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조·성가·기도문 (457)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선아리랑―우은숙(1960~ )/과꽃 외 3장 정선아리랑 손도 발도 다 녹고 목소리만 남았나 봐 목젖만 남겨놓고 몸 던지는 꽃잎처럼 혼자서 흘러왔다가 터져버린 폭포처럼 울 수조차 없는 한(恨)을 안으로 삭히며 강 밑바닥 물청때를 밀봉 풀고 건진 소리 잘 익은 막걸리 속엔 후렴구만 짙게 핀다 ―우은숙(1960~ ) <우은숙시인의 .. 마음이 마음을 안다-법정스님/세미원 용준분수 연못 4장 마음이 마음을 안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내 삶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인간관계를 통해 우리는 삶을 배우고 나 자신을 ..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박형준(1966~ )/달팽이 2장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 펄럭거리는 잎맥 자국이 있다 대야의 물로 성(性)을 씻는 여인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본다 거울 속에서 민달팽이가 긴다 녹색 셀로판지로 된 여인숙 출입문 밖에 바다가 와 있다 여인이 사라지고 대야의 물이 환하다 쭈그리고 앉아 바.. 가을날 농가풍경―이응희(李應禧·1579~1651)/물에 뜬 "국화꽃-벌개미취" 2장 가을날 농가 풍경 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추수철이 다가오며 날씨가 서늘하니 농촌의 멋진 풍치 꼽아 봐도 좋겠구나. 통발에서 꺼낸 은어 소반 위에 회가 되고 상에 오른 검정 게는 솥 안에서 끓고 있다. 나무 가득 붉은 과일은 햇살에 반짝이고 황금빛 벼이삭은 벌써 서리를 맞았다.. 밥생각―김기택(1957~ )/쌀밥과 보리밥 2장 밥 생각 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 추석 ―성명진(1966~ )/부모님 산소 2장 추석 성묘를 간다 가시나무 많은 산을 꽃 차림 하고 줄지어 오르고 있다 맨 앞엔 할아버지가 그 뒤엔 아버지가 가며 굵은 가시나무 가지라면 젖혀 주고 잔가지라면 부러뜨려 주고…… 어린 자손들은 마음 놓고 산열매도 따며 산길을 오르고 있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흐르고 그렇게 정이 .. 가을 지에밥-―박기섭(1954~ )/금물결 넘실대는 가을들판(?) 벼이삭 4장 입력 : 2012.09.27 22:51 가을 지에밥 가을은 해년마다 돗바늘을 들고 와서 촘촘히 한 땀 한 땀 온 들녘을 누벼 간다 봇물이 위뜸 아래뜸 고요를 먹이고 있다 절인 고등어 같은 하오의 시간 끝에 하늘은 또 하늘대로 지에밥을 지어 놓고 수척한 콩밭 둔덕에 두레상을 놓는다 ―박기섭(1954~ ) 태.. 멀리와서 울었네―정은숙(1962~ )/할배할매 장승 멀리 와서 울었네 지하 주차장, 신음 소리 들린다. 방음 장치가 완벽한 차창을 뚫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울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 그가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 그가 낮게 낮게 시간의 파도 속을 떠다닌다. 눈물이 거센 파도..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5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