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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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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용혜원 <한여름> - 용혜원 - 불볕더위 속에서도 매미는 지치도록 더위조차 후벼 파놓듯 자지러지도록 울어댔다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한지 울고 또 울어도 나무는 함께 울지 않았다 매미 혼자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무는 뼛속이 아프도록 속울음을 울고 싶은 날을 알고 있었다 양평 ..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
늙어가는 법-송하선 늙어가는 법 - 송하선 - 머리에 흰 눈雪을 쓰고 서 있는 은빛 갈대들에게서 배웠네 이 세상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며 흔들리며 소슬한 바람도 즐기며 즐기며 그저 늙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귀천-천상병 귀천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있는 힘을 다해-이상국 있는 힘을 다해 - 이 상 국 -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쳐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
눈물 항아리-이해인 눈물 항아리 - 이해인 - 어머니 그리울 적마다 눈물을 모아둔 항아리가 있네 들키지 않으려고 고이고이 가슴에만 키워 온 둥글고 고운 항아리 이 항아리에서 시가 피어나고 기도가 익어가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빛으로 감싸안는 지혜가 빚어지네 계절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 ..
나무들의 결혼식-정호승 나무들의 결혼식 - 정호승 - 내 한평생 버리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다면 나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낭랑하게 축시 한번 낭송해 보는 일이다 내 한평생 끝끝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우수가 지난 나무들의 결혼식 날 몰래 보름달로 떠올라 밤새도록 나무들의 첫날밤을 엿보는 일이..
수련-정호승 수련 - 정호승- 물은 꽃의 눈물인가 꽃은 물의 눈물인가 물은 꽃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은 인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사진 : 니콜라이 글 : 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