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3월 30일 주일[(자) 사순 제4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뉘우치며 아버지께 돌아오는 자녀들을 모두 사랑의 품으로 받아 주시고 빛나는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어린양의 파스카 잔치에서 천상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입당송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본기도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 오묘하게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이 다가오는 파스카 축제를
열렬한 믿음과 정성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5,9ㄱㄴ.10-12
그 무렵 9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치워 버렸다.”
10 이스라엘 자손들은 길갈에 진을 치고,
그달 열나흗날 저녁에 예리코 벌판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11 파스카 축제 다음 날
그들은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날에 그들은 누룩 없는 빵과 볶은 밀을 먹은 것이다.
12 그들이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멎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해에 가나안 땅에서 난 것을 먹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5,17-21
형제 여러분,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목자이신 주님, 그리스도의 사절인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세상 모든 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과 화해하고, 죄를 멀리하며 의롭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다양한 생각을 가진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식별의 은총을 주시어, 갈등과 다툼을 경청과 대화로 풀어 나가며,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3.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의 샘이신 주님, 가난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몸소 돌보아 주시고, 주님의 손길이 저희에게 이어져 그들이 존엄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게 하소서.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실하신 주님, 사순 시기의 재계를 지키고 있는 저희를 보살펴 주시어, 다가오는 파스카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주님 안에서 성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예물기도
기쁜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올바른 마음으로 천상 영약인 성체를 기리며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 제사를 정성껏 드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사순 감사송 2 : 참회>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마음을 다시 깨끗하게 하시려고
구원과 은총의 시기를 특별히 마련하시어
그릇된 욕망에서 벗어나 덧없는 일을 피하고
영원한 구원을 향하여 힘쓰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아들아, 네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기뻐하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비추시니
은총의 빛으로 저희 마음도 밝혀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생각하며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께 탄원하는 이들을 지켜 주시고
약한 이들의 힘을 북돋아 주시며
세상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언제나 주님 빛으로 이끄시고
온갖 악에서 인자로이 구해 주시어
모두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4주일
아침 산책길에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새롭게 옷을 입는 나무들입니다. 연한 녹색의 새잎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자연은 이렇게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다른 하나는 저를 환영하는 새들의 노래입니다. 며칠 전에 녹음한 것이 있는데 잠시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름답죠? 어릴 때 읽었던 동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마을에 욕심쟁이 거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싫어해 높은 담장을 쌓고 '출입 금지' 팻말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거인의 정원에는 늘 겨울만 계속되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이 찾아와도 다른 곳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했지만, 거인의 정원은 항상 춥고 쓸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몰래 담장을 넘어와 정원에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얼어붙었던 정원에 봄이 찾아왔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거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정원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는 담장을 헐어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정원을 가꾸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봄은 우리의 마음을 열면서 찾아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 마음에 봄이 오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욕심, 질투, 욕망, 교만, 게으름, 분노, 원망’이 있으면 세상에는 봄이 올지라도, 우리 마음은 추운 겨울이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멎었다. 그리고 더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해에 가나안 땅에서 난 것을 먹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기까지 4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정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실천했습니다. 사순시기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입니다. 단식, 기도, 희생, 자선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본당에서는 이번 사순시기에도 성경 필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마음에 봄이 오는 길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 마음에 봄이 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방탕한 생활을 했던 둘째 아들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 돌아와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큰아들의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살면서도 그 기쁨을 잘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언제나 화사한 봄이었지만, 큰아들의 마음은 ‘겨울’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머니를 생각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방황하면서 집을 나갔던 둘째 형을 걱정하였습니다. 형이 돌아오면 먹을 수 있도록 늘 따뜻한 밥을 한 공기 준비하였습니다. 어느 날, 둘째 형이 바람처럼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는 둘째 형을 위해서 따뜻한 밥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는 앞가림을 잘하는 형제들의 자리도 있었지만, 방황하던 둘째 형을 위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둘째 형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늘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둘째 형이 돌아오면 어머니의 그늘이 모처럼 활짝 갠 하늘 같았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큰아들처럼 지냈습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어머니의 마음보다는 무시하고, 비난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세상의 것들에 있었던 큰아들과 같았습니다.
사순시기입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둘째 아들처럼 ‘희망’을 간직하고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한다면, 방향을 돌려서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다면 자비하신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받아 주십니다. 큰아들처럼 ‘비난과 불평’을 간직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집에 있을지라도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희망의 배를 타고 아버지께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으면서도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자비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4주일
복음: 루카 15,1-3.11-32
복된 죄!
강론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강론하시는 것을 너무 행복해하는 한 시골 작은 본당
주임 사제에 얽힌 사연입니다.
