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2월 11일 화요일[(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교회는 해마다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이는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하였다.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하셨다. 이날 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기도한다. 또한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의료인도 함께 기억하며 그들이 병자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다지도록 기도한다.
입당송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본기도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20―2,4ㄱ
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4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 우러러 당신 손가락으로 빚으신 하늘하며,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나이다. ◎
○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하며,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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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5주간 화요일
한국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았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이 제게 ‘마일리지’가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저는 마일리지를 활용할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신부님들은 마일리지를 적용해서 항공권을 발권해 주었습니다. 저의 마일리지로 한국 가는 왕복 항공권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마일리지를 이용해서 항공권을 마련하면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지.’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유비는 제갈공명이라는 구슬을 잘 꿰어서 삼국시대를 열었습니다.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과학과 예술이라는 구슬을 잘 꿰어서 잠들었던 유럽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르네상스는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디자인이라는 구슬을 잘 꿰어서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작년에 저는 창고 공사에 함께한 형제님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의 열정과 그분들의 헌신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들과 함께 27기 사목회를 구성할 수 있었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본당의 많은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 속담은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나 믿음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깊은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이는 성경 말씀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행위라는 실로 꿰어지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잠재된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천을 통해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세상 속에서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부른다고 모두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보물은 믿음을 실천하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었지만, 사제와 레위는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여관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여관 주인에게 잘 돌보아 달라고 청하면서 비용이 더 들면 나중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믿음을 어떻게 꿸 수 있을까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기도는 구슬을 꿸 실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소통하며 우리의 믿음을 더욱 단단히 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기도하는 작은 실천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구슬을 꿸 때 방향을 잡아주는 기준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우리가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의 말씀처럼, "너희가 여기 있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을 실천으로 꿰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사랑과 봉사입니다. 작은 행동이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나 가정, 직장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은 우리의 믿음을 실로 꿰는 작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들것으로 데리고 왔던 이웃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이웃은 지붕을 뚫고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을 어여삐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믿음과 실천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사랑을 완전히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구슬을 하나도 빠짐없이 꿰어 보물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믿음의 구슬이 있습니다. 이제 이 구슬을 행위라는 실로 꿰어 세상 속에서 빛나는 보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씩 실천하며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 7,1-13
우리 모두 백 퍼센트 예비 병자들이요 병자 후보자들입니다!
오늘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동시에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언젠가 파리 기차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루르드로 간 적이 있습니다.
열차에 오르니 한량이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배정받은 칸으로 들어가니 2층 침대에
4명이 함께 누워 자게 되어 있었습니다.
좁디좁은 공간 안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자야된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갑갑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잠들면 탱크가 울고 갈 정도로 심하게 코를 고니, 민폐가 될까봐,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녘에 루르드로 들어갔습니다.
막 안개가 걷히고 청량한 아침 햇살이 눈부신 루르드 성지로 들어서는 순간,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이 어찌 그리 맑아지는지, 그리고 성지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성모님의 따뜻하고 친밀한 환대가
온몸으로 느껴져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미 루르드에는 저를 포함한 수많은 환자들이 도착해 있었는데, 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말끔히 치유되도록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일으켜세워주신 성모님을 생각하니,
그저 감사와 찬미를 드릴 뿐입니다.
오늘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도 여기저기 몸이 성치 않은 분이시니,
병자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십니다.
메시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립니다.
“병자들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의 최고 증인은 그분의 외아드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만나신 이야기를 수없이 들려주지 않습니까?”
“팬데믹 시대,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집중 치료실에서 자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세상과 단절된 채로 외롭게 맞이하고 있는 환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보건 의료 종사자 여러분, 여러분이 병자들 곁에서 사랑과 힘을 다하여 실천하는 봉사는
직업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사명이 됩니다.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지는 여러분의 손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하신 손길의 표징이 됩니다.”
“가톨릭 보건 의료 기관은 지속적으로 보호받고 존속되어야 하는 값진 보화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 교회가 병자들과 가난한 이들 곁에 있음을, 병자들이 무시당하는 상황에서도
교회가 늘 그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병자 방문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제자에게 하시는 초대입니다.
얼마나 많은 병자와 연로한 이들이 집에서 머물며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치유자이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모든 병자와 그 가정을 맡겨드립니다.
