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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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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눈물 젖은 효녀의 쌀밥/능소화 2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눈물 젖은 효녀의 쌀밥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8-29 21:23:33 “하루에 쌀 서말(斗)과 꿩 아홉마리를 먹었다. 백제 멸망 후에는 아침 저녁 두끼로 줄였지만 쌀 여섯말, 술 여섯말, 꿩 열마리를 먹었다.”(<삼국유사>) 신라 태종 무열왕(..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1600년 전 동이족 ‘성형 미인들’/태백제비꽃 2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1600년 전 동이족 ‘성형 미인들’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머리 모양이 이상한데?” 1976~1980년 사이 김해 예안리 고분을 조사한 부산대박물관 발굴단의 시선은 뜨거웠다. 머리가 인공적으로 변형된 인골 10구가 나온 것이다. <삼국지> ‘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춤바람’에 빠진 올림픽 선수단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춤바람’에 빠진 올림픽 선수단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8-08 21:16:47 “그들(한국선수단)은~ 연습이 없을 땐 ‘딴스(댄스)’를 하고~ 모사(毛絲)를 사러 저잣거리로 나간다. 그들이 조용할 땐 밥을 먹을 때뿐….” 런던올림픽이 한창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정전협정과 ‘할아버지 강’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정전협정과 ‘할아버지 강’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8-01 21:19:47 강화도 최북단. 강 건너 북한 마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지금은 ‘평화전망대’이지만, 이 야트막한 봉우리의 원래 이름은 제적봉(制赤峰)이다. ‘빨갱이(赤)를 제압(制)..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만리장성 왜곡과 저우언라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만리장성 왜곡과 저우언라이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6-13 21:14:17 ‘조장(助長)’이라는 단어가 있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농부가 벼를 빨리 자라게 할 요량으로 손으로 모를 잡아뽑아 늘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에서 1950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쐬주 한잔’의 유혹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쐬주 한잔’의 유혹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5-23 22:43:44 “소주 때문에 몸을 망치는 자가 많습니다. 금주령을 내려야 합니다.” 세종 15년(1433), 이조판서 허조가 소주의 폐해를 조목조목 논한다. 그러나 임금은 난색을 표한다. “엄금..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뿌리 깊은 호화 혼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뿌리 깊은 호화 혼수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5-16 21:54:21 “혼인 때 혼수품을 받으면 딸을 계집종으로 파는 것으로 해서 부끄럽게 여겼다.”(<북사(北史)> ‘열전’) 참으로 질박한 고구려의 혼인풍속이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작은 공’이 ‘큰 공’을 흔들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작은 공’이 ‘큰 공’을 흔들다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입력 : 2012-05-09 21:12:15 “탁구에 대한 홍군의 열의는 대단했다. 대형 탁구대는 식사시간이면 식탁으로 바뀌었다. 배트(라켓)와 공, 네트로 무장한 4~5명의 비적(匪賊·홍군)이 ‘빨리 밥..