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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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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日遣興(추일견흥)-―김윤식(金允植·1835~1922)/벼이삭 4장 가을의 소회 秋日遣興(추일견흥) 산에서는 나무하고 물에서는 낚시하니 세상에 구하는 무엇이 있기나 하나? 지위 낮아 세상일에 걸릴 것 없어 은덕도 원한도 주고받은 것 적건마는 때때로 문을 닫고 틀어박힌 채 이맛살 찌푸리며 갖은 걱정을 하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오는 식구들에..
가을햇볕―고운기(1961~ )/코스모스 4장 가을 햇볕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오래 흘러온 강물을 깊게 만들다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여고 2학년 저 종종걸음 치는 발걸음을 붉게 만들다, 불그스레 달아오른 얼굴은 생살 같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다 그리하여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멀어지려 해도 멀어질 수 없는 우리들의 손..
세상의 친절―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요한성당과 단풍잎돼지풀 세상의 친절 1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 너희들은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 한 여자가 너희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줄 때 너희들은 가진 것 하나도 없이 떨면서 누워 있었다. 2 아무도 너희들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 너희들을 바라지 않았으며, 너희들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지 않..
과일-―박두순(1949~ )/감과 밤송이 사진4장 과일 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철봉에 매달린 우리들 같아요 뚝 떨어질 것 같지만 꾹 참고 있는 과일들 어떤 과일은 얼굴이 빨개졌고 어떤 과일은 얼굴이 노래졌어요 그래도 참고 있어요 참을성 많은 과일들 힘내라 힘내라 응원해 주고 싶어요 의자를 살짝 놓아주고 싶어요 ―박두순(1949~ ..
이름-―이우걸(1946~ )/수선화 4장 이름 자주 먼지 털고 소중히 닦아서 가슴에 달고 있다가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 어머닌 눈감으시며 그렇게 당부하셨다 가끔 이름을 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먼지 묻은 이름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내 이름을 써 보곤 한다 티끌처럼 가벼운 한 생을 상징하는 상처..
점집앞―장석주(1954~ )/살구나무 3장 점집 앞 아마 官妓로 산다는 것, 그 遊樂의 나날이 늘 즐겁지만은 않았을 거야. 왜 안 그랬겠어. 답답한 날도 있겠지. 한 날은 점집을 찾았는데, 점집 대문 앞 살구나무가 분홍꽃구름을 이고 서 있네. 점집으로 발 들여놓지 못한 채 분홍꽃구름 아래 얼음기둥으로 서 있는데, 취한 듯 취한 ..
생각이 있어 有所思(유소사)―황오(黃五·1816~?)/무당거미 3장 생각이 있어 有所思(유소사) 허둥지둥 달려온 마흔여섯 세월 거친 꿈은 아직 식지 않았는데 가을빛은 천리 멀리 밀려오고 석양은 하늘에서 내리 비치네. 강호의 곳곳에는 아우들이 있고 비바람 속 벗들은 곁을 떠나네. 남산의 달빛 아래 홀로 섰나니 고목 가지엔 거미가 줄을 치누나. 悤..
지나치지 않음에 대하여-박상천/국수버섯 4장 입력 : 2012.09.16 22:32 지나치지 않음에 대하여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한다. 아침 신문도 우울했다. 지나친 속력과 지나친 욕심과 지나친 신념을 바라보며 우울한 아침, 한잔의 차는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케한다. 손바닥 그득히 전해오는 지나치지 않은 찻잔의 온기 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