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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2월 15일 토요일[(녹) 연중 제5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2월 15일 토요일[(녹) 연중 제5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95(94),6-7 참조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본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흙을 일구게 하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3,9-24
9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6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0(89),2.3-4.5-6.12-13(◎ 1)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산들이 솟기 전에, 땅이며 누리가 생기기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시옵니다. ◎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복음 환호송

마태 4,4
◎ 알렐루야.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7(106),8-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작은 착오가 있었습니다. 본당 새 신자 분과 모임에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분과장과 5 40분에 성당에서 만나서 모임 장소로 가기로 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에게 시간 되는지 물어보니 시간 된다고 해서 직접 모임 장소로 6시까지 오라고 했습니다. 당일 아침 미사에서 분과장은 부주임 신부님에게 신부님도 오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은 예 저도 갑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분과장님은 그때 부주임 신부님이 저랑 같이 온다고 말한 줄 알았다고 합니다. 부주임 신부님은 전날 제게 들은 말이 있어서 약속 장소로 간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당에서 기다리다가 분과장에게 전화했더니 3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성당으로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분과장님은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행히 약속 장소가 성당에서 멀지 않아서 부주임 신부님이 와서 함께 갔습니다. 말은 정말 '' 다르고 '' 다른 것 같습니다.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본인의 생각대로 들으면 웃지 못할 일이 생기곤 합니다. 1992년이니 33년 전의 일입니다. 동창 신부님들과 진부령에 있는 스키장으로 휴가를 갔습니다. 동창 신부님 한 명은 일이 있어서 따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진부령으로 와야 하는데 오대산이 있는 진부로 갔습니다. 오대산의 진부는 설악산의 진부령과는 거리가 제법 있었습니다. 늦은 밤 신부님은 택시 타고 진부령의 숙소로 왔습니다. 2004년이니 21년 전의 일입니다. 사목국 신부님들이 양평의 한화 콘도에서 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신부님 한 명이 일이 있어서 따로 온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양평 한화 콘도에서 회의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신부님을 기다렸습니다. 마침, 신부님이 전화했습니다. 방 호수가 몇 번인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705호라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705호는 없다며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은 용인 한화 콘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양평 한화 콘도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용인에서 양평까지 다시 와야 했습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단순히 아담의 물리적 위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상태,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관해 묻는 말입니다. 오늘,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숨은 상황에서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느님께서는 이미 아담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단순히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려는 의도를 가지셨습니다. 이 질문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줍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하느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길을 잃고, 죄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졌다고 느낄 때, 하느님은 우리를 찾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이 말씀은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상징합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구약에서 시작되어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구약의 아담이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깨뜨렸다면,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으로서 이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단절된 모든 인간의 고통과 두려움을 대신 짊어진 외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느님의 질문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다시 하느님과 친교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 봅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올바른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죄와 무관심 속에서 하느님과 멀어져 있는가를 성찰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꾸짖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찾고 사랑하기 위해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단지 창세기의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평화와 기쁨의 시작입니다. 회개와 용서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여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복음마르 8,1-10

 

라면 다섯 개에 파 송송, 계란 탁!

 

언젠가 각종 자재를 잔뜩 실은 대형 트럭이 저희 피정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먼 거리에,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시골길에, 심한 정체로 기사님과 도우미께서

엄청 고생한 분위기였습니다.

 

힘을 합쳐 짐을 내리고 나서 두 분 얼굴을 보니 빨리 내려오느라 끼니도 못 챙긴 분위기였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즉시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마르 8,3)

 

그래서 제가 정중히 두분에게 여쭈었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제가 초스피드로 라면을 끓여드릴 수 있는데,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두분은 반색을 하며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라면 다섯 개에 파 송송, 계란 탁! 거기다 김치와 밥과 과일과 차까지 내어드렸더니,

두분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도 하느님이셨지만, 동시에 철저하게도 인간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리 좋은 설교 말씀도 안 먹힌다는 것, 뭘 하든 일단 잘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우리 옛말이 있습니다. 배고픈 아이가 있으면 그가 어떤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우선 먹이고 봐야 합니다.

