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2월 12일 수요일[(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본기도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2,4ㄴ-9.15-17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시옵니다. 존엄과 영화를 입으시고, 광채를 겉옷처럼 두르셨나이다. ◎
○ 이 모든 것들이 당신께 바라나이다. 제때에 먹이를 달라 청하나이다. 당신이 주시면 그들은 모아들이고, 당신 손을 펼치시면 복이 넘치나이다. ◎
○ 당신이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당신이 숨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온 누리의 얼굴이 새로워지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
![](https://blog.kakaocdn.net/dn/GdP9J/btsMeUMSvEv/72YVUEiRNN18uHHEp3K4v0/img.png)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영화 ‘하얼빈’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1주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안중근을 독립군으로 이야기하면서 안중근을 고뇌에 찬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라를 빼앗기고, 먼 타국에서 독립운동하며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안중근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의 이야기는 일본군 포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안중근은 전투 중에 사로잡은 일본군 포로를 만국의 공통 법에 따라서 풀어주자고 하였습니다. 동료들은 그렇게 하면 포로들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보복할 것이라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안중근은 일본군 포로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일본군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독립군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조직을 배반했던 동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군에게 잡혀갔던 동료는 모진 고문을 받고 조직을 배반한 변절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배반으로 독립군의 작전은 노출되었고,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도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조직은 배반자를 처단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중근은 변절자에게 기회를 주자고 하였습니다. 변절자는 일본군을 죽이고 조직에 합류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자들에게도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야! 너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3번 똑같이 질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님!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충분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 이는 용서에는 제한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온 아들을 품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순간에 자비를 청했던 십자가의 죄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였고, 죄인을 용서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낙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낙원은 무엇일까요?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동산이 낙원일 수 있습니다. 4계절이 뚜렷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고, 정이 넘치는 마을이 낙원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 주셨던 인간의 ‘마음’이 낙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다면 망국의 한을 품고 먼 타국에서 풍찬노숙할지라도 낙원에 있는 겁니다. 으리으리한 넓은 집에 살면서 맛있는 걸 먹고, 비단옷을 입었을지라도 분노와 욕망으로 더러워진 마음이 있다면 그곳은 이미 ‘실락원(失樂園)’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것들은 내 안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알면 우리는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악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심, 시기, 질투, 탐욕, 인색, 게으름은 모두 내 안에서 나옵니다.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인간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때문입니다. ‘시기, 질투, 교만, 인색, 탐욕, 욕망, 미움, 원망’과 같은 것들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무질서하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밖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 내면의 갈등과 우리들 내면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의 뿌리를 자를 때 비로소 회복되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7,14-23
이웃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한 영성가께서 지극히 간단하지만 심오한 한 마디를 건네주셨는데, 한 문장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제 마음에 꽂혀 오래도록 묵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웃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이웃, 특히 가까운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때로 얼마나 꼬였는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편향적인 시선인지 깊이 반성합니다.
동시에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무 지나칠 정도로 혹독하거나 엄격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중심을 잡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힘든 부분이 나 자신과 이웃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선인 것 같습니다.
때로 나 자신이란 존재 제가 봐도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
제 속에 뭐가 그리 내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때로 태평양보다 더 넓은 마음의 내가 있는가 하면, 때로 송곳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속 좁은
내가 있습니다.
때로 시속 500킬로의 테제베같이 성급한 성격의 내가 있는가 하면, 때로 나무늘보보다 더 느긋한 내가 있습니다.
비단결보다 더 고운 너그러운 천사 같은 내가 있는가 하면, 눈빛이며 얼굴이 무섭고 기괴한 사탄 같은
내가 있습니다.
오늘 비록 내가 천사로 산다 할지라도, 내일 사탄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우리네 삶입니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나입니다.
오늘도 제 안에 들어있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곰곰이 헤아려 볼 일입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왕이면 선한 것들, 가치있는 것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들로
가득 채워나가야겠습니다.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부패할 것들, 역한 냄새 풀풀 풍겨, 나 자신을 더럽히는 것들,
주변 사람들 괴롭힐 것들은 자꾸 비워내야겠습니다.
그것은 오늘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신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23)
정녕 인간을 오염시키고 부패시키고 타락시켜 추하게 만드는 것은 외적,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옷 좀 떨어졌다고 그 사람이 더러운 사람이겠습니까?
몸에 흙탕물이 좀 튀었다고 그 사람이 지저분한 사람이겠습니까?
샤워 한 며칠 안 한 사람을 두고 타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인간을 오염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은 인간의 내면, 인간의 영혼과 관련된 것, 다시 말해서 죄입니다.
그 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 예수님께서 잘 나열하신 것입니다.
