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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3월 11일 화요일[(자) 사순 제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3월 11일 화요일[(자) 사순 제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90(89),1.2 참조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당신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시나이다.

본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인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절제로 자신을 이겨 내고
저희 마음이 언제나 주님을 바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4-5.6-7.16-17.18-19(◎ 18ㄴ 참조)
◎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복음 환호송

마태 4,4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
저희에게 너그러이 베푸신 선물을 다시 하느님께 봉헌하오니
이 제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현세의 삶에서 저희를 돌보시어
저희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4,2 참조
저를 의롭다 하시는 하느님, 제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소서. 곤경에서 저를 구해 내셨으니, 주님, 자비를 베푸시어 제 기도를 들으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현세의 욕망을 억제하며
천상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강복으로 믿는 이들을 굳세게 하시고
슬픔에는 위로를
고통에는 인내를 주시며
위험할 때에는 보호하여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작년 3월에 줌으로 하는 신앙특강을 할 수 있는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신문사에 있을 때 기획했던 프로그램이라서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1년 정도 시간이 있었기에 올바른 가톨릭 신앙이라는 주제로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1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면서 부담이 되었습니다.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손이 닿지 않는 곳이 가려운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지난 2 16일 강의에 앞서 뉴욕에서 함께 했던 부부가 달라스를 방문했습니다. 줌으로 하는 신앙특강에 함께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부부는 팬데믹 때도 줌으로 하는 강의를 함께 했고,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컴퓨터와 모니터를 연결해 주었고, 강의 자료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강의 중에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강의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중에도 기꺼이 함께 해준 부부에게 감사드립니다.

 

강의 내용 중에 안다.’라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3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기억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서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교회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미사성제를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상황 대부분은 기억하는 겁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사건을 기억하고, 시간을 기억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문제해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이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죽어야 할 여인을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앉은뱅이, 소경, 듣지 못하는 사람, 열병환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은 본인이나, 조상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묶인 이를 풀어주고, 갇힌 이에게 자유를 주고, 절망 중인 이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파타(열려라.)’입니다.

 

세 번째는 믿음입니다. 신앙인들은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위해서 아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무한하신 하느님을 알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살던 분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주고, 삶을 윤택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아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으로 인종차별을 하였고,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는 것을 믿음으로 승화시키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비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기억을 넘어, 문제해결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믿음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 아버지의 뜻이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뜻 도덕과 정의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선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플라톤은 정의로운 국가를 이야기했고, 공자는 인의(仁義)’를 강조했습니다. 결국 모두가 말하는 것은 선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세상,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족 안에서,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더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너그러운 이해가 있을 때, 우리는 하늘의 뜻을 땅에서도 이루는 것이 됩니다. 아버지의 뜻은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기도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작은 행동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 그리고 이 사회가 조금씩 변화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년 다해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마태오 6,7-15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유

 

어떤 분이 성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절실해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당신은 꼭 들어주시는 분이시잖아요. 저는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어요.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당신은 하느님이 아니세요.

전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을래요….”

 

저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 주려 하다가도 그 사람이 그것을

‘당연히’ 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맡긴 것을 달라는 듯이 청하면,

왠지 기분이 상해서 해 주려던 것이 다시 주기 싫어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6,7-15)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교인들처럼 말을 많이 하거나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느님도 당신의 자비가 크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시지, 우리가 말을 많이

하거나 노력을 많이 해서 은총을 얻어냈다고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은총의 주도권자는 하느님이시지 우리가 이래저래 한다고 해서 그분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신 다음 ‘용서’에 대해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하고 나서 반드시 더 사랑이 증가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개연성이나 현실성은 개나 줘버린 영화 ‘7번 방의 선물’이 예전에 있었습니다.

지능이 유치원 수준인 용구라는 아버지가 예승이라는 예쁜 딸을 키우며 일어나는 일입니다.

용구는 큰 범죄의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7번 방에 갇히게 됩니다.

그곳에는 그 교도소의 짱으로 통하는 조폭 밀수범 오달수와 다른 흉악범들이 있었습니다. 

 

용구는 어린이 유괴, 강간, 살인이라는 죄목이 있었기 때문에 오달수에게 사람도 아니라며

심하게 구타당합니다. 그러나 본성이 착한 용구는 다른 조직이 오달수를 해하려 할 때 달려들어

용구를 구하고 자신이 대신 상해를 입게 됩니다. 이에 오달수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보답하려고 하는데, 용구의 청은 딸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소리 뻥뻥 쳐 놓은 오달수는 어쩔 수 없이, 용구 딸 예승이를 빵 박스에 넣어서 7번 방으로

밀반입합니다. 만약 이것이 들통나면 7번 방에 있는 모두가 커다란 질책을 받을 것도 분명하고

광복절 특사와 같은 것도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방에 있던 한 명, 다혈질 모범수 신봉식이 간수가 지나갈 때 이 소리를 질러 간수를

부릅니다. 같은 방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설득하고, 말하면 죽는다고 아무리 으름장을 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봉식은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특사로 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수가 문 앞에 서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둘은 마주섭니다. 그때 문 밑에는 예승이가 신봉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봉식이 이 방에 아이가 있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그 아이는 신봉식의 손을 잡으며

어른들은 가질 수 없는 맑고 애절한 눈빛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바라봅니다.

