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2월 9일 주일[(녹) 연중 제5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대영광송>
본기도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1-2ㄱ.3-8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 있었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 ◎
○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니,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이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
○ 주님, 세상 임금들이 당신 말씀 들을 때, 저들이 모두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주님 영광 크시오니, 주님의 길을 노래하게 하소서. ◎
○ 주님은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시나이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리라! 주님, 당신 자애는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손수 빚으신 것들 저버리지 마소서.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5,1-11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3-8.11
형제 여러분,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희망이신 주님, 교회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으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저희도 기억하며, 많은 이를 주님께 이끌게 하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화해의 주님, 세계 지도자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어, 국민의 생명과 사회의 안정을 앞세우며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주님께만 의지하는 가난한 이들을 굽어살피시어 마음의 평화를 주시고, 이웃인 저희는 필요한 양식을 기꺼이 나누게 하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를 주님의 은총으로 풍요롭게 하시어, 다양한 사도직 안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예물기도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가엾이 여기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어,
저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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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5주일
중학생 때입니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학생은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질문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질문하는 경우와 아는데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하는 질문입니다. 모르는 친구들은 수업에 큰 관심이 없어서 질문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저도 질문하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면서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도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문제를 내시고, 제게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걸 아시기 때문에 맡기셨습니다. 고등학생 때입니다. 친구들과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출발시간이 되었는데 3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남아서 기차표를 주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좋아하던 여학생과 같이 가고 싶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제 친구가 함께했고, 저는 남아서 늦게 온 친구들에게 표를 주고 같이 왔습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그 여학생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고,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늦게 오는 친구를 위해서 남아 있었던 것이 어쩌면 저의 사제 성소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서에 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말주변이 없음에도 하느님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양치는 목동도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도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리도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였던 바오로도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직업, 나이, 성격, 재능이 다르지만 모두 하느님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부르심을 받고 예언자가 된 사람들,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였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들은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서에 보면 거짓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 뜻보다는 자기의 뜻을 내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다가오면 도망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거짓 예언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릇의 겉은 닦지만 안은 닦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아무 일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에게 짐을 맡기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등불을 켜놓고 그것을 됫박으로 가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도 하느님께 가지 않으면서 남도 하느님께 가지 못하게 막는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쫓아낸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보낸 아들까지도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신앙은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로또 복권 당첨이 아닙니다. 신앙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 요술 지팡이가 아닙니다. 신앙은 나의 짐을 남에게 떠넘기는 위선과 가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방법으로 부르심을 받았든지, 최선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게 되었든지, 삶의 지뢰밭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유혹의 달콤함은 가리지 않고 모든 신앙인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사야 예언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겸손’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과 교만함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았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5주일: 다해
복음: 루카 5,1-11
우리 내면을 주님으로 가득 채울 때!
물때가 좋을 때면 근처 수로로 밤낚시를 나갑니다.
낮에는 잔챙이들이 활개를 치지만, 희한하게도 밤이 되면 씨알 좋은 녀석들이 슬슬 활동을 시작하지요.
밤바다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참 좋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풍어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허사일 때도 수두룩합니다.
미끼를 싱싱한 것으로 갈아도 끼워보고, 수심도 바꿔보고, 자리도 옮겨보고, 움직임도 줘보고,
별의별 짓을 다해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인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의 심정이 백이십퍼센트 이해가 갑니다.
시몬과 다른 제자들이 딱 그랬습니다.
큰 기대를 안고 밤새도록 애썼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거듭 반복된 헛그물질에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누군가가 괜히 말 걸었다가는 큰일 날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건네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그 말씀을 들은 시몬은 속으로 웃었을 것입니다.
고기잡이의 문외한인 예수님께서 고기잡이 전문가인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신 것이
참으로 고깝게 들렸을 것입니다.
‘포크레인 앞에 삽질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의 내면의 표현이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루카 5,5)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참 착하고 순종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전문가적 판단에서 도저히 안 될 것이라는 것,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
결과는? 인생 한방이라고, 초대박이 터졌습니다.
그야말로 긴 연장전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역전 만루 홈런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그물질에 오랜 실패가 만회되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비참한 내 인생,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외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십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열어주십니다.
‘철저한 실패로구나. 쫄딱 망했구나.’라며 좌절하고 울부짖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저 함께 현존하십니다. 딱 한 말씀으로 그간의 어려웠던 국면을 180도 전환시켜 주십니다.
다 끝난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조금 기다려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짓말처럼, 기적처럼, 주님께서 다가오실 것입니다.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희망해야겠습니다.
전문직 어부였던 시몬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씀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부도 아닌 예수님, 고기잡이에는 전혀 문외한인 예수님께서 고기잡이 분야만큼은 프로인 시몬에게
전혀 설득력 없는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보라고 권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기존의 사고방식, 개인적인 야욕,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라는 말씀이겠지요.