먹이고 나서 법을 따지든 원칙을 따지든, 야단을 치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이 크게 아프면 만사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아무리 원칙을 중시하는 단체라 할지라도 사람이 아프면 열 일 제쳐놓고 일단 치료를 받게 하고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런 면에서 우리의 예수님은 너무나 인간적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이 고통당하는 것을 절대로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 각자 모두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라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인본주의자셨습니다.

만물 위에 인간이란 존재를 두고, 그의 성장과 구원, 복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었습니다.

굶주리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일, 아파하는 한 인간을 치료하는 일, 마귀 들려 죽을 고생을 다하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죽음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그것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마르코 8,1-10

 

"저 군중이 가엾구나."

 

교구 평신도 복음화 봉사자들과 1박 2일로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한 어르신 봉사자께서 1970년대 TV에서 방영되었던 사연이라며

말씀해 주신 한 사연이 마음에 와 닿아 이렇게 옮겨봅니다.

 

6·25전쟁 때 서울에 살던 한 부인이 피난 가다가 가족과 헤어지고 혼자 부산에 도착해

국제시장에서 가게를 세내어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음식 솜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한번 온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 식당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지가 되어 동냥으로 연명했는데,

그 식당에도 거지들이 찾아와 종업원들과 자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밥 좀 주세요.”

“너희 주려고 밥장사 하는 줄 알아?”

 

주인아주머니는 거지들을 볼 때마다 헤어진 아들 생각이 나, 모두에게 밥을 주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적자가 나니 고민이었습니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식당에 큰 통을 갖다 놓고 종업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손님이 음식을 남기면 버리지 말고 전부 이 통에 깨끗하게 모아라.”

 

그날도 점심때쯤 되어 거지들이 몰려오자, 주인아주머니는

“저녁 9시쯤에 와라. 그러면 밥을 줄게.” 하였습니다.

“정말요? 꼭 줘야 해요!”

 

9시가 되자 손님들이 끊어진 조용한 식당에 거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밥 준다고 했지요?”

거지들이 스무 명 남짓 식탁에 둘러앉자 주인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내게도 헤어진 너희만한 아들이 있다. 너희를 보면 그 아들 생각이 나

밥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이 식당은 망할 거다.

그래서 오늘부터 손님들이 남긴 밥을 깨끗이 모았으니 이것으로 죽을 끓여주마.”

 

아주머니는 모은 밥과 반찬으로 죽을 한 솥 끓였습니다.

거지들이 그 죽을 한 그릇씩 받아들고는, 늘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따뜻한 사랑을 받는 것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거지들은 매일 밤 그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무 명에서 서른 명, 마흔 명… 하고 거지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다 죽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지 왕초는 이러다가는 저 식당이 망할 것 같으니 이런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몰려가다가는 저 식당이 망하겠다. 이제부터 조를 짜서 요일별로 나누어

밥을 먹으러 가자.”

 

거지들도 그 아주머니를 위해 배려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식당 벽에는 “손님 여러분, 음식을 깨끗하게 남겨 주십시오.” 하는 글귀가 붙었고,

그 식당에서는 손님이 남긴 음식을 거지들에게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늘 깨끗한 음식이 나오니까 손님도 믿고 먹을 수 있어서 손님이 더 늘어났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거지들이 다치면 약을 발라주고,

거지들도 식당의 부서진 의자나 문짝을 고쳐주고 청소도 해주었습니다.

 

어떤 거지는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운 엄마의 정을 그 아주머니한테서

느낀 것입니다. 그렇게 식당은 점점 사랑의 식당이 되어 갔습니다.

 

그 해 겨울, 부산 국제시장에 큰 불이 났습니다.

바닷바람이 강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시장 전체가 불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가장 피해가 작은 한 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식당이었습니다.

