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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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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애여불공(隘與不恭)/선인장 5장 [정민의 세설신어] [130] 애여불공(隘與不恭) 병자호란 당시 15만의 청나라 군대는 동아시아 최강의 정예였다. 조선의 오합지졸 1만이 군량미도 없는 상태에서 버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은 또 어찌하는가? 최명길이 항복문서를 썼다. 항복은 절대로 안 된다며 왕..
[정민의 세설신어]잡채판서(雜菜判書)/분재 4장 [정민의 세설신어] [152] 잡채판서(雜菜判書) 광해군이 외교 수완은 어땠는지 몰라도 내치(內治)는 어지러웠다. 폐모살제(廢母殺弟)는 백성도 죽음을 면치 못할 반인륜적 행위였다. 권력에 눈먼 측근들이 곁에서 이를 부추겼다. 이충(李冲)은 겨울철이면 집안에 온실을 지어 채소를 심었..
[스크랩] 정조가 끝내 노론을 축출하지 못한 이유는...? 정조가 추구한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왕권의 강화였다. 노론에 의해 아버지인 장헌세자 - 사도세자 - 가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정조이기에, 노론의 나라가 되어 버리다시피 했던 당시 조선을 다시 왕에 의해 다스려지는 왕의 나라로 되돌려 놓고 싶었던 것이다. 개혁군주라고 하는 것..
[만물상] 야사(野史)와 정사(正史)/분재 5장 야사(野史)와 정사(正史) 이광수는 장편 '단종애사'에서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집권한 역사를 다뤘다. 그는 사육신(死六臣)이 처형당한 날 신숙주의 아내 윤씨가 목숨을 끊었다고 썼다. 변절한 남편이 부끄럽다며 다락방에 올라가 목을 맸다고 묘사했다. 이광수는 18세기 실학자 이긍익..
양평 떠드렁산 설화 양평 떠드렁산 설화 양평읍 오빈리와 양근리 사이 강가에 조그마한 바위섬이 있는데 일명 떠드렁산이라 한다. 용문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 하나가 덕평리를 지나 오빈리와 양근리를 경계지으며 강가로 뻗어나왔는데 마치 물위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형국..
선비의 인(仁)을 이루는 벼루/석치(石痴)라 했던 정철조(鄭喆祚) 의 벼루 선비의 仁을 이루는 벼루… 수명 다하면 연명 쓴 뒤 묻어 ‘서산(書算)을 아시나요’라는 지난 글에 당나라의 문호인 한유(韓愈)가 친구인 이관(李觀)을 위해 써준 벼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벼루를 묻으면서(예연명·硯銘)’라는 이 글은 깨진 벼루를 땅에 묻어준 친구의 사연을 배..
기생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 기생 홍랑과 최병창의 사랑| ◈故言名言 역사문화◈ 一切唯心造 | 조회 32 |추천 0 | 2010.08.30. 11:22 ★기생 홍랑의 지독한 사랑★ 조선 선조 때의 함경남도 홍원 출신의 이름난 예기(藝妓)이자 재색을 겸비한 여류시인이었던 홍랑(洪娘)은 기생으로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위치까지 올라갔..
고려후기의 사회와 문화 /이암이 원의 농서 농산집요를 간행 고려후기의 사회와 문화 韓國歷史 2008/06/05 12:26 http://blog.naver.com/hh2hh2s1/100051486314 고려전기는 당, 북송, 요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고 후반기에는남송, 원 문화의 영향을 받아 퇴보하였지만 후기 8만대장경의 간행, 금속활자의 제작과 Saracen문화, 서역문화를의 접촉은 괄목할만 했다. 1. 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