과도한 욕심, 사사로운 감정에서도 벗어나라는 권고이겠지요.
예수님이란 너무나 큰 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크게 버려야 가능한 일이니만큼
모든 것을 다 바꾸란 말씀이겠지요.
그릇은 무엇이 담기냐에 따라 그 그릇의 품위까지 달라집니다.
아무리 멋진 그릇이라 할지라도 애완견 사료를 담아놓으면 개밥그릇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투박한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보물이 담기면 보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질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로 여겨질지라도,
우리 내면을 예수님으로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값진 존재가 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5주일: 다해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앎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수락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변화, 환경이나 조건의 변화, 공동체 혹은 가정의 변화, 타인들의 변화와 자기 자신의 변화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는 ‘진정한 변화’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진정한 변화’란 단지 자신의 악습이나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 자기 교정이나 자기 개선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 질적인 변화, 곧 삶의 패러다임, 사고의 틀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가치관 등 인격의 변화를 말합니다.
흔히 우리는 사람들이 회개하면 변화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변화의 힘은 회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만남에서 오며, 회개는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체험, 곧 은총과 사랑의 체험의 수락이 변화와 회개를 불러오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가 그러하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가 그러하고, 복음에서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을 체험했음을 전해줍니다.
곧 하느님과의 만남 체험이 회개를 불러왔음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하느님을 체험한 후에 고백합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이사 6,5)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예수님과의 체험을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코린 15,9)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백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이처럼 하느님 체험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이를 고백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곧 체험이 회개와 변화로 이끌어줍니다.
그러니 회개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체험을 통해, 그 은총을 수락할 때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코린 15,10)
그것은 자신의 앎을 버리고, 말씀을 수용할 때 생겨나는 은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프로였던 베드로는 먼저 자신의 앎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자신의 앎을 버리고 말씀을 수용하는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 체험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앎을 버리는 바로 이 자리에서 베드로는 변화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죽음의 수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이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이 다 끝났는데도 굳이 다시 그물을 치는 일, 곧 고기가 없다는 것을 이미 밤새도록 확인된 그곳에 다시 그물을 치는 일은, 자신의 앎, 그것도 이미 경험을 통하여 얻은 앎을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끌어올린 그물에서 많은 고기와 함께 자신의 많은 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단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자신의 앎을 버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물을 치기 전에는 어떤 한 분 ‘선생님’을 만났을 뿐이었지만, 그물을 치고 난 다음에는 오직 한 분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 체험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진정한 인격적인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앎을 버릴 때 ‘진정한 변화’는 찾아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되는 대상’이 될 때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되는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변화’는 자기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회개시키시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변화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요, 회개 역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에 대한 수락에 의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코린 3,18)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이 선물, 이 은총을 수락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변화는 하느님과 우리의 합작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무능하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롭게 동의하지 않을 때에는 무능하시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아니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앎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수락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면 그 말씀의 성취를 통하여 우리가 변화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주님!
제가 민낯으로 당신을 뵙고, 진정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생각과 제 경험을 내려놓고,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제 앎과 제 옳음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제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고,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에 의해 변화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8.연중 제4주간 토요일 히브13,15-17.20-21 마르6,30-34
착한 목자 영성
“삶의 균형과 조화, 분별의 지혜와 사랑”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오늘 화답송 후렴은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명이기도 합니다.
오늘 옛 현자들의 말씀도 착한 목자 영성 공부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공부해야합니다.
무지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지혜롭기 위한 공부는 전방위적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공자는 호학(好學)이라 하여 배움을 좋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재물을 탐내기보다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재물보다 만족을 준다.”<다산>
“군자는 도를 추구하지 음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그 안에 있을 수 있지만, 배우면 녹봉이 그 안에 있다.”<논어>
궁극엔 도(道)를, 삶의 진리를 추구하는 공부이겠습니다.
교황님의 공개된 2025년 ‘세계 선교의 날 메시지’ 한 대목도 신선했습니다.
“기도는 우리 희망의 불꽃이 계속 살아 있게 한다”
(Prayer keeps our ‘spark of hope’ alive)
교황님이 요즘 유난히 강조하는 덕목이 ‘희망’입니다.
'희망의 순례자들'인 우리는 희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늘 불타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순서로 하면 “기도하라!”에 이어 “공부하라!”요 이 둘의 균형과 조화가 중요합니다.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님은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입니다.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바 이런 착한 목자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선교차 파견되었던 제자들의 귀환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성공적 선교여행에 사도들이 흥분된 분위기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사도’로 파견되었다가 다시 ‘삶의 중심’인 예수님께 ‘제자’로 돌아온 이들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바로 이 순간 착한목자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와 사랑이, 삶의 균형 감각이 빛을 발합니다.