이유는 불이 나자 거지들 200여 명이 순식간에 그 아주머니 식당으로 몰려들었고,

그 중 일부는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막고, 물을 퍼붓고,

또 일부는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고, 일부는 그것을 지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합판 조각과 박스 조각들을 모아 와 아주머니가 추위를 피할 집을 임시로 만들고

“어머니, 걱정 말고 여기서 주무세요.” 하였습니다.

 

거지들은 아주머니와 마음에서 하나로 엮여 있었던 것입니다.

참다운 소통은 우리가 모두 한 가족이 되도록 만들어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영적인 것은 사람을 살리지만 육적인 것에 심으면 죽음이 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육을 이기기 위해 40일간 단식하고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도 이겨내십니다.

육체의 욕망은 우리가 싸워야 할 세 가지 원수 중 하나로써

죄를 짓게 하는 뿌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의무는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하느님을 체험하고 만나게 만들면 그만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영적으로는 이미 충분한 양식을 주셨지만

육적으로는 배고파하는 이들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도 배부르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을 배불리 먹일 음식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책임 중

하나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배고픈 이들도 배불려야 하는 것입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있었던 한 식당 아주머니와 거지들과의 그 ‘소통’, 즉

아주머니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또 거지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주머니를 도왔습니다. 삼위일체께서 성령으로 소통하듯이,

소통은 각자의 희생을 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교도 하나의 소통인데 말로만 성당 나오라고 한다면 배고픈 이들은 오히려 그런 말에

짜증을 낼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도 동시에 도와주어야 합니다.

 

한 사제로써 이태석 신부님은 물질적으로도 가난했던 톤즈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적인 도움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성당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배고픈 사람들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서마저 나눔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배고픈 이들을 보며 마음 아파 했던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물적으로 내가 누군가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서 말로만 성당 나오라고 권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소통의 방법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 주위 배고픈 이들을 보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 말 없이 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교회가 된다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남는 빵이 넘쳐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로 성당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2.14.금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827-869)와 성 메테디오 주교(815-885) 기념일

                                                                                                      창세3,1-8 마르7,31-37

                              어느 자리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삶

                                        “예수님과 성인들”

 

오늘 옛 현자들의 가르침이 평생 배움의 자세로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이요 성인들이 그러했습니다.

 

“배움은 입에서 입으로가 아니라 삶에서 삶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다산>

파스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러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 모두를 포괄하는 말씀입니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논어>

매사 겸손히, 부지런히, 절실히 배움의 자세로 살아갈 때 공자 말씀대로 주님의 제자다운 어진 인(仁)의

사람이겠습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두 형제 성인들의 삶이 이러했습니다.

오늘은 ‘슬라브 민족의 사도’라 불리는 그리스 테살로니카 출신의 9세기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테디오 주교

기념일입니다.

12세 연하의 동생인 성 치릴로는 42세로, 형 메테데오 주교는 70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형제 성인들의 삶이었고 매사, 매순간 최선을 다한 순교적 삶이었습니다.

두분 형제 성인의 생애 마지막 부분만 소개합니다.

 

‘성 치릴로는 그 동안의 선교 활동과 반대자들과의 투쟁에 힘이 쇠진해 로마에 있는 한 수도원에 은퇴하여

수도 서원을 발한 후, 50일 만에 869년 2월14일 오늘 42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성인은 세상을 떠나기전 손을 쳐들고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우리를 보이지 않는 원수의 이빨에 먹이로 넘겨주지 않으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당신은 원수들의 덫을 끊으시고 그 멸망의 수중에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교황은 로마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인들과 로마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그분의 장례를

마치 교황 자신의 장례처럼 성대하게 지내도록 명했고, 치릴로는 로마 성 클레멘스 성당에 안장됩니다.

 

반면 형인 성 메테디오의 경우, 독일교회와 성인간의 투쟁은 그의 일생을 두고 계속됩니다.

그 투쟁은 그가 건강 악화로 인해 885년 4월6일 파스카 성목요일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레라트 자신의

주교좌 성당에서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참으로 고난으로 점철된 힘든 생애를 산 성인입니다.

