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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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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주사- 엄기원/방정환 동상 1장 예방주사 약 냄새가 코를 톡 쏜다. 낯선 아저씨가 주사기를 들고, 낯선 누나가 약솜을 들고 다가서면, 주사침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 서로 빠져 뒤에 가 선다. ―엄기원(1937~ )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동시(2012.5.240이다. 이준관 아동문학가의 동시평이다. 예방주사 맞던 날, 마..
저녁에 집들은- ―헤르만 헤세/수암골 벽화마를 1장 저녁에 집들은 저물녘의 기운 황금빛 속에 집의 무리는 조용히 달아오른다, 진기하고 짙은 빛깔로 그 휴식은 기도처럼 한창이다. 한 집이 다른 집에 가까이 기대어, 집들은 경사지에서 의형제를 맺고 자란다,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노래처럼 소박한 그리움으로. 벽, 석회칠, 비스듬..
오동꽃- 유재영/오동꽃 3장 오동꽃 언제였나 간이역 앞 삐걱대는 목조 이층 찻잔에 잠긴 침묵 들었다 다시 놓고 조용히 바라본 창밖 속절없이 흔들리던 멀리서 바라보면 는개 속 등불 같은 청음도 탁음도 아닌 수더분한 목소리로 해질녘 삭은 바람결 불러 앉힌 보랏빛 누구 삶이 저리 모가 나지 않았던가 자름한 고,..
잎, 잎- 신대철/녹음의 남한산성 성벽 4장 잎, 잎 낮은 山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핏줄에 붙은 살이 더러워 보인다, 잎과 잎 사이 벌거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을수록…… ..
황혼(黃昏)- 이광덕(李匡德·1690~1748)/황혼의 중앙공원 4장 황혼(黃昏) 황혼 뒤에 작은 달은 떨어지고 푸득푸득 새는 날아 산 빛 속에 숨어든다. 대청 앞의 늙은 파수꾼은 휘늘어진 나무 성곽 넘어 고매한 어른은 우뚝 높은 산 경박한 세상이라 뼈만 앙상한 몸을 멀리하고 흐르는 세월은 젊은 얼굴을 앗아간다. 나는 너와 은총과 원한을 다투지 않건..
저녁별처럼- 문정희 저녁별 처럼 기도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홀로 서서 제자리 지키는 나무들처럼 기도는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흙 속에 입술 내밀고 일어서는 초록들처럼 땅에다 이마를 겸허히 묻고 숨을 죽인 바위들처럼 기도는 간절한 발걸음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깊고 편안한 ..
밤비- 문삼석/운중저수지 설경 1장 밤비 외롭잖니? 밤비야 혼자서만 내리는 밤비야 무섭잖니? 밤비야 어둠 속을 다니는 밤비야 ―문삼석(1941~ )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동시(2012.5.17)이다. 이준관 아동문학가의 동시평이다. 어른들은 외로우냐고, 무서우냐고 서로 묻지 않는다. 그저 사람과 사람끼리, 이웃과 이웃끼리 낯선..
산들바람-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최동호/목욕하는 까치외 3장 산들바람-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첫 새벽 시작한 학과 공부에 등뼈 비틀던 경판들도 학승들과 제 자리로 돌아간 다음 노스님네 게걸음 산보 어간에 대웅전 코끝을 까치가 간질러 튀밥처럼 희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 마당 귀퉁이에 폭포처럼 내려와 나무이파리 흔드는 산들바람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