제자들의 흥분과 피곤해 있음을 직시한 예수님은 ‘휴식과 성찰, 기도’를 위해 쉴것을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오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 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필히 마련해야 할 바 외딴곳의 쉼터에서 주님 안에 머무는 피정입니다.
삶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위해 일과 쉼의 균형과 조화, 리듬은 필수입니다.
균형과 조화, 리듬이 깨졌을 때 온갖 영육의 질병입니다.
여러분의 외딴곳 쉼터는 어디입니까?
시간과 장소는 있습니까?
정말 경계할바 ‘바쁨과 인기’요, ‘바쁘다, 인기있다’는 것 바람직하지 않으며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활동주의는 현대판 이단이며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품’이라 설파한
20세기 최고의 영성가 토마스 머튼입니다.
일과 휴식의 균형과 조회가, 분별의 지혜와 사랑이 참 중요합니다.
이래야 온갖 중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분별의 지혜로 ‘죄책감 없이 아니오(No without feelins guilty)’라고 말할 필요가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바로 자기의 한계를 아는 분별과 절제가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참으로 집요한 군중들입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찾는 분은 모두의 길이자 생명이요
진리이자 ‘삶의 중심’인 착한목자 예수님입니다.
예나 이제나 주님을 찾는 인간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동안 군중들은 호숫가를 걸어
더 일찍 외딴곳에 도착한 것이니 이들의 주님을 찾는 필사적 갈망과 열정의 농도를 능히 짐작할 만합니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리시어 목자 없는 양들 같은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에
외딴곳에서의 쉼을 포기하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와 사랑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가엾이, 측은히,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사랑은 그대로 착한목자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합니다.
착한목자 하느님을 그대로 닮은 예수님입니다.
우선 해소되어야 할 영적 목마름입니다.
육신의 음식에 앞선 영혼의 양식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어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니, 말씀전례에 이은 성찬전례인 미사구조가
은연중 드러납니다.
이런 우선순위에 따른 영적구조는 수도원의 일과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미사후 아침식사에 낮기도후 점심식사, 저녁기도후 저녁식사입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은 오늘 시공을 초월하여 제1독서 히브리서를 통해 어제에 이어 오늘의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첫째,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치십시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이래서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찬양과 감사의 시편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둘째,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기도와 예배(prayer and worship)’에 이어 ‘선행과 나눔(good works and sharing)',
사랑과 섬김(love and service)’이 참 좋은 신자 삶의 요약이자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셋째,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순종하십시오.
영혼을 돌보고 하느님께 셈바칠 지도자들이 기쁘게 섬김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자발적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재적인 지도자들에게는 분명히 해당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권위, 질서, 규율에 대한 존중은 신약전체의 가르침입니다.
이 순종은 기꺼이, 즐겁게 해야하며 ‘한숨쉬며’ 해서는 안됩니다.
순종의 목적은 모두가 공통의 목표에 헌신하여 함께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교황님도 매 강론 끝에는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 청하십니다.
히브리서 저자 역시 똑같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우리는 모든면에서 늘 올바로 처신하려 하기에 바른 양심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흡사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히브리서 마지막 기도와 축복이 참 아름답습니다.
신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기도중 하나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그대로 이뤄지는 참 좋은 선물인 축복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히브13,20-21).
2/8(토) [(녹)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철저한 실패로구나. 쫄딱 망했구나.’라며 좌절하고 울부짖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저 함께 현존하십니다. 딱 한 말씀으로 그간의 어려웠던 국면을 180도 전환시켜 주십니다.
다 끝난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조금 기다려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짓말처럼, 기적처럼, 주님께서 다가오실 것입니다.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희망해야겠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기존의 사고방식, 개인적인 야욕,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라는 말씀이겠지요.
과도한 욕심, 사사로운 감정에서도 벗어나라는 권고이겠지요.
예수님이란 너무나 큰 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크게 버려야 가능한 일이니만큼
모든 것을 다 바꾸란 말씀이겠지요.(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주님!
제가 민낯으로 당신을 뵙고, 진정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생각과 제 경험을 내려놓고,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제 앎과 제 옳음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제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고,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에 의해 변화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20세기 최고의 영성가 토마스 머튼입니다.
일과 휴식의 균형과 조회가, 분별의 지혜와 사랑이 참 중요합니다.
이래야 온갖 중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분별의 지혜로 ‘죄책감 없이 아니오(No without feelins guilty)’라고 말할 필요가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바로 자기의 한계를 아는 분별과 절제가 겸손이자 지혜입니다.(이수철 신부)
2/9(일) [(녹) 연중 제5주일]. 오늘의 기도
복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주님!
제가 민낯으로 당신을 뵙고, 진정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생각과 제 경험을 내려놓고,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제 앎과 제 옳음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제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고,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에 의해 변화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9일(일) 5시4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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