당시 오류와 편협된 사고에 빠진 바리사이들은 깨끗함과 더러움의 기준을 사물의 외적인 상태에 두었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떠하든, 그 사람 영혼의 상태가 어떠하든, 그 사람이 맺고 있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의 몸 상태가 청결한가 아닌가가 관건이었습니다.
율법의 세칙에 따라 그가 손을 씻어야 할 때 손을 씻었는지, 발을 씻어야 할 때 발을 씻었는지,
그것만 뚫어지게 쳐다 봤습니다.
정녕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우리 안의 어둠과 악>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서 시작된 ‘정결예법’에 대한 결론 장면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사람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폐기하고 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이제 오늘 복음에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마르 7,14-15)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것이 마치 밖에 있는 양, 막상 속은 은폐하면서 겉의 정결예법에만 치중하는 위선적인 정결예법을 부정하십니다.
이는 베드로가 요빠에서 이방인 코르넬리오를 방문했을 때의 환시 체험에서도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사도 10,15)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더럽습니다.”
(로마 14,14-16)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1-15장>이 명하는 ‘부정’과 ‘정결’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곧 영적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더럽히는 것들은 밖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정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존자 베다는 말합니다.
“마귀라 할지라도 우리의 나쁜 생각들에 힘을 보태어 부추길 수는 있지만, 그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이처럼 ‘정결’이란 가시적인 겉을 깨끗이 닦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과 인격 전체에 걸려 있기에, 우리의 ‘내면의 변혁’, 곧 전 인격적인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악이 차 있으면 악취가 되어 터져 나오고, 선이 차 있으면 선의 향기가 되어 뿜어져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시니, 박해하는 이에게도, 상처 입히는 이에게도, 오로지 선을 베푸십니다.
곧 예수님의 마음 안에는 온전한 사랑이 가득 찼기에, 항상 사랑이 흘러나오고, 우리들 마음에는 미움이나 화가 있기에, 그것들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러니 타인을 탓하거나 처지나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안의 어둠과 악을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저희 마음이 빛과 선으로 빛나는 ‘예수님 마음’으로 차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마르 7,15)
주님!
저를 부수소서.
고정관념의 틀을 깨소서.
겉만 아니라 속도 부수고, 당신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 생각을 바로 세우시고, 당신을 모욕하지 않게 하소서.
위선 부리지 않게 하시고, 선으로 제 안을 가득 채우소서.
당신 모상을 새롭게 하시고, 사랑의 향기 뿜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11.연중 제5주간 화요일 (세계병자의 날)
창세1,20-2,4ㄱ 마르7,1-13
존엄한 품위의 인간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시편8.2)
자식자랑은 팔불출에 속한다는데 제자들 자랑은 괜찮겠지요.
지난 토요일에는 3명의 옛 초등학교 6학년때 여제자들이 저를 찾아와 함께 했습니다.
각자 삶의 제자리에서 얼마나 반듯하고 똑똑하게 치열하게 산 제자들인지 감탄했습니다.
1977년때 6학년때 제자들이니 48년전 13살 때 아이들이 지금은 61세 환갑을 넘긴 제자들입니다.
당시 저는 29세 청년교사였습니다.
이중 한 제자는 5-6학년 2년동안 가르쳤던 제자로 유난히 고마워하며 시종일관 제 시중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보관중인 그 제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남긴글입니다.
쌍둥이 아들을 둔 제자로 다음주 결혼하는 친구처럼 지내는 큰 아들은 고등학교 영어교사입니다.
“일기장을 펴보니 나의 고민, 선생님의 격려 말씀뿐이었다.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께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선생님의 말씀 끝에 보람을 찾게 되다니. 이제 밑바닥 신세는 면하게 되었다.
기쁘다. 아버지같이 정답게 느껴지는 선생님께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까?”
이 제자가 이번 만남때 편지글도 줬습니다.
“까마득한 어린시절, 진정 우리 시대의 참 선생님이였던 이수철 선생님!
선생님의 사랑과 겸손, 온유함을 보면서 또 그 사랑을 받은 제자로서 어떻게 부족한 이에게
사랑을 주어야 할 지를 배웠습니다.
영원히 제 가슴 속에 제 인생의 참선생님으로서 기억됨을 감사합니다.”<2025.2.8. 제자 이정민 올림>
무엇보다 이 제자는 파워우먼으로 영원한 현역의 직장인이자 평생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모범적 개신교 신자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존엄한 품위의 사람’으로 잘 성장, 성숙한 참으로 자랑스런 제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선명한 39년전 신학대학원 1학년때 문세화 외방선교회 출신 교수 신부님의 강의 내용입니다.