하필 그 주일 복음 내용이 ‘탕자의 귀환’ ‘작은아들의 비유’였습니다.
신부님은 ‘이게 웬 떡이냐?’며 일주일 전부터 명 강론을 준비하고 또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주일 교중 미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치밀하게 준비하고, 세밀하게 손까지 본 강론 보따리를, 존재 자체로 고맙고 사랑스러운 신자들,
백퍼센트 어르신들인 교우들께 신나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작은아들이 얼마나 불효자인지? 그가 아버지를 떠나가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불경스러운 죄인지를?
그럼에도불구하고 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하며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그야말로 감동적으로 풀어나가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강론을 듣고 있던 교우들은 이제나저제나 집 나간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목빼고 기다리고 있는데, 30분, 50분이 지나 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작은아들은 돌아올 줄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고정된 자세로 한 시간 가까이 강론을 듣고 계시던 신자들은 드디어 슬슬 힘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를 들썩이고, 연신 하품을 해대고, 시계를 바라보고, 마침내 이렇게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집 나간 작은아들은 대체 언제 돌아온댜?”
그리고 다음 스케줄로 인해 초조하셨던 한 어르신께서 강론 중에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신부님, 손주 결혼식도 가야 하는디, 이제 고만 작은아들, 쌩하니 들어오라고 하시요!”
오늘 탕자의 귀환을 주제로 한 복음 말씀은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비유로 유명합니다.
많은 영성가들이 이 비유 말씀만으로 수많은 영성 서적들을 저술했습니다.
여러 화가들도 이 비유 말씀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저희 사제들도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온몸과 마음으로 절절히 느끼게 하는
탕자의 귀환을 주제로 강론하다 보면 자연스레 강론이 길어지기 십상입니다.
저는 오늘 그래서 작은아들이 돌아온 이후 상황에만 시선을 집중시켜봤습니다.
사실 오늘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비유의 주인공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아니라
언제나 목 빼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제목은 ‘탕자의 귀환’, ‘작은아들의 비유’, ‘잃었던 아들의 비유’라기 보다
‘자비하신 아버지의 비유’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온 신경은 온통 작은아들이 돌아올 동네 초입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던 아버지는 초주검 상태가 되어 터벅터벅 멀리서 걸어오는
작은 아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거동도 불편하신 아버지께서는 그냥 있지를 못합니다.
아들을 향해 냅다 달려가십니다.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저지른 죄와 타락, 배반을 훨씬 능가합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푸시는 그분의 사랑은 죄를 고백하는 죄인들보다 앞서가십니다.
아버지에게서 오는 죄의 용서는 그 어떤 전제 조건도 없습니다.
그저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회개만이 요청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가가기 전에 먼저 죄인들을 찾아오시며, 새 삶을 요구하십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곧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히 깨닫게 합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측량이 불가능한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죄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인해 크게 고동칩니다.
참혹한 죄인들을 당신께로 인도하는 그분의 음성은 감미로운 천상음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대죄인인 우리에게 단 한 마디 질책의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환대하시고 꼭 안아주십니다. 등 두드려 주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는 심각했지만, 결국 그 죄는 복된 죄가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 죄가 나쁜 것이었지만, 그 죄로 인해 하느님의 자비가 펼쳐졌고,
우리에게 구원이 선물로 다가왔으며, 그로 인해 하느님의 영광과 위대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복된 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사순 제4주일
<'하느님의 기쁨'>
사순 제4주일은 ‘장미주일(기쁨주일)’이라고 불립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사순절이 지향하고 있는 부활의 희망과 기쁨을 전해줍니다.
오늘 입당송에서는 노래합니다.
“즐거워하여라.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이사 66,10-11 참조)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기쁨의 파스카 축제를 지냈고, 그 다음 날에는 만나가 멈추고 그 땅에서 난 음식을 먹었음을 전해줍니다(여호 5,10-12 참조).
이는 부활과 함께 먹게 될 생명의 양식을, 나아가서 하느님과 함께 벌어질 천상의 식탁을 미리 암시해줍니다.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고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게 된 기쁨을 전해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기쁨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코린 5,21)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밝혀줍니다.
흔히 이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 혹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 불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비로운 아버지와 두 아들의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두 탕자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자비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작은아들과 큰아들의 차이는 극렬하게 드러납니다.
어제 복음인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와 흡사합니다.
곧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루카 18,9) 바리사이와 ‘큰아들’이, 그리고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는 세리와 ‘작은아들’이 비교되며, 대조를 이룹니다.
이들은 ‘보는 눈’이 서로 다릅니다.
