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쓰고 아린 씨, 날개는 익기전 수평 익은후 프로펠러
2009년 7월 하순 어느 여름날이었다. 낮 온도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피하려 수목원을 찾는 4~50대로 보이는 분들에게 해설을 하였다. 약용식물원을 지나다가 여로(藜蘆) 옆에서 멈추었다.
“여로 보셨어요?”
“그럼요. 보았지요.”
본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고 던진 물음이었는데 다들 보았다니 의외였다.
“그럼 어느 분이 설명 좀 할 수 있으세요?”
“그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아는데요. 그것 말고 여기 이 꽃이나 설명해주세요.”
꽃 | ||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내가 물은 여로는 설명해달라는 바로 그 풀이고 다들 안 다고 한 것은 1972년에 히트했던 일일연속극 “여로(旅路)”이었던 셈이다.
내용은 일제강점기에서 6·25전쟁까지를 배경으로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다루었고 주인공은 장욱제와 태현실이었다. 나는 이 연속극을 군대생활을 하면서 즐겨보았다.
“아신다면서요. 설명해달라는 여로 꽃이 바로 이 꽃이에요.”
“예! 뭐라고요!”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같은 우리말 ‘여로’를 이토록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고 모두 웃었다. 한바탕 웃은 뒤에 여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여로를 생각할 때면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여로의 여는 검을 려, 로는 갈대 로이다. 밑동의 줄기는 잎집(葉鞘, A sheath)이 싸고, 오래되면 잎집은 실모양의 흑갈색으로 된다. 따라서 이 풀꽃은 갈대 같이 생긴 밑동 줄기가 검은 색 껍질(잎집)로 싸여 있다 하여 여로라 하였다.
열매 3조각 | ||
꽃은 수술만 있는 수꽃과 수술과 암술이 같이 있는 암꽃이 있다. 꽃대에는 솜 가루 같은 잔 털이 있다. 수술은 6개이고 그중 3개는 길고 3개는 짧으며 꽃밥은 홍자색이고 꽃가루는 노랗다. 암꽃은 수술이 암술보다 길고 암술을 빙 둘러가며 있다.
씨방은 겉에 3개의 세로 골이 나고 3개의 넓고 볼록한 면으로 된 항아리 같으며 그 위에 암술머리가 3갈래로 갈라져 있다. 암술머리 색은 씨방보다 진한 홍자색이다.
열매는 아래가 좁고 위 끝 3개의 모서리에 각각 1개씩의 침(암술대)이 붙어 있는 세모기둥이다. 3면의 각 가운데에 세로 골이 있고 익을수록 골이 깊어진다. 익으면 3개의 도톰한 타원형 조각의 안쪽 옆구리를 가운데 축에 붙여 세워놓은 모양이며 위 끝이 3조각으로 갈라진다.
열매 | ||
이것을 보면 우리가 보았던 자주색 꽃잎은 꽃잎이 아닌 꽃받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과 열매 사이에 실처럼 생긴 길이 1~2㎜의 털이 6개가 붙어 있다. 꽃받침은 길이 4.5~6.5㎜, 너비 2.5~4.0㎜, 두께 0.2~0.4㎜이다. 열매색은 초기에는 녹색이고 누런색을 거쳐 익으면 갈색으로 변한다.
크기는 길이(높이) 2.0~2.5cm, 너비(변의 길이) 6.5~10.5㎜ 이다. 광택은 없으며 껍질은 두께가 0.1㎜정도로 얇고 겉에는 세로로 여러 개의 선이 있고 전체에 그물 모양의 주름이 있다. 물에 뜬다.
열매의 한 조각에는 보통 2~3개의 씨가 있으나 많은 것은 8개까지 들어 있었다. 따라서 열매에는 씨가 수개에서 수십 개까지 들어 있는 셈이다. 씨는 넓은 부위가 아래, 좁은 부위가 위를 향하여 들어 있다.
씨 | ||
씨 알갱이는 둥근꼴 타원형이며 속은 희다. 씨 껍질은 두께가 0.1~0.2㎜정도로 얇고 잘 벗겨지지 않는다. 씨는 물에 뜨나 알갱이는 가라앉는다. 맛은 쓰며 많이 씹으니 혀와 입안이 애린 듯 했다.
씨의 날개는 익기 전에는 수평으로 되어 있으나, 익으면 아주 미미하나마 끝이 휘어지고 뒤틀려 프로펠러 모양을 한다. 바람에 조금이라도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여로로서는 아주 큰 몸부림일 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볼까? 어떤 이는 웃긴다며 비웃을 거고 어떤 이는 처절한 생존의지라며 숙연하게 받아들일 거다. 여로는 사람들이 어떠하든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생존을 위한 새롭고 실효성 있는 지혜를 쉼 없이 짜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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