“‘사람답게’ 너무 추상적입니다. 구체적으로 분명히 하여 ‘자녀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결같이 평생 날마다 어느 삶의 자리에서든 존엄한 품위의 인간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본분이자 행복이요 보람일 것입니다.
미사전례중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전 늘 감격하는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라는
사제의 권고 대목입니다.
하느님의 자녀, 바로 우리의 고귀하고 존엄한 신원을 말해 줍니다.
제가 수도생활하면서 많은 시를 썼는데 대표적 짧은 시는 작년 후반부 탄생했습니다.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짧은 고백시로 참 자주 나눴어도 늘 새로운 두 시를 다시 또 나눕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열정에 있습니다.
평생 죽을 때까지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영원한 현역, 영원한 청춘의 ‘파스카의 꽃’같은 봉헌의 삶,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제 교대시절 학장의 호가 ‘다운’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고백시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집무실 문을 열 때 마다 한 눈 가득, 가슴 가득 안겨 오는 불암산을 볼 때 마다 저절로 솟아나는 시입니다.
물론 당신이 지칭하는 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앞에서의 삶, 바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제1독서는 창세기 천지창조 마지막 부분으로 매 창조시 후렴처럼 반복되는 세 말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천지창조의 절정은 사람 창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1,27)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 ‘하느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삶’, 베네딕도회의 또 하나의 모토,
‘참으로 모든 일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유일한 답은 사랑뿐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이웃을, 자연을, 삶을, 모든 삶의 수행을 사랑할수록 주님을 닮아가면서
명실공히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그러니 사랑은 분별의 잣대이자, 율법의 완성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무지했습니다.
하느님의 근본 법인 사랑이 아니라 조상들의 전통에 바탕한 일반 관행을 분별의 잣대로 삼습니다.
참마음, 참사랑을 도외시한 본질직시가 아닌 우선순위를 잊은 본말전도의 삶입니다.
주님은 이사야 예언을 근거로 자신 불편한 심정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대로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는 죽비같은 말씀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면서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관행이나 율법은 참고사항일뿐 절대적 법은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 하나뿐입니다.
오늘 말씀 주석을 읽으면서 공감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열왕기 상권에서 솔로몬은 ‘하느님은 실로 지상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묻는다.
창세기가 주는 답은 ‘그렇다!(YES!)’이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이기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사신다(God dwells with us, within us).
솔로몬의 성전처럼 거룩한 장소들도, 바리사이들의 손씻는 것 같은 거룩한 수행들도
하느님의 법이 선포하고 보호하는 인간의 거룩한 존엄에 비하면 모두 빛을 잃는다(all pale in).”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엄한 품위의 사람들, 바로 우리의 자랑스런 신원입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한결같은, 끊임없는 사랑의 실천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시편8,5-6). 아멘.
2/12(수) [(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 주셨던 인간의 ‘마음’이 낙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다면 망국의 한을 품고 먼 타국에서 풍찬노숙할지라도 낙원에 있는 겁니다. 으리으리한 넓은 집에 살면서 맛있는 걸 먹고, 비단옷을 입었을지라도 분노와 욕망으로 더러워진 마음이 있다면 그곳은 이미 ‘실락원(失樂園)’입니다.
(조재형 신부)
2. 오늘도 제 안에 들어있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곰곰이 헤아려 볼 일입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왕이면 선한 것들, 가치있는 것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들로
가득 채워나가야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마르 7,15)
주님!
저를 부수소서.
고정관념의 틀을 깨소서.
겉만 아니라 속도 부수고, 당신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 생각을 바로 세우시고, 당신을 모욕하지 않게 하소서.
위선 부리지 않게 하시고, 선으로 제 안을 가득 채우소서.
당신 모상을 새롭게 하시고, 사랑의 향기 뿜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면서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이수철 신부)
2/12(수) [(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마르 7,15)
주님!
저를 부수소서.
고정관념의 틀을 깨소서.
겉만 아니라 속도 부수고, 당신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 생각을 바로 세우시고, 당신을 모욕하지 않게 하소서.
위선 부리지 않게 하시고, 선으로 제 안을 가득 채우소서.
당신 모상을 새롭게 하시고, 사랑의 향기 뿜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12일(수) 4시20분-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묵]2025년 2월 11일 화요일[(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2.11 |
---|---|
[매묵]2025년 2월 10일 월요일[(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2.10 |
[매묵]2025년 2월 9일 주일[(녹) 연중 제5주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2.09 |
[매묵]2025년 2월 8일 토요일[(녹) 연중 제4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1) | 2025.02.08 |
[매묵]2025년 2월 7일 금요일[(녹) 연중 제4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