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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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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풍수이야기-영릉,남연군묘,선정릉-정릉 세종 잠든 영릉, 조선의 국운 100년 늘렸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에 위치한 영릉은 조선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생전에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잠든 헌릉 서쪽에 묻히려 했으나 그곳은 물(水)이 나는 흉지라 해 승하 후 예종 1년(1469) 현 위치에 안치됐다. 풍수로 ..
생의 벼랑끝을 오르내린 흥선대원군, 그는 왜 난그림을 그렸을까? 생의 벼랑끝을 오르내린 흥선대원군, 그는 왜 난그림을 그렸을까? 임금의 생부(生父)를 뜻하는 대원군(大院君)은 조선을 통틀어 4명이 있었고, 임금의 통치 당시 생부가 살아있는 경우는 흥선 대원군이 유일 했다. 흥선군(興善君) 석파(石坡)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인조의 셋째 아들 인..
소현세자 죽음부른 '용연석'에서 나온 말? - 요년석 소현세자 죽음부른 '용연석'에서 나온 말? - - -'요년석' 그런데 이 ‘요년석’의 내력에 대하여 조선조의 편년사 중 하나인 조야첨재에는 병자호란 당시의 소현세자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의 신빙성에는 다소의 의문이 가지만 그것이 역사기록인 만큼 그..
정조가 직접 짓고 손수 쓴 은신군 신도비 정조가 직접 짓고 손수 쓴 흥선대원군의 조부 은신군 신도비 《은신군 신도비문 - 정조》 “아, 은신군이여 / 嗟哉恩信 평소 행동거지가 훌륭했었지 / 素履振振 효도하고 또 우애하고 / 旣孝旣友 공손하고도 신중했었지 / 亦克恭愼 인후하신 왕의 자손으로 / 宜爾麟趾 외로운 섬에 귀양 갔..
진종 소황제(추존왕, 효장세자) - 효순소황후 - 파주 삼릉 영릉(永陵) - 영릉(永陵) :추존왕 진종(眞宗), 효순왕후(孝純王后)의 쌍릉 추존왕 진종과 비 효순왕후의 쌍릉이다. 진종은 21대 영조의 큰 아들(사도세자의 이복형)로 7살에 왕세자가 되었으나 10살도 못살고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다. 세자묘로 조영되었다가 훗날 정조가 즉위후 ..
영조와 여인들 영조와 여인들 영조는 숙종의 2남 서자로 태어나 1699년(숙종 25) 6세에 연잉군에 봉해졌고, 1721년(경종 1) 왕세제로 책봉됐다. 그의 생모 숙빈 최씨는 궁중 하인 중에서도 직급이 낮은 가장 낮은 무수리 출신이었다. 어미의 천한 신분 때문에 그는 왕자이면서도 이복형인 세자와는 전혀 다르..
조선 제5대 문종을 스쳐간 3명의 부인 조선 제5대 문종을 스쳐간 3명의 부인 문종은 조선 제5대 왕이자 세종대왕의 첫번째 왕자이다. 문종이 세자로 있었을 때 14세로 왕비를 맞이하였는데, 첫번째 빈은 김오문의 딸인 휘빈 김씨이다. 휘빈 김씨 는 세자인 문종보다 4살이 더 많았다. 휘빈 김씨는 세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자 여..
고려 제2대 혜종실록 제 2대 혜종실록(惠宗實錄) 1. 왕자 무(912~945년)의 태자 책봉을 둘러싼 역학관계 (재위기간:943년 5월~945년 9월, 2년 4개월) 태조 왕건은 호족 융합을 목적으로 실시한 혼인정책을 통해 29명의 후비에게서 25남 9녀의 자녀를 얻게 되는데, 이는 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불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