곧 큰아들은 자신을 의인으로, 작은 아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바라보며, 큰아들은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며, 작은아들은 다른 이들을 존중하며, 큰아들은 바라보는 곳이 자기 자신이지만, 작은아들은 하느님과 아버지입니다.
첫째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 작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루카 10,18)
참으로 벅찬 아름다움입니다.
성공해서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러 가는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지었었음에 대해 뉘우치고 통탄해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로부터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는 행위 속에 있습니다.
곧 ‘뉘우친 바를 행동으로 고백하는 일’에 일입니다.
바로 이 일을 두고,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뉘우침’이라는 내면적인 통회와 ‘돌아옴’이라는 외면적인 행동을 요청합니다.
예컨대, 베드로와 가리옷 유다가 다 같이 스승을 배반하고 통탄해 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께 돌아와 구원의 길을 갔고, 유다는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파멸의 길을 간 것과 같습니다.
둘째 이야기는 ‘죄도 모르고 돌아오지도 않은 탕자 큰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동생이 유산을 챙기는 바람에 함께 유산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다 법에 따르면, 큰 아들은 다른 아들의 두 배를 받으니 동생의 두 배를, 곧 3분의 2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재산이 모두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루카 15,31)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 섬겼습니다.
그는 돌아온 동생을 동생으로 맞아들이지도 않으며, 그를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처신에도 화내며,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며, 잔치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몰랐기에, 회개하지도 않은 돌아오지 않은 탕자였습니다.
셋째 이야기는 ‘자비로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아버지의 자비(르하밈)와 신실하심(헤세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유산을 챙겨 집을 떠나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는 그 아들이 방종으로 유산을 다 탕진하리라는 것을 훤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허비할 때에도, 그에게서 결코 신뢰를 거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바로 그처럼 당신을 거부하고 배신할 때마저도, 결코 그에게서 희망을 거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미리 마련해 두었던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겨살진 송아지를 잡아 연회를 베풉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사실 우리는 바로 이 아름다운 장면의 주인공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희가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있음은 바로 당신께서 저희에게서 희망을 거두지 않으신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온갖 죄와 허물과 탓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저도, 결코 저희에게서 신뢰를 거두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단지 죄를 용서하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죄를 덮어주고 가려주고 보호해 주신 까닭입니다.
결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코 희망을 거두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이는 우리도 그렇게 용서하라는 뜻이요, 단지 용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라는 뜻입니다.
그에게서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시듯이 우리도 형제들을 신뢰하고 자비로워라는 말입니다.
형제에게서 결코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요, 희망을 놓지 않는 일이며, 결코 사랑을 거두지 않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루카 15,18)
주님!
오늘 제가 뉘우치고 돌아가서 아버지께 행동으로 죄를 고백하게 하소서.
죄보다 더 깊은 아버지의 사랑에 눈물 흘리게 하소서.
뻔히 알면서도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품으시는 그 사랑에 안기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29.사순 제3주간 토요일 호세6,1-6 루카18,9-14
회개의 삶, 파스카의 삶
“겸손, 신의, 예지”
"주님,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보내 주소서.
영광의 옥좌에서 그를 내려 주옵소서."(지혜9,10ㄱ)
안팎으로 참 뒤숭숭한 세상입니다.
사상 국내 초유, 최악의 산불에, 국외 미얀마에서는 강진에 의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고,
교황청에서도 우려와 위로와 더불어 기도의 메시지도 전달했습니다.
국내상황 역시 녹녹치 않습니다.
12.3일 비상계엄후 시작된 내란의 불은 아직도 진행중이요 내전의 위기도 겪는 중입니다.
국내외 상황이 빛과 어둠, 선과 악, 생명과 죽음, 정의와 불의, 진리와 거짓의 영적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실입니다.
흡사 혼돈과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듯 합니다.
사탄의 시스템, 악의 카르텔에 의한 상상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초현실적 상황이 벌어집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평화롭고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마음 간절합니다.
이런 와중에 가톨릭교회의 ‘사순시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공선사후, 공익중심의 실로 온전하고 다양한 이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아름다운 정상적 공동체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군자君子공동체요, 사익중심의 소인배들이 모여 악의 카르텔을 이루어 사는
불의와 거짓의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소인小人공동체입니다.
역시 판별의 잣대는 진리요 지혜요 길이요 빛이신 주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기도와 회개로 모두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과 양심을 되찾아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삶을,
지극히 침착하고 평온한 삶을 살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기도와 회개가 절실한 작금의 현실입니다.
인간현실은 이렇듯 복잡다난해도 순리에 따라 펼쳐지는 봄철의 자연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과 깨우침을 줍니다.
