는 남들이

나를 불러주는 것 잊지 않고 나를 배려해주는 것을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말했고, 손숙 여기 공감하며, 

“그러려면 잘 늙고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은 진짜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살다가 깨끗하게 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전합니다.

 

참된 회개와 자기를 아는 겸손은 함께 갑니다. 한평생 치열한 삶을 살았던 대가들의 공통점도

자기를 아는 겸손일 것입니다.

참된 구도와 수행의 열매가 무지에서 자유로워진 겸손입니다.

오늘은 성녀 아가카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산 햇수와 관계없이 참삶의 좌표가 되고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는 성인들입니다.

 

교회전승에 따르면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할 결심을 하고 스스로 정결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선(善)’ 또는 ‘좋음’을 뜻하는 아가토스에서 유래한 이름만큼이나 착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미모에 반한 그 지방 총독 퀸티아누스가 그녀에게 청혼합니다.

 

당시는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일 무렵입니다.

성녀 아가타는 끝까지 거절하자 총독은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했으나 성녀는 어떤 고통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은 순교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녀 아가타를 공경하는 신심은 일찍부터 시칠리아 섬 전역으로 퍼졌고 성녀는 시칠리아 섬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성녀 축일에는 빵을 축복하는 관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성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만드는 사람,

유리제조공, 광부, 알프스 동반 안내자, 유방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 간호사들의 수호성인도 되고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얼마나 후대에 사랑을 받으며 회개의 표징이 됐던 사랑스런 성녀 아가타인지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여전히 아마도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마음의 병이 바로 무지일 것입니다.

불가의 탐진치(貪瞋癡;욕심,성냄,어리석음), 삼독(三毒)도 무지의 병에서 기인합니다.

바로 무지의 병, 치유에는 하느님의 은총인 회개뿐이 약이 없습니다.

 

예수님 고향 나자렛 사람들 역시 무지하기론 예외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지만 곧 편견과 섭인견, 고정관념의 무지에 사로잡힙니다.

질투심과 더불어 예수님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바로 인간 무지의 보편적 현상을 대하는 듯 합니다. 예수님의 결론 말씀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바로 이런 보편적 깨달음이 현실적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고, 이들의 믿지 않음에 놀라셨다 합니다.

처음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던 고향사람들과 이들의 불신에 놀라는 예수님이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좌절하기 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현실인 무지의 심각성을 깨닫고 회개와 겸손의 계기로 삼아

더욱 분발하셨을 것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와 더불어 주님께서 주시는 훈육입니다.

이 모든 유혹의 시련을 훈육의 계기, 배움의 계기로 삼아 회개와 겸손의 훈련에 충실함으로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좋은 덕목의 선택-훈련-습관의 도식입니다. 히브리서의 충고가 참으로 적절합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만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니 맥풀린 손과 힘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 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방은 끊임없는 회개와 겸손의 훈련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평생 전사답게 영원한 영적 훈련병으로, 참으로 거룩한 평화의 전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착한 스승이신 주 예수님,

 당신은 내가 박해자의 고통을 이기게 히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주님, 내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성모의 노래 후렴). 아멘.


2/6(목)[(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영적인 힘은 기도에서 시작합니다. 사제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선포한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것을 충실하게 실행한다면 사제가 있는 자리는 꽃자리가 될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자본 만능주의, 개인 만능주의라는 마귀를 쫓아내야 합니다. 모두가 그곳을 향해서 가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난의 영성을 살아야 합니다. 2000년 교회를 이끌어 온 것은 화려한 성전과 법이 아닙니다. 가난을 실천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영성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조재형 신부)

 

2. “그대는 길을 떠날 때 전대도 지니지 말고, 여벌 옷을 생각하며 걷지도 마십시오.

배를 채울 양식이 부족할까 염려하며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일용할 양식도 들어올 것입니다.

어떤 새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하느님 섭리로 먹이를 얻으리라 근심없이 희망하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합니까?”(프루텐티우스 교부)(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마르 6,8)

 

그렇습니다,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 할 것을 이미 가진 까닭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닌 까닭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무능함과 허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성녀 아가타를 공경하는 신심은 일찍부터 시칠리아 섬 전역으로 퍼졌고 성녀는 시칠리아 섬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성녀 축일에는 빵을 축복하는 관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성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만드는 사람,

유리제조공, 광부, 알프스 동반 안내자, 유방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 간호사들의 수호성인도 되고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얼마나 후대에 사랑을 받으며 회개의 표징이 됐던 사랑스런 성녀 아가타인지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이수철 신부)

 

2/6(목)[(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의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마르 6,8)

 

그렇습니다,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 할 것을 이미 가진 까닭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닌 까닭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무능함과 허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 2025년 2월6일(목) 6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