그들이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의미와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기를 빕니다.”
나는 아직 젊고 쌩쌩하니 병과는 아무런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세월은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느새 우리 역시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며 고생할 날이 순식간에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병자 후보자가 100퍼센트 확실합니다.
주변의 병자들이 오늘 겪고 있는 사무친 고통과 외로움을 나 몰라라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병자들은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할 각별한 존재, 수난당하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복음의 정신’을 놓칠 때>
예로부터 어디서나 ‘먹는 문제’가 항상 제일 예민합니다.
싸움 중에서도 ‘밥그릇’ 싸움이 가장 치열합니다.
공동체에서도 가장 말 많고 힘든 소임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방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안식일에 제자들이 벼 이삭을 따먹었다고 문제 삼는가 하면,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문제 삼고,
단식하지 않는다고 문제 삼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루살렘에서 두 번째(첫 번째는 3,22절에 나옴)로 온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먹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곧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고 시비를 겁니다.
이는 단지 위생이나 청결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위 ‘정결법’에 대한 논쟁입니다.
그런데 ‘손 씻는 정결법’은 율법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시비의 준거로 내세운 것은 '조상들의 전통'(구전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느님 신앙의 핵심과는 상관없는 일로 당시의 사회를 이끌어가던 전통 관습 방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를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호도하여 종교적 권위를 덧붙였습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하느님의 계명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관습을 앞세우는 어긋난 행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레위기> 11장의 ‘정결법’에 의거하여 음식물만 깨끗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이 깨끗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잘못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음식을 먹는 사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몸의 깨끗함이 아니라 ‘마음의 깨끗함’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잘못 적용하여 손을 씻는 예법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마르 7,7-9)
오늘날 우리도 ‘사람의 규정’을 지키려다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사회적 관습이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의 규정’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막상 ‘복음의 정신’을 놓칠 때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잘못된 관습이나 전통들, 그리고 잘못 배운 교리나 가르침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 규범’이나 ‘자기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복음 정신’과 ‘하느님의 뜻’을 묻고 그분께 의탁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마르 7,8)
주님!
몸에 밴 잘못된 관습과 전통에 매여 당신의 계명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틀에 맞춘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지키려다 당신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지키기에 앞서,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묻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제가 원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하늘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10.월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480-543) 축일
호세2,16.21-22 루가10,38-42
경청의 환대
“경청이 우선이다”
오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성 베네딕도와 그의 쌍둥이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 스티카와의 유명한 전설적 일화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 제33장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일화라 간략히 그 내용을 나눕니다.
베네딕도 수도규칙 맨 처음에 나오는 “들어라, 오 아들아(Obsculta,o fili)”라는 말마디가 참 인상적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라는 말마디도, 바로 오늘 복음의 주인공 마리아,
오늘 기념하는 스콜라스티카의 경우에 적절합니다.
규칙서에서 들음의 경청은 수도승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태도로 부각됩니다.
두분의 전설적 만남의 일화를 통해서 확인되는 사실은 두분 다 경청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남매는 매년 한차례 만나 영적담화를 나누었고 <베네딕도 전기> 33장은 성녀가 세상을 떠나던
543년 마지막 만남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이인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오빠를 방문하던 날,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수도원 대문 밖에서 내려와
멀지 않은 곳에서 누이를 기다리다 만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온종일 성스런 대화를 나눕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두분에게서 ‘경청의 환대’를 배웁니다.
하루는 금방 지나고 아쉬움에 스콜라스티카는 간청합니다.
“오빠께 부탁드립니다.
이 밤에 저에게서 떠나지 마시고 아침까지 천상 삶의 기쁨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눕시다.”
이로부터 3일후 세상을 떠났으니 죽음을 예견한 마지막 만남이라 각별한 청이었던 듯 싶습니다.
“누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나는 수도원 밖에서 밤을 지새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오빠의 단호한 거절에 누이 스콜라스티카 수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채
눈물을 강물처럼 책상 위에 흘리며 기도했고, 눈물의 기도는 청명한 하늘에서 비를 끌어들였고,
이어 천둥 번개가 치고 억수같이 퍼붓는 비 때문에 오빠는 수도원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영적생활에 대한 성스러운 대화를 마음껏 나누면서 온밤을 지새웠습니다.
