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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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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 이병기/냉이 4장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2.3.26- 냉이꽃 냉이꽃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詩도 읊고 싶고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한양호일(漢陽好日)- 서정주/ 작약 5장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2012.5.7(월) 한양호일(漢陽好日) 열대여섯짜리 少年이 芍藥(작약)꽃을 한아름 自轉車뒤에다 실어끌고 李朝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내가면서 軟鷄(연계)같은 소리로 꽃사라고 웨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디려진 玉色의 공기 속에 그 소리의 脈이 담기오. ..
호젓한 집 (幽居·유거)- 송익필/문의문화재 단지 전망대 전경 2장 호젓한 집 (幽居·유거) 봄풀이 사립문에 오른 곳 숨어 살아 세속의 일 드무네 꽃이 나직해 향기 베개에 스미고 산이 가까워 비췻빛 옷에 물드네 가는 빗방울 못물에서나 보이고 약한 바람 버들 끝에서나 알겠네 천기(天機)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곳 담담하여 마음과 어긋나지 않네 春草..
모란- 최정례/모란 사진 2장 모란 젊고 예쁜 얼굴이 웃으며 지나가고 있다 나를 보고 웃는 것은 아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빨간 꽃잎 뒤에 원숭이 얼굴을 감추고 일요일 아침 모두가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가자! 결의하고는 떠나고 있다 맹인의 지팡이 더듬어 잡고 ―최정례(1955~ ) 최정례 시인 ..
예나 이제나-박경용/수암골 날개그림 벽화 예나 이제나 어디를 가나, 어느 동네 어느 골목엘 가보나, 예나 이제나 달라질 데 없는 것은 놀자고 서로 부르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소리란다. ― 요옹이야 노올자! ― 그으래 길게 길게 꼬리를 끄는 새콤한 그 소리 맛. 어쩐지, 그 소리만 들으면 눈물 난다는 울 엄마. ―박경용(1940~ ) 조선..
안개의 나라-김광규 안개의 나라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
셔?- 오승철 셔?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
녹음- 신달자 녹음 무거워 보인다 잎새 하나마다 태양이 엉덩이를 깔고 누웠는지 잎새 하나마다 한채 눈부신 궁궐이다 그 궁궐 호수도 몇 개 거느리고 번쩍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 위로 위로 쏘는 화살처럼 휘번뜩거리는데 이런 세상에 이 출렁이는 검푸른 녹음의 새빨간 생명들이 왁자지껄 껴안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