이때 간수는 자기를 왜 불렀느냐고 신봉식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신봉식은 주저하다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맙니다. 

“저…. 저…. 빵 하나만 더 주세요…. 흑 흑”

 

교도관은 “니가 장발장이냐?” 하며 자기 모자 속에 있던 빵을 구겨서 신봉식 입에 처넣습니다.

신봉식의 마음을 돌린 것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설득이 아니었습니다.

안 들어주면 안 믿겠다는 으름장도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다만 ‘다 아시잖아요.

아빠가 절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잠시만 아빠와 함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긴

순결한 어린이의 눈망울이 모범수 신봉식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인 것입니다. 

 

기도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감정’입니다. 감정이 없는 바람은 진짜 바람처럼

흩어집니다. 고양이들이 무언가를 바라며 주인을 바라보는 눈빛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진정한 눈빛을 볼 때 주인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면서

야옹 한 번 하면 주인의 마음은 동요되지 않습니다.

매번 그렇게 한다면 주인은 자기를 무시하느냐며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사랑이 증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봐야 합니다. 성모송을 할 때는 성모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변화되고 그러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부모에게 10원 주며 감사하다고 하는 것보다는, 돈을 안 주더라도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마주치며

길러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부모의 마음을 감동을 주는 데 더 좋습니다. 

 

예전에 ‘시크릿’이란 책이 유행하였습니다.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갖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그 집을 상상하고 바라봅니다.

그러면 기쁨의 감정이 생깁니다. 이 감정이 결국 바라는 것을 이뤄준다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약속을 주실 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라”라고 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별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요? 그 감정이 결국 이스라엘의 성조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기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감정인데, 그 감정은 바라봄에서 옴을 잊지 맙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3. 이영근 신부님

 

2025년 다해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청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여전히 우리는 ‘의로움’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기도의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에, 아버지 이야기를 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8)

이는 다 알고 계시니 더 이상 청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다 아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상 필요한 것은 청하지도 않고, 오히려 필요하지도 않는 것을 청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내가 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바라고 있는 것, 그것은 진정 바라야 할 것, 곧 참된 것인지?’를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하시면서, 우리가 진정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고,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청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먼저 '아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아빠, 아버지'라고 기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심으로써, 저희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지위에 들어 올리십니다.

아버지의 아들인 당신의 반열에 들게 하시고, 하느님 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아들로서 '아빠,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빠 아버지! 

저희가 당신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먼저 아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게 하소서! 
저희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아버지로 하여 저희가 거룩해지게 하소서! 
이 땅에 저희가 바라는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나라가 되게 하시고, 저희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당신의 의로움과 진리로 저희를 다스리소서! 

아빠, 아버지!

진정, 저희가 아빠 아버지께 속해 있는 자녀이오니,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자녀 되게 하소서! 

아빠, 아버지!

당신께서 선사하신 아드님을 저희의 생명의 양식으로 삼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희에게 베푸신 용서를 저희도 서로 베풀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저희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어떤 시련이나 유혹이나 악에서도 저희 스스로 구원자가 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께만 의탁하게 하소서! 
그것들을 제거해 달라거나 없애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것을 통해서 저희 마음이 아버지께 향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마태 6,13)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동행을 볼 수 있게 하소서!

바로 그 속에서, 마음을 당신께 드리고 주님이신 당신께 속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10.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19,1-2.11-18 마태25,31-46

 

                                                             최후 심판의 잣대

                                                                     “사랑”

 

이런저런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참 오랜만에 사순 제1주일 미사중 영성체후 기도후 잠시 공지사항에 준하는 말씀 전한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 미사에 참석했던 신자들 마음속에도 깊이 각인됐을 것입니다.

미사강론후에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강론중 빠진 것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악마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미사전례입니다.”

 

사랑의 성체성사요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가 성체성사입니다.

바로 악마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질그릇에 나오는 옛 교부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시편을 큰 소리로 노래하는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든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그 진리를 체험하기까지는 낯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느님만이 기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악마도 그 기도소리를 듣는다!

네가 비록 시편을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악마는 의식한다.

그들은 듣고 떤다!”

 

악마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 떠는 것이 사랑의 찬미인 시편성무일도 노래랍니다.

