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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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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2000년 전 백제인의 발자국/올림픽공원 몽촌토성 산책로 2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2000년 전 백제인의 발자국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1-08-17 19:34:30 1999년 8월 어느 날.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은 풍납토성 성벽을 잘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다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뻘층에 남긴 발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다산의 근무지 무단이탈기/다산 유적지 여유당전경 1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다산의 근무지 무단이탈기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6-20 21:39:30 1797년 이맘때, 단옷날을 앞둔 초여름 날이었다. 승정원 좌부승지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훌쩍 도성을 빠져나갔다. “석류꽃이 피고, 보슬비가 개자 불현듯 고향 초천(苕..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2100년 전 장례식/ 밤나무 등 5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2100년 전 장례식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입력 : 2012-09-26 “웬 밤이야?” “이건 감이잖아.” 1988년 경남 의창(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의미심장한 유물들이 확인됐다.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조성된 무덤에서 나온 밤(栗)과 감(枾)이었다. >^|^"> 감 3개..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삼전도 굴욕과 백전대첩/ 화성행궁 복내당 1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삼전도 굴욕과 백전대첩 경향신문 /오피니언/ 이기환 문화체육 에디터 /입력 : 2012-11-14 21:22:10 1637년 1월30일은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날이다. 청군에 사로잡힌 백성들이 한강을 건너 돌아가는 인조를 향해 울부짖었다. “우리 임금님, 우리 임금님, 어찌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청야전술과 교살작전/ 문경 고모산성 성곽 6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청야전술과 교살작전 경향신문/오피니언/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입력 : 2012-10-24 21:23:28 “성 주위에 도랑을 파고 보루를 높이며 들판의 곡식을 비워 대비하면(若我深溝高壘 淸野以待之) 됩니다.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굶주려서 돌아갈 것입니다. 그 틈에 공격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조선시대 성범죄/ 화성행궁 장락당 3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조선시대 성범죄 경향신문/ 사내칼럼/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입력 : 2012-10-17 21:40:04 “11살 아이를 강간한 잉읍금을 교수형에 처했다.”(<태조실록>) 강간죄에 대한 조선의 법률은 추상같았다. 1367년 제정된 명나라 법인 <대명률>에 따른 처벌이었다. “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세종은 과연 해동의 요순인가/수원 화성 행궁 봉수당 내부 3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세종은 과연 해동의 요순인가 경향신문/사외칼럼/ 이기환 문화체육 에디터 입력 : 2012-10-31 21:29 “사람들은 ‘해동(海東)의 요순(堯舜)’이라 했다.” 1450년 세종대왕이 훙(薨)했다. 당대 사람들은 세종을 태평성대의 상징인 요순에 견줬다. 하기야 “노비도 다같이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이완용의 부음기사/태극기 변천사 사진 1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이완용의 부음기사 경향신문 오피니언 입력 : 2012-09-12 21:24:06 “관후하고 침중해 재상의 식견과 도량이 있었다. 사람들이 우러러 ‘어진 재상(賢宰相)’이라 했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황희의 ‘졸기(卒記)’이다(1452년 2월8일). 지금의 ‘오비추어리(obitu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