새삼 하느님 또한 우리의 기도를 잘 들으시는 경청의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어 그레고리오 교황의 해명입니다.
“여인의 마음에 감동하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경우에 오빠를 더 오래 보고 싶어한 여인의 사랑이 그분보다 더 강했다는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한 스콜라스티카가 더 능력이 있었다.”
아침성무일도시 아가서 독서 역시 사랑의 위력을 고백합니다.
"많은 물도 사랑을 끄지 못하고, 강물도 이를 덮지 못하는도다.
사람이 온 재산을 다 주고 사랑을 사려고 해도 멸시를 받으리라."(아가8,7)
말 그대로 사랑의 기적입니다.
베네딕도 전기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들의 공통적 특징도 사랑의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경청, 사랑의 환대, 사랑의 기도, 사랑의 기적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일화라 축일 때 마다 펼쳐보는 베네딕도 전기 33장입니다.
복음에 앞서 오늘날은 생략하지만 <부속가>의 내용도 참 아름다워 끝부분만 소개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신부여, 면류관을 받으라.
백합중에서 살며 가득히 찬 행복 속 맘껏 취하리.
강가에서 나아와 천당 궁궐로 가는 동녀중의 비둘기.
아름다운 향기로 우리 인도하여서 영생 얻게 하소서.”
시간되면 아름답고 풍부한 부속가 전부를 노래해볼까 합니다.
그러니 두 남매의 마지막 만남은 ‘하느님의 각별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근거한 참 아름다운 영성체후 기도문 후반부입니다.
“성녀가 기도한대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신 주님께서 또한 성녀의 전달에 의지하여
저희의 메마른 마음을 천상 성총의 이슬로 적셔주소서.”
바로 두 남매 성인들처럼 경청의 환대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주인공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를 관상과 활동의 관계로 설명도 하지만 이보다는 ‘경청의 환대’로 봄이 적절합니다.
관상의 우월성보다는 경청이 우선함을 강조합니다.
관상과 활동, 모두 사랑의 환대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마르타가 자기식대로 음식 장만으로 주님께 환대의 사랑을 표현한 반면,
마리아는 주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 말씀의 경청을 통해 환대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관상과 활동의 관계는 우열이 아닌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이어 주님은 마리아의 환대가 옳았음을 인정하며 마르타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있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경청의 환대를, 활동에 앞서 관상을 선택할 것을 강조합니다.
경청의 환대를 선택하여 훈련을 통한 습관화도 관상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호세아서의 주님 말씀도 그대로 경청과 환대의 성녀인 마리아와 스콜라스티카는 물론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리라.”
여기서 아내가 상징하는 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런 주님을 환대하는 미사시간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을 닮아 우리 모두 ‘경청과 환대,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아멘.
2/11(화) [(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하루,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씩 실천하며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세월은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느새 우리 역시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며 고생할 날이 순식간에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병자 후보자가 100퍼센트 확실합니다.
주변의 병자들이 오늘 겪고 있는 사무친 고통과 외로움을 나 몰라라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병자들은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할 각별한 존재, 수난당하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마르 7,8)
주님!
몸에 밴 잘못된 관습과 전통에 매여 당신의 계명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틀에 맞춘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지키려다 당신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지키기에 앞서,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묻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제가 원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하늘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베네딕도 오빠의 단호한 거절에 누이 스콜라스티카 수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채
눈물을 강물처럼 책상 위에 흘리며 기도했고, 눈물의 기도는 청명한 하늘에서 비를 끌어들였고,
이어 천둥 번개가 치고 억수같이 퍼붓는 비 때문에 오빠는 수도원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영적생활에 대한 성스러운 대화를 마음껏 나누면서 온밤을 지새웠습니다.
새삼 하느님 또한 우리의 기도를 잘 들으시는 경청의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어 그레고리오 교황의 해명입니다.
“여인의 마음에 감동하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경우에 오빠를 더 오래 보고 싶어한 여인의 사랑이 그분보다 더 강했다는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한 스콜라스티카가 더 능력이 있었다.”
(이수철 신부)
2/11(화) [(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마르 7,8)
주님!
몸에 밴 잘못된 관습과 전통에 매여 당신의 계명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틀에 맞춘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지키려다 당신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지키기에 앞서,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묻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제가 원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하늘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11일(화) 4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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