 

슬라브 민족의 사도로 불리는 두 성인 형제는 모라비아, 보헤미나, 불가리아를 복음화했고,

동유럽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1999년 10월 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성치릴로, 2.성 메테디오와 함께 3.성 베네딕도,

4.스웨덴의 성녀 브리짓타, 5.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6.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등

모두 여섯 성인들을 유럽의 수호성인들로 선포했습니다.

 

윗 두 형제 성인과 매사, 매순간 충실했던 복음의 예수님을 묵상하던중 문득 떠오른

오래전 “제비꽃”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자리 탓하지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구나

 절망은 없다”<2001.4.18.>

 

바로 예수님과 성인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계속되는 예수님의 사랑의 치유 이적입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눈부시게 분주한 사랑의 일상을 사셨습니다.

어제는 티로에서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마귀들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셨고, 오늘은 티로를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볼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시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온갖 정성을 다한후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 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시니

곧바로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제대로 말하게 되니 참 통쾌한 치유 장면입니다.

“에파타!” “열려라!”는 “탈리타 쿰!” “일어나라!”는 말마디와 함께 제가 참 좋아하는 말마디입니다. 

 

답답할 때 "에파타!" 하며 마음을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에파타!” 미사은총이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 주십니다.

모두가 순탄대로의 인생이 아닙니다.

오늘 창세기의 설화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를 줍니다.

며칠전 말씀드렸다 시피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여자를 유혹하던 간교한 피조물 뱀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느님을, 뱀을 탓할 것이 아니라 유혹을 통과함으로 영적 성장과 성숙의 계기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뱀과 대화후 여자는 유혹에 넘어가 한계를 넘어 선악과의 열매를 따 먹었고, 이어 남편에게 주자

그도 먹어 둘다 눈이 열려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고 주 하느님께서 나타나시자

동산 나무 사이에 두려워 숨습니다.

한계를 넘는 죄를 지어 순수를 잃어버리니 그 자리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들어섭니다.

 

이제 둘은 한계를 넘어섬으로 수습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교황님이 자주 강조하시는 바, 악마와 대화하지 말라는 것이니 십중팔구 악마의 유혹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대화중 변명, 핑계, 비난, 판단, 과장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즉시

침묵하는 편이 지혜입니다. 

이래서 ‘주님의 기도’중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 달라’는 청원이 절실할 수 뿐이 없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오늘 하루도 “에파타!” 열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한계를 넘어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2/15(토) [(녹)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길을 잃고, 죄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졌다고 느낄 때, 하느님은 우리를 찾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이 말씀은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상징합니다.(조재형 신부)

 

2. 철저하게도 하느님이셨지만, 동시에 철저하게도 인간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리 좋은 설교 말씀도 안 먹힌다는 것, 뭘 하든 일단 잘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인본주의자셨습니다.

만물 위에 인간이란 존재를 두고, 그의 성장과 구원, 복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었습니다.

굶주리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일, 아파하는 한 인간을 치료하는 일, 마귀 들려 죽을 고생을 다하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죽음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그것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양승국 신부)

 

3.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도 배부르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을 배불리 먹일 음식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책임 중

하나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배고픈 이들도 배불려야 하는 것입니다.(전삼용 신부)

 

4.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 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시니

곧바로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제대로 말하게 되니 참 통쾌한 치유 장면입니다.

“에파타!” “열려라!”는 “탈리타 쿰!” “일어나라!”는 말마디와 함께 제가 참 좋아하는 말마디입니다. 

 

답답할 때 "에파타!" 하며 마음을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에파타!” 미사은총이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 주십니다.(이수철 신부)

 

2/15(토) [(녹)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은 철저한 인본주의자셨습니다.

만물 위에 인간이란 존재를 두고, 그의 성장과 구원, 복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었습니다.

굶주리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일,

아파하는 한 인간을 치료하는 일,

마귀 들려 죽을 고생을 다하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죽음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그것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강건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2월15일(토) 2시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