봄철이 되니 다시 만개하기 시작한 봄꽃들이 수도원을 덮고 있으며 회개의 삶,
파스카의 삶을 촉구하는 듯 합니다.
봄꽃도 많고 부를 봄노래도 참 많습니다.
요즘 샛노란 개나리꽃도 한창입니다.
겨울을 지낸 ‘파스카의 봄꽃들’이라 모두가 청초합니다.
오래전 써놓은 두편의 시를 나눕니다.
“겨울 지낸 개나리
햇빛 환한 봄날도 너무 어두워
샛노란 꽃 초롱들
가득 켜 들고
대낮의 어둠 환히 밝히고 있네”<2001.4.11.>
햇빛 환한 대낮의 어둠처럼 문명의 야만시대라는 역설적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입니다.
대낮의 어둠 환히 밝히고 있는 청초한 봄꽃 영혼들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역시 답은 기도와 회개를 통해 참나로 돌아가는 길뿐입니다.
얼마전 잠시 대지를 촉촉이 적셨던 봄비에 떠오른 자작시입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
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
무조건 봄비로 하겠다”<2005.3. >
봄비같은 회개의 은총입니다.
회개의 촉구와 더불어 회개의 은총을 전하는 호세야 예언자의 말씀이 참 좋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의 감동을 선사하며 마음을 순화합니다.
그대로 하나의 시처럼 들립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회개한 영혼들에게 앞당겨 실현되는 파스카의 삶입니다.
파스카의 봄꽃들 같은 청초한 삶, 파스카의 삶, 회개의 삶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는 물론 이 거룩한 미사시간, 회개의 마음으로 새벽처럼,
봄비처럼 오시는 주님을 영접함은 물론 주님 공부에 전념하라는 예언자의 호소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이어지는 예언자의 탄식이 참된 회개를 통해 겸손과 신의, 예지의 삶을 살 것을 호소합니다.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같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희생제물이나 번제물을 바치는 전례의 거부가 아니라 혼동된 우선순서를 바로 잡으라는, 회개와 겸손,
신의와 예지를 우선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가난한 세리의 기도와 회개입니다.
바리사이의 기도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똑같이 “오, 하느님!”으로 시작합니다만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기도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이건 대화의 기도가 아니라 나르시즘, 자기자랑, 자기도취에 빠진 자기중심의 독백입니다.
기도 안에 하느님의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기에 기도한다며 남판단하는 죄를 짓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모르는, 낯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참 유치하고 무지한 바리사이의 기도입니다.
전혀 하나마나한 할 필요없는 기도입니다.
반면 가난한 세리의 기도는 단순명료하고 솔직담백하고 절박합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가 바칠 기도는 하느님 중심의 기도, 이 자비송 하나뿐입니다.
이 자비송과 더불어 시작하는 미사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워할 줄, 두려워할 줄 아는, 참으로 자기를 아는 회개와 겸손, 신의와 예지의 사람, 세리입니다.
주님의 최종결론이자 심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은 가난한 세리처럼 부단히 회개와 겸손으로 낮춰지고 비워지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신의와 예지의 주옥같은 선물을 주시니,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지혜가 나와 함께 있게 하시고,
당신 뜻에 맞갖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지혜9,10ㄴ). 아멘.

3/30(일) 사순 제4주일, 되새김 구절
1.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희망의 배를 타고 아버지께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으면서도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자비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측량이 불가능한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죄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인해 크게 고동칩니다.
참혹한 죄인들을 당신께로 인도하는 그분의 음성은 감미로운 천상음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대죄인인 우리에게 단 한 마디 질책의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환대하시고 꼭 안아주십니다. 등 두드려 주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루카 15,18)
주님!
오늘 제가 뉘우치고 돌아가서 아버지께 행동으로 죄를 고백하게 하소서.
죄보다 더 깊은 아버지의 사랑에 눈물 흘리게 하소서.
뻔히 알면서도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품으시는 그 사랑에 안기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측량이 불가능한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죄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인해 크게 고동칩니다.
참혹한 죄인들을 당신께로 인도하는 그분의 음성은 감미로운 천상음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대죄인인 우리에게 단 한 마디 질책의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환대하시고 꼭 안아주십니다. 등 두드려 주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이수철 신부)
3/30(일) 사순 제4주일, 오늘의 기도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루카 15,18)
주님!
오늘 제가 뉘우치고 돌아가서 아버지께 행동으로 죄를 고백하게 하소서.
죄보다 더 깊은 아버지의 사랑에 눈물 흘리게 하소서.
뻔히 알면서도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품으시는 그 사랑에 안기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30일(일) 4시4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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