“악마여, 주님을 찬미하라!”하면 악마는 질색하여 달아난다 합니다.

사랑의 선택-훈련-습관을 위해 평생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영성훈련보다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만세칠창후 바치는 사랑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 ‘사랑의 전사’이다.”

 

교황님의 정치에 대한 견해에도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정치는 삶이요 정치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능력에 따라 정치에 참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르면 정치는 ‘애덕의 최고의 형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가톨릭신자는 자신의 최고의 것을 봉헌함으로써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20년 이상 알고 지내는 모녀분이 오랜만에 함께 피정을 왔고, 그 어머니가 율리안나 딸에 대한 칭찬이 좋아

격려하고 싶어 율리안나를 불러 그대로 전했습니다.

 

“우리 율리안나는 크게 성숙했고 도량도 크게 넓어졌습니다. 저는 율리안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랑의 성숙이요 사랑의 도량임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가 사랑하라 연장되는 선물같은 날들입니다.

저역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쓰는 매일강론입니다.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이자 의무요, 임종시에도 남는 아쉬움은 더 사랑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일 것입니다.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인생인데 현대판 악령들린 사람들처럼 증오, 혐오하고 싸우면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고 억울합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삶의 무지와 허무와 무의미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졸업이 없는 평생 인생 사랑의 학교에 재학중인,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이요

평생공부가 사랑입니다.

‘평화학’, ‘화해학’이란 학문도 있다는 데 ‘사랑학’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학 박사되기가 소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오늘 복음에서처럼 최후심판의 잣대도 사랑입니다.

종파와 국적, 인종과 남녀 차별없이 온인류에 적용되는 사랑의 실천이 최후심판의 잣대입니다.

일반적 종교수행이나 관례나 관습이 아닌 실제적 사랑입니다.

추상적 사랑이 아니라 몸의 현실에 직결된 구체적 실제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웃이 곤궁중에 있었을 때, 즉 

 

“1.굶주렸을 때, 

2.목말랐을 때, 

3.나그네였을 때, 

4.헐벗을 때, 

5.병들었을 때, 

6.감옥에 있었을 때,”

 

도왔는가 묻습니다.

즉 6개의 구체적 항목이 열거됩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양들과 버림받은 염소들로 분리하면서 곤궁중에 있던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 누구나 예외없이 또 하나의 예수님이라는 것이며 곤중에 있는 이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해서 비로서 사람이요 사랑이 최후심판의 잣대이자 구원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레위기에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봅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있고, 지도자는 디테일에 강해야 하듯 디테일에 강한 사랑임을

오늘 레위기에서 배웁니다. 

“나, 주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 맨처음에 나오고 구체적 부정적 ‘안된다’라는 이웃 사랑이 나열될 때 마다 후렴처럼

“나는 주님이다.”란 말마디가 못박듯이 나옵니다.

중간쯤에는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가 나오고

끝에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라는 말씀이 결론처럼 나옵니다. 

 

주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사랑을 통해 입증되는, 거룩함이요 경외함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부정적으로 표현된 구체적 이웃사랑의 항목을 나열해 봅니다.

예나 이제나 영원히 준수해야할 구체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1.도둑질해서는 안된다. 

2.속여서는 안된다. 

3.사기해서는 안된다. 

4.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5.이웃을 억눌러서는 안된다. 

5.이웃의 것을 빼앗서는 안된다. 

6.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7.귀먹은 이들에게 악담해서는 안된다. 

8.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된다. 

9.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10.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는 안된다. 

11.세력있는 자라고 우대해서는 안된다. 

12.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13.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는 안된다. 

14.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된다. 

15.앙갚음 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된다.”

 

긍정적인 사랑의 의무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3.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4.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5.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정말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요 디테일에 강해야 하는 사랑인지 또 사랑이 모두요 사랑해서 비로소 사람임을,

‘사랑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최후심판의 잣대입니다.

평생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 사랑이요 저절로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라는 겸허한 자각이 듭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사랑의 성체성사은총이 우리의 사랑실천에 좋은 도움을 줍니다. 아멘.


3/11(화) [(자)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기도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작은 행동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 그리고 이 사회가 조금씩 변화될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은총의 주도권자는 하느님이시지 우리가 이래저래 한다고 해서 그분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신 다음 ‘용서’에 대해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하고 나서 반드시 더 사랑이 증가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마태 6,13)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동행을 볼 수 있게 하소서!

바로 그 속에서, 마음을 당신께 드리고 주님이신 당신께 속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이수철 신부)

 

3/11(화) [(자)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오늘의 말 · 샘 기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마태 6,13)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동행을 볼 수 있게 하소서!

바로 그 속에서, 마음을 당신께 드리고 주님이신 당신께 